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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2018년 8월호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K팝의 역사를 기록하는 문화사관(史官)

-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 -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은 전 세계가 열광하는 K팝의 오늘에서 오래전 이 땅에 대중음악의 씨를 처음 뿌렸던 뮤지션들의 흔적을 본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기적은 없다. K팝의 인기 뒤에는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많은 가수들의 노력이 있었다. 지금은 잊힌 그들의 흔적을 더듬어 정당한 평가를 받게 하는 것이 대중가요 역사를 기록하는 그가 해야 할 일이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발굴 작업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열렬한 가요 애호가였던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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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하게 복원한 걸그룹의 역사


대중음악평론가 최규성(58)은 지난 상반기에 오래전부터 계획해왔던 몇 가지 숙제들을 무사히 끝냈다. 그중 가장 홀가분한 일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정리해오던 한국 걸그룹 역사를 《걸그룹의 조상들》이란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다. ‘대중이 욕망하는 것들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 걸그룹의 역사를 실증적인 사진 자료와 함께 복원해낸 역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책에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결성돼 한국 최초의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저고리 시스터즈’를 시작으로 2000년대 이전까지 활동했던 305개 걸그룹의 존재와 활동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치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관련 인사들에 대한 탐문 조사는 이 책의 집필에 바친 시간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2012년에도 약 150개 팀의 자료를 찾아 걸그룹 역사를 정리했던 적이 있어요. 이번 책은 그 작업의 연장선으로 이전 책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K팝의 인기를 견인하는 한 축인 걸그룹의 역사를 바로잡고 싶었어요. 아직도 SES나 핑클이 걸그룹의 원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K팝의 저력이 과연 무엇인지 알려드리는 게 저 같은 사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지 쌓인 신문사 자료실과 고물상, 당시에 발행된 신문 잡지 기사를 뒤져 희미하게 남은 걸그룹들의 존재를 발굴하는 일은 노예로 팔려온 선조의 흔적을 더듬는 알렉스 헤일리 소설 《뿌리》의 쿤타 킨테 못지않은 여정이었다. 자칫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발굴 작업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스스로 열렬한 가요 애호가였던 덕분이다.


사실 그는 가요평론가란 직업 외에 대중가요 수집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걸그룹의 조상들》출간에 앞서 지난 3월 서울 롯데백화점 월드타워점에서 열렸던 ‘100앨범, 100아티스트展’의 전시물품도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산더미 같은 자료 중 일부를 선별해 내놓은 것이다.


한국 대중가요에 관한 한 그만큼 방대한 자료를 가진 수집가는 없다. 경기도 파주 ‘한국대중가요연구소’를 가득 메운 1만 2천여 장의 LP와 고색창연한 가요잡지, 빛 바랜 포스터, 가수들의 동정을 담은 신문·잡지의 기사 스크랩, 가요제 트로피와 메달, 업소 전단지 등은 그가 얼마나 대중가요 연구에 천착 해왔는지를 입증하고도 남는다.




“장소가 좁아 몇몇 귀한 자료들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경주 한국대중음악박물관에 전시 중이에요. 국내 대중음악의 역사가 백 년에 가깝지만 학술적인 연구도 제대로 돼 있지 않고, 자료 보관도 부실합니다. 여기 있는 음반들의 상당수도 고물상 같은 곳을 뒤져 찾아낸 것들이에요. 값을 매긴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구입가로만 따져도 몇 십억 원이 넘습니다.”


그의 컬렉션에는 하춘화가 여섯 살때 부른 데뷔 앨범 《하춘화 가요앨범(1962)》처럼 수백만 원을 줘도 구할 수 없는 희귀 자료부터 데뷔 앨범도 내지 못하고 사라진 무명 걸그룹에 대한 토막 기사,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팬들이 한정판으로 만든 과자류까지 없는 게 없다. 그가 이 분야에서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해온 전문가라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191장의 LP에 담긴 음반의 가치와 대중가요의 역사를 재조명한 저서 《대중가요 LP가이드북(2014)》,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홍대 앞 41팀의 인디 씬을 세상에 알린 《골든 인디 컬렉션, 더 뮤지션(2015)》등이 그간의 산물이다.


“어려서부터 팝과 우리 음악에 관심이 많아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한 게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 용돈을 아껴 3,400여 장의 앨범을 모았는데 군대 간 사이에 아버님이 다 내다 버리셨더라고요. 그 뒤 직장 생활이 바빠 한동안 잊고 있다가 1990년대 초중반부터 다시 한 장 한 장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어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집벽과 기록에 대한 욕심은 20년 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며 몸에 밴 습성이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주석의 제 1차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찍은 사진기자가 바로 그였다.


행복한 취미 생활에 만족하며 언론사에 몸담고 있던 그가 가요평론가로 전향해 지금껏 한국의 대중가요사를 다시 써내려가기 시작한 건 신문사에서 발행하던 주간지의 펑크 기사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취미 삼아 모으기 시작한 가요 물품들이 무려 6년 8개월 동안이나 주간지에 글을 연재하는 데 많은 영감과 도움을 줬다.


음악 동호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그의 글들은 B급 문화로 치부돼 오던 한국 대중가요가 주류 음악의 하나로 인정받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글에 대한 욕심이 가요자료 수집에 대한 열정을 뜨겁게 재점화시킨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1990년대 중반 나우누리,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을 이용하던 동호인들은 ‘절판소장’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최규성을 여전히 각별하게 기억한다.


유독 절판된 레이저디스크에 애정을 보이던 절판소장의 글과 자료는 한국 가요사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접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원하는 자료를 사 모으기 위해 그 좋아하던 술도 딱 끊었어요. 처음 보는 자료가 경매에 나오면 지금도 아내는 제가 주머니 사정은 생각 안 하고 욕심을 낼까 봐 안절부절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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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연구가 중요한 이유


지난 2006년 정들었던 신문사를 퇴사한 뒤 그는 지금껏 한국대중가요에 대한 글을 써오고 있는 중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백과에 서비스 중인 ‘한국 대중가요 앨범 11,000’도 그의 감수를 거쳤다. 1923년부터 1990년 사이 발매된 한국 대중가요 음반 중 역사적 의미가 있는 6천여 장에 대한 리뷰를 쓴 것도 그였다.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LP음반의 70퍼센트 가량을 소장하고 있고, 글과 사진에 익숙한 그가 아니면 쉽게 엄두도 낼 수 없는 작업이었다. 이번 책 역시 그간의 연구에 대한 중간 평가라 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음악에 대한 평가 이전에 뮤지션들이 살아온 삶에 더 주목한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노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상, 음악에 바쳐진 한 뮤지션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그가 주목하는 건 그들이 흘린 땀의 값어치이다.

 

그의 책을 읽고 나면 노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상, 음악에 바쳐진

한 뮤지션의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대형기획사에서 몇 년씩 연습생 시절을 보내는 지금의 걸그룹 못지않게 당시의 걸그룹들도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뼈를 깎는 연습으로 밤을 지샜다. 어쩌면 최규성은 K팝의 오늘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기적이 아니라 피땀으로 쌓아올린 노력의 결과라는 걸 역설하고 싶은 건 아닐까.


“대중가요사를 연구하며 노력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남들이 당장 높게 평가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쓸 데 없는 노력은 없습니다. 지금껏 명멸했던 수많은 걸그룹에게 뒤늦게라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집니다. 그들의 땀과 눈물을 기록하는 건 저 같은 사람이 해야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K팝의 역사를 성실히 기록하는 그에게서 문화사관(史官)으로서의 책임감이 읽힌다. 그의 도전이 어디까지 계속되는지 지켜보며 기록해야겠다.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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