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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작가 신미경 2018년 10월호
 
민화작가 신미경

 


 

앞서 걷는 길의 즐거움에 대하여

민화작가 신미경



취미와 여가 활동을 즐기는 아마추어 동호인들이 늘어나면서 풍자와 해학이 깃든 우리 고유의 민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하지만 전통을 중시하는 민화는 여전히 옛 작품의 밑그림을 따라 그리는 모사에 치우쳐 창작의 다양성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신미경은 전통민화의 화풍 속에 자신만의 상상력을 더한 창작민화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창작민화의 외길을 걷는 마음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만의 독창적 필법을 추구하는 제자와 영남 유림에 전해오는 도학적 서도관(書道觀)을 고집하는 스승 사이의 갈등을 그린 이문열의 <금시조>는 예술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서화(書畵)란 오직 ‘문자향서권기’를 통해 선비적 수양의 방편으로만 가치가 있다고 고집하는 스승과 ‘예술가로서 자신만을 향해 있는 삶’이 더 중요하다고 항변하는 제자는 서로의 예술적 가치관을 두고 평생에 걸쳐 갈등한다.


고금에 기대지 않는 참신한 문장으로 이름을 날린 실학자 이덕무 역시 젊은 시절, 스승 연암에게 전통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는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새롭거나 기이한 것이 나오면 남들은 모두 ‘옛 글에도 그런 예가 있느냐?’고 따지며 화를 냅니다. 하지만 옛글에 있는 것이라면 제가 무엇 하러 다시 쓰겠습니까?”


전통적 가치와 예술가적 창작욕 사이의 괴리는 사실 우리 고유의 전통예술 계승자들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리는 딜레마라 할 수 있다. 대대로 전해지는 고유한 전통은 과연 후대가 손대지 말아야 할 절대적 권위인 걸까? 민화작가 신미경(50)은 이 쉽지 않은 질문에 명쾌한 답을 들려준다.



창작민화를 하면서 제일 힘든 게 어설프거나

수준 미달이라는 얘길 듣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도록 존중하는 게 예술적 다양성이 아닐까 싶어요. 다행히 저는 민화를 처음 시작할때부터 그런 고민을 피해간 행운아였죠. 평소에 판타지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즐겨 보던 취향 때문인지 처음부터 창작민화 작업에 더 욕심이 많았어요. 전통민화가 싫어서가 아니라 제가 조금 더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었던 분야가 창작민화였던 거죠.”


지난 2007년 민화에 입문한 이후 줄곧 창작민화에 주력해온 그녀의 예술적 지향점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지난 2015년 인사동에서 열렸던 <리그 오브 레전드 소환>展이었다. 여섯 명의 유명 동양화가를 선정해 롤(LOL)게임 내의 배경과 캐릭터 등의 요소를 활용해 상상력 가득한 그림들을 선보였던 이 특별전에 민화를 대표해 초대된 작가가 바로 그녀였다.


평소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캐릭터 ‘토토로’를 등장시킨 민화 한 점이 전시기획자의 눈을 사로잡은 덕분이었다.


 


l <티모와 호랑이>, 2015년 作, 140×100cm, 순지 수간분채 봉채 금분.


“창작민화가 거의 없을 때라 미술계에서 제 그림도 모를 때였죠. 운 좋게 전시회 참가를 요청받고도 전통민화작가들께 누가 될까 봐 망설이다가 어렵게 결심한 전시였어요.”

게임 회사가 주최한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게임 캐릭터가 민화 배경 속에 등장하는 순수 창작민화들이었다. 걱정과 달리 그녀가 그린 창작민화들에 민화 고유의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현대적 캐릭터가 절묘하게 녹아들었다는 호평이 쏟아졌다.

그녀의 <문자도> <티모와 호랑이> <루루와 해태> 같은 작품들은 우리 고유의 전통 화풍이 어떻게 게임 캐릭터 같은 현대적 콘텐츠를 포용할 수 있는지 입증한 수작이었다. 2주간의 일정 동안 8천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성황을 이뤘던 전시는 그녀에게 작가적 명성 못지않게 자신이 나아갈 길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창작민화를 작업하면서 제일 힘든 게 어설프거나 수준 미달이라는 얘길듣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를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이에요. 초창기부터 두 분의 선생님 밑에서 9년이나 전통민화 기법을 꼼꼼히 배운 이유도 인물이나 소나무 한 그루에도 고유한 기법이 있는 민화의 기본기부터 확실히 다지고 싶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나만의 색깔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단 욕심이 조금씩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죠. 혼자 공부해가며 창작민화를 시도해 온 제게 그 전시는 작가로서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게 해준 전환점이 되었어요.”


이미 존재하는 밑그림(초본)을 대고 채색을 해나가는 전통민화에 비해 작가가 직접 주제와 구도를 구상하고, 밑그림과 채색을 준비해야 하는 창작 민화는 작가적 역량이 조금 더 명확히 드러나는 분야다. 밑그림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건 탄탄한 드로잉 실력.


전통 민화만 그려온 기성작가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작업도 머릿속의 구상을 도면 위에 옮기는 드로잉 과정이다. 그에 비해 홍익대 미대에서 목공예를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실내디자인과 건축을 공부하며 드로잉에 익숙해 있던 그녀에겐 창작민화에 대한 접근이 훨씬 용이했다.


무엇보다 남이 하지 않는 것,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욕심은 지금껏 창작민화라는 외길을 고집하게 된 밑거름이었다.



우연히 깨달은 작가로서의 열망


졸업 후 한동안 전시기획 회사에 다니며 박물관 전시설계 업무를 담당하던 이십 대 때만 해도 지금 이렇게 민화작가의 길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회사 생활 중 산업자원부 국비장학생으로 선발돼 이탈리아 명문 도무스(Domus Academy)에서환경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녀 또한 처음엔 비교적 안정된 학자의 길을 걸었다.


“남보다 늦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해 동기들에 비해 그림 실력이 좋진 않았어요. 그래서인지 결혼 후 대원대 산업디자인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9년동안 학생들 가르치는 일에만 매달렸어요. 그러다 가정에 더 충실해야겠다싶어 학교를 그만둔 뒤 접하게 된 게 우리 민화였죠.”


우연히 본 민화는 조선 시대 왕들이 권위를 높이기 위해 병풍처럼 세워놓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였다. 그 작품을 접한 순간 이루지 못한 꿈의 멍울이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은 감동이 밀려왔다. 그날 이후 민화에 푹 빠진 그녀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오롯이 그림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중이다.


미술계 활동은커녕 변변한 인맥 하나 없지만 그림은 여전히 그녀에게 가장 즐겁게 세상을 사는 방법이다.

밑그림을 대고 모사((模寫)하는 게 아닌 창작민화는 제작 기간이 길 수 밖에 없다. 어떤 작품은 자료조사부터 품이 많이 들어가 구상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서야 끝을 보기도 한다. 그녀의 과작(寡作)엔 다른 이유도 있다.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욕심이 없다 보니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고쳐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탓이다.


더욱이 그녀는 미술컬렉터들이 선호할 작은 사이즈의 작품보다 역사적 스토리가 더 세심하게 표현될 수 있는 대작을 선호하는 편이다. 작품 한 폭의 세로 길이가 성인 남성의 키를 훌쩍 넘는 210센티미터 이상인 작품들도 여러 편 완성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려 작품 한 편을 끝내고 나면 시력이 나빠져 매번 새 돋보기를 맞춰야 할 만큼 예술은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이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017년 作, 206×140cm, 순지 수간분채 봉채 금분.



다행히 그녀의 노력은 기대치 않았던 보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조선 민화박물관이 주관한 ‘제20회 김삿갓 문화제 전국 민화공모전’에서 망국의 한(恨)을 표현한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것이다.


덕분에 요즘 신미경은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지난 8월 말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도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들이 찾아왔다.


“주변의 권유에도 계속 미뤄왔던 전시회였는데 저와 별 친분이 없는 민화계의 ‘큰 선생님들’까지 전시회를 찾아주셨더군요. 우리 민화를 이렇게 고급스럽게 표현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아, 내가 우리 민화를 부끄럽게 하고 있진 않구나 하는 안도감이었겠죠.”


한 미술전문지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국내의 아마추어 민화작가들은 1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각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나 특수대학원에 민화 전공이 개설된 곳만 70여 군데가 넘고 지자체,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서 운영하는 취미반이 수백 곳에 달한다.


권위 있는 공모전들이 뒤늦게 창작민화의 가치를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유명 공모전은 이제 젊은 작가들

의 창작물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대가 됐다. 창작민화는 바야흐로 고미술일색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다.


그녀의 꿈은 고궁박물관에 자신의 그림이 소장되는 것과 세계 미술시장에 진출해 한국 민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일이다. 언젠가 평면 위주의 작업이 아닌 입체, 설치미술로서의 창작민화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은 꿈도 갖고 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해외무역업을 하던 친정아버지께 ‘사람은 평생에 걸쳐 계속 배우고, 많이 경험해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자랐다. 민화는 가능한 많이 배우고 경험하려고 노력해온 그녀의 인생에 찾아온 평생의 친구다.


항공기 조종사인 남편의 외조와 그림을 전공하는 두 딸의 응원도 든든한 힘이다. 남보다 앞서 걷는 창작민화의 길, 작가 신미경은 지금처럼 즐겁게 그 길 끝까지 가볼 생각이다.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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