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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에 만난 사람
건축가 정영한 2018년 9월호
 
건축가 정영한

‘최소의 집’으로 풀어보는 즐거운 숙제

이달에 만난 사람│건축가 정영한


 



오랜 시간 ‘좋은 집은 어떤 것일까?’를 고민하던 건축가 정영한은 지난 2013년부터 서른 명의 동료 건축가들과 함께 ‘최소의 집’이란 장기 기획전을 진행 중이다. 지난 7월 말 여덟 번째 전시를 마친 그에겐 그만큼의 새로운 해법이 쌓였다.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좋은 집에 대한 시대적 정의도 달라진다. 그 필요성을 예측해 새로운 주거 모델을 선보이는 것이 그가 하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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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숙제, 좋은 집은 무엇인가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난제를 만났을 때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최대한 근사치의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건축가 정영한(49)이 그런 경우다. 오래 전부터 그는 ‘집’이라는 주거공간에 대해 스스로 묻고 대답하며 건축가로서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그에게 ‘당신은 어떤 집에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어떤 대답을 내놓게 될까. 자가, 전세, 월세? 아파트, 단독주택? 그도 아니면 대지 면적이나 방의 개수? 하지만 정영한이 던지는 질문의 핵심은 ‘그 집이 정말 당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인가’라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조건은 사용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기능적으로 무리 없이 뒷받침할 수 있는 건축물이라야 한다.


“건축가란 순수미술과 달리 실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생산해내는 직업이 잖아요. 건물 자체가 단순히 오브제(objet)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요구나 달라진 생활방식, 사용자의 취향 등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소유하는 집이 아니라 소유자를 위해 존재하는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양대 건축과 석사를 졸업한 뒤 20년 넘게 건축설계 일을 해온 중견 건축가에게도 좋은 집은 무엇인가란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힘든 난제다. 젊은 시절 근무하던 건축사무소에서 차상위가정의 집을 리모델링해주는 TV프로그램 ‘러브하우스’의 설계팀장으로 참여하면서부터 그는 줄곧 사용자 편리를 우선하는 집을 고민해왔다. 서른두 살 때 회사를 차려 독립한 뒤에도 ‘좋은 집’에 대한 고민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최소의 집’ 전시는 매회 세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각자가 생각하는 주거모델 유형을 제안해보는 형식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취향이나 성격, 생활방식조차 제각각인 사람들이 왜 모두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살고 있을까 하는 단순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고민이었죠. 모두가 구조나 모양, 동선 등이 획일화된 집에 산다는 건 개개인들에게 그다지 행복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그는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동료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지난 2013년 시작돼 올해로 6년째 계속되고 있는 ‘최소의 집’은 건축가들의 집단지성으로 집에 대한 개념을 정립해보자는 의도로 진행 중인 장기 기획전이다.


지난 6월 28일부터 한 달 동안 마포구 서교동 이건하우스에서 개최된 ‘최소의 집’ 전시는 이번으로 벌써 8회를 넘겼다. 올 12월에도 9회 전시가 예정돼 있고, 내년 중 당초 목표로 했던 10회 행사가 끝나고 나면 그동안의 성과를 발전시킬 수 있는 후속 프로그램으로 이어갈 계획이다.


“최소의 집은 ‘최소’라는 키워드를 통해 집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전시 기획전입니다. 흔히 ‘최소’라는 말 때문에 땅콩집이나 협소주택처럼 규모의 측면에서 정의하기 쉬운데 저희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용어를 씁니다. 각자가 가진 삶의 방식에 따라 자신에게 적절한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판단하고, 집의 유형이나 동선을 고려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또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확인해보자는 거죠. 말하자면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 무언지 생각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이 전시는 매회 세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해 각자가 생각하는 주거모델 유형을 제안해보는 형식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현재 ‘최소의 집’ 전시에 참여하고 있는 건축가는 기획자인 정영한을 비롯해 김희준, 박창현, 조성옥, 이영조 등 모두 30명. 이번 8회 전시에는 건축가 나은중·유소래, 존홍, 최장원 등 3팀이 참여했다. 이들 모두 좋은 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마다의 해법이 다르다. 전시가 모두 끝나면 각기 다른 30개의 답안이 쌓이는 셈이다.


전시에는 매회 참여 건축가 세 명의 기존 완공작 중 최소라는 키워드에 가장 부합하는 주택 모델(시공작)과 각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주거 모델(대안작)을 선보인다. 단, 대안작의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구축 가능한 모델이라는 전제가 붙는다. 단순한 페이퍼 아트워크로 끝내기보단 실현 가능한 건축물로 이어가기 위한 조건이다.


최소의 집 전시는 전시공간만 도움받을 뿐 일절 후원을 받지 않고 참여 건축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비용으로 진행된다. 이 또한 최소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그들만의 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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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라이프스타일의 집


몇 년 전 땅콩집 열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소득수준이 늘어나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면서 작게라도 자기 집을 짓기 원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반증이었다. 하지만 집은 여전히 재산 가치로 평가되거나 사용자의 취향과 상관없이 지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집을 좀 더 새로운 관점에서 다각도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새어나왔다. 급증하는 1인 가구, 라스트 하우스에서 여생을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 노인층, 대부분의 일과를 집 밖에서 보내는 맞벌이 부부 등 세대별 라이프 스타일도 크게 변했다. 그렇다면 집을 설계하는 건축가들도 수요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건축으로 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설계가 아무리 좋아도 처음부터 완벽한 집이란 없습니다. 건축가가 남겨 놓은 미완의 영역을 완성하는 건 거기 살게 될 사람들이에요. 살아가면서 사용자가 더 편한 동선을 찾고, 필요한 용도에 따라 공간의 쓰임새를 바꿀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놓는 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죠.”


정영한 역시 오랫동안 ‘9X9 실험주택(2012)’ ‘체화의 풍경(2013)’ ‘다섯 그루 나무(2015)’ 등의 설계를 통해 집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주거 대안을 제시하는 일에 앞장서온 장본인이다. 특히 2015년 한국건축가협회상과 2016년 부산다운건축상을 수상한 건축물 ‘다섯 그루 나무’는 집에 대한 정영한의 정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 건축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부산 초량동 구 도심에 자리 잡은이 게스트하우스는 그 집에 사는 사람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맥락에 녹아든 창의적 설계로 호평을 받았다. 좁고 가파른 계단, 저마다 크기가 다른 골목으로 둘러싸인 40평 남짓한 부지 위에 그는 주변 건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높이가 다른 다섯 채의 건물을 올리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을 골목길과 비슷하게 만들었다.


인근 건물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벽돌과 알루미늄 강판을 사용해 주변 건물들과의 위화감을 줄인 것도 사용자와 이웃을 위한 배려였다. 초량이라는 옛 동네의 정서가 스며들도록 설계한 이 건물은 오랜 고민 끝에 정립해온 그의 ‘건축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결과물이다.


그런가 하면 경기도 양주에 건축된 ‘9X9 실험주택’은 70대 여류 화가를 위한 맞춤형 집으로 관심을 모았다. 건축주인 사위는 장모가 머물 작업실 겸 원룸을 원했다. 이를 위해 정영한은 가구와 환기, 냉난방 설비를 모두 벽에 매립하는 퍼니처 코리도(Furniture corridor) 기법을 채택했다.


필요할 때만 열어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간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현재 ‘9X9 실험주택’은 새주인인 사위의 취향에 맞춰 새로운 용도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형태나 규모가 아니라 그 안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는 집. 사용자가 행복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생각해보라는 것이 그가 지금까지 우직하게 ‘최소의 집’ 전시를 계속해온 이유일 것이다.


김수근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김수근 건축상 프리뷰상’ 수상자(2014년)이기도 한 정영한에게 건축은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겨져 있다.


아니, 그는 어쩌면 스스로 묻고 답하는 가운데 어렴풋이 정답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는 그만두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생각만 해도 심장을 추동하는 그 즐거운 숙제를!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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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열린 ‘최소한의 집’ 8회 전시(왼쪽), 부산시 초량동에 세워진 게스트하우스 ‘다섯 그루 나무’(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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