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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부엌 수업
김길태 할머니의 된장미더덕찜과 해물쌈밥 2018년 3월호
 
김길태 할머니의 된장미더덕찜과 해물쌈밥

아흔한 살 작가님이 기억하는 부산의 맛

김길태 할머니된장미더덕찜해물쌈밥


 


 

“오늘 오랜만에 요리하는 거야. 하하하. 이젠 다리가 아파서 좀만 서 있어도 힘들거든. 하하하.”


올해로 아흔한 살을 맞이한 김길태 할머니는 말 한마디를 끝낼때마다 쾌활한 웃음을 짓는다. 그녀는 잘 웃는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웃는다. 염치 불구하고 구십 넘은 할머니가 차려주는 밥 한 끼 얻어먹고 싶다며 찾아온 손님에게도 귀찮은 기색 없이 연신 싱글벙글이다.


오늘 그녀가 선보일 요리는 고향에서 즐겨 먹던 ‘된장미더덕찜’과 ‘해물쌈밥’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풀 내음보다 바다 내음에 익숙한 그녀는 어릴 때 친정엄마가 해주던 다양한 해산물 음식들을 지금까지 잊지 않고 만들어 먹으며 고향의 맛을 지켜나가고 있다.


큰딸과 함께 살기에 굳이 손에 물 묻히지 않아도 되고, 몇 년 전부터는 무릎까지 좋지 않아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지만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요리하는 일은 늘 즐겁기만 하다. “재료가 좋아야 맛있는 음식이 나와. 그래서 다리가 좀 불편하지만 직접 시장에 가서 장까지 봐왔다니까. 요샌 통 요리를 안 해서 맛있게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

오랜만에 불 앞에 서는 터라 자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소고기와 미더덕을 간장에 볶다가 물을 붓고 된장을 풀어 된장미더덕찜을 만드는 모습이 능수능란하기만 하다. 수십 년 간 해온 조리 과정을 손이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의 추억 속 요리에는 해산물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쌈 채소 대신 데친 미역이나 다시마에 고등어조림과 젓갈을 싸 먹는 해물쌈밥도 향수를 자극하는 부산 고유의 음식이다. 씹을수록 입 안 가득 퍼지는 싱싱한 바다 향을 음미할 때면 고향 집에 온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역시 쌈에는 고등어조림이지”라고 말하던 남편 모습이 아른거리기도 한다.


“서울 사람들은 생선 없이도 쌈을 잘 싸먹데? 부산에서는 꼭 생선이 있어야 돼. 특히 우리 집 양반은 고등어조림을 넣어 먹는 해물쌈밥을 좋아하셨어. 둘 다 부산 출신이라 쌈을 싸먹으면서 어린 시절서 15년 전 노환으로 먼저 간 남편을 그리워하게 되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느라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들에게 영양가 풍부한 간식을 내주지도 못했다. ‘엄마’의 빈자리는 모시고 살던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자신은 환자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이다. 그래도 주말이면 정성스런 한 끼를 차려 미안한 마음을 전하곤 했다는 말에서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씨가 느껴진다.

 


 

자주 해주지 못하는 대신 한번을 해도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이고 싶었던 그녀는 보다 나은 맛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고등어를 조릴 때는 생선살이 다 익고 난 뒤 양념을 넣어야 탱탱한 식감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도 그 과정 끝에 터득한 것이었다.

자신만의 비법으로 맛깔나게 차린 푸짐한 음식에 낙천적이고 웃음이 많은 그녀의 밝은 기운까지 더해진 식탁에서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났다. 오늘도 그녀는 친구들과 해변가에서 뛰놀고 바다에서 해수욕하던 그 옛날 그 시절 이야기를 신나게 풀어놓으며 식사 자리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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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웃고

날마다 도전하고


1928년 부잣집 무남독녀로 태어난 그녀는 명석한 두뇌로 의과대학을 나와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지적인 신여성으로 결혼보다는 일에 몰두하며 지내던 이십 대의 어느 날, 그녀 앞에 착하고 듬직한 경제학도가 나타났다. 밑으로 동생이 여덟 명이나 되는 가난한 집안의 맏아들이라는 이유로 일가친척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그럴수록 사랑이 깊어져갔다. 친정엄마가 예비 사위의 성품 하나만 보고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준 덕분에 그녀는 스물여덟의 늦은 나이에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의 아내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딸 넷에 줄줄이 딸린 시동생들까지 가르치기 위해서는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며 맞벌이를 해야 했지만 힘든 줄 몰랐다. 가족을 위한 일이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오십 년 넘게 산부인과를 꾸려가면서 수많은 신생아들을 받았어. 한 생명이 태어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게 참 보람 있었지.” 그녀는 무릎 관절의 노화로 소아과 의사인 막내딸에게 병원을 물려준 여든여덟까지 부인과 진료를 했을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천생 의사였다.


삶의 일부였던 일을 그만두고 허전함이 찾아온 것도 잠시 그녀는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실천하며 생기 넘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친정엄마가 해주시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만들어보려 해. 감귤 껍질에 대추, 생강 등을 넣은 새콤달콤한 식혜도 꼭 한번 도전해보려고. 그때 또 놀러와.”

 


 

또한 1년 전부터 글쓰기 교실에 다니면서 구십평생의 삶을 솔직하고 차분하게 적어 내려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솔직히 자랄 때는 엄마가 병원 일 때문에 우리에게 소홀하다는 생각에 섭섭할 때도 많았어요. 엄마가 쓰신 글을 읽고 나서 엄마를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얼마 전 큰딸 박희선(62) 씨는 엄마의 글을 모아 《90세의 꿈》을 내드렸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엄마의 세월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픈 마음에서였다.


아흔한 살의 작가 할머니는 무릎을 빼면 크게 아픈 데가 없다. 그녀가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잘 먹고, 잘 웃고 낙천적으로 사는 거지 별거 없어. 나는 오래 생각 안 해. 일이 잘 안 풀렸을 때는 정말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거기서 끝내. 최선을 다했다면 그걸로 족한 거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안 좋은 건 당연하잖아? 요행을 바라면 안 되지.” 단순하지만 참으로 심오한 진리다. 앞으로도 그녀는 90여 년을 살아오며 깨달은 삶의 지혜를 글로 남길 계획이다.


올해 그녀는 큰 도전을 앞두고 있다. 큰딸 내외와 함께 국제결혼을 한 뒤 브라질에서 사는 손녀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적어도 하루 이상은 걸리는 긴 비행시간을 견디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경유지에서 며칠 쉬다 가면 문제없다며 또 “하하하” 웃는 김길태 할머니.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그녀는 제일 좋아하는 노래 <동무 생각>을 흥얼거리며 브라질로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혹시 그날을 맞이하지 못하게 된다 해도 상관없다. 주어진 하루하루 후회 없이 웃고 후회 없이 꿈꾼다면 그것만 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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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된장미더덕찜


 

 

재료 │ 4인분

소고기 100g, 미더덕 250g, 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 1큰술, 된장 2큰술, 고추장 1/2큰술, 밀가루 3큰술, 찹쌀가루 1큰술, 고사리 100g, 콩나물 100g, 쑥갓 200g


조리법

소고기 100g과 미더덕 250g을 넓은 냄비에 담은 다음, 간장 2큰술, 참기름 1큰술, 다진마늘 1큰술을 넣어 달달볶는다.

물 2컵을 부은 뒤 센불에서 끓인다.

물이 반 이상 졸아들면, 된장 2큰술, 고추장 1/2큰술, 밀가루 3큰술, 찹쌀가루 1큰술을 섞어 만든 양념장을 넣고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센불에서 다시 졸인다.

고사리 100g, 콩나물 100g, 쑥갓 200g을 넣고 약불로 끓여 살짝만 익혀서 먹는다.



‘큰술=밥숟가락, 컵=국그릇’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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