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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영글기를 기다리는 글 농사꾼의 마음 2019년 6월호
 
시가 영글기를 기다리는 글 농사꾼의 마음


 

 

“출발한 지 오 분밖에 안 되얏응게 인제도 한 시간은 더 가야 혀. 우리는 질이나서 괜찮은디 서울 양반이 가깝해서 어쩐디야.”



지루한 초행길이 될 것을 염려하시던 옆자리 할머니의 말처럼 박성우(49) 시인의 작업실은 정읍 시내에서도 시내버스로 한 시간은 더 들어가야 하는 산내면 장금리에 있다. 도심에서 뚝 떨어진 외진 곳이라 10여 년 전 단돈 900만 원을 주고 샀다는 동네 초입의 작은 컨테이너 집이 그의 작업실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시인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배어 나왔다. 껑충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는 변한 게 없었다. 동문 후배의 문재(文才)를 각별히 아끼는 안도현 시인이 어느 일간지 칼럼에서 ‘갸름한 얼굴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처럼 까무잡잡한데, 한마디로 측은지심을 유발시키기에 딱 맞는 모습이다. 시인들 사이에서는 그가 낸 시집의 첫 장에 나오는 사진을 보고도 시집을 사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라는 농도 있다’고 묘사한 그 모습 그대로였다.



4년 전 시인은 전업작가로 살기를 작정하고 고향 마을 근처인 장금리로 들어와 터를 잡았다. 안정된 대책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시인은 지금껏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로 밥걱정 없이 글만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고 근황을 전한다. 많은 문인들이 전업을 꿈꾸지만 실제로 그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그럼에도 결혼 전 아내 앞에서 나는 시를 쓰는 사람이니 돈 문제로 부담 주지 말라고 선언했던 이 솔직한 사내는 기어이 그 일을 행동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 무렵 시인은 몇몇 지인들에게 시를 써야 할 시간에 직장에 얽매여 있으니 조바심이 난다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큰 반대가 없었던 건 시 쓰는 일만 하고 싶다는 제 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예요. 아내(시인 권지현)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장모님까지도 선뜻 제 편을 들어주셔서 감동 받았어요. 제가 다닌 모교에서 일흔한 살까지 청소노동자로 일하신 노모는 3년 만에 교수직을 그만 두겠다는 말에 좀 서운해하셨지만 결국엔 이해해주셨지요. 어쩌면 더 열심히 쓰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려고 직장인들처럼 시간까지 정해놓고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쉽지 않은 전업작가 생활을 지탱해주는 건 변치 않는 시인의 성실함이다. 마을 입구 오목한 터에 외따로 들어앉은 작업실은 시인이 글 농사를 위해 마련한 텃밭이나 마찬가지다. 책장마다 가득한 책들과 의식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재도구 몇 개뿐, TV 한 대 없는 작업실 환경은 시작(詩作)에 매진하는 그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적요한 일상 속에서 시인은 스스로 한 그루의 글 나무가 되어 어느새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잠시 건너다본 시인의 수첩엔 시로 영글기를 기다리는 생각의 씨앗들이 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하루 종일 글만 쓸 수는 없지요. 자연에서 배우는 게 많아 올해도 작게나마 농사를 짓고 있어요. 집 앞 텃밭에서 청양고추, 가지, 배추, 상추, 곤달비, 옥수수 같은 작물을 길러 아내와 딸이 사는 서울 집에도 가져다주고, 저도 먹고 살고요. 글 쓰는 사람들에겐 ‘땅 공부’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시골 생활은 어느 한구석 글감이 되지 않는 게 없으니까요.”



농사일이나 마을 울력이 없는 날이면 시인은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혼자 보낸다. 딱히 글 청탁을 받지 않아도 부지런히 시를 쓰고 글을 끼적이는 게 정해진 일과다. 서른일곱 가구, 40여 명의 마을 어른들도 한참 나이 어린 그를 ‘시인 동상’이라 살갑게 챙기며 글 농사에 매진할 수 있게 돕는다. 온종일 두문 불출하는 그가 제법 유능하고 바지런한 글 농사꾼이라는 걸 알게 된 뒤부터다.



“어쩌다 서울 집에 잠깐 다녀오면 그새 풀들이 자라 마당을 덮어버리는데, 슬그머니 오셔서 풀을 베 놓고 가시는 어르신도 있고, 텃밭에서 딴 상추나 오이같은 걸 봉지에 담아 걸어놓고 가시는 할머니도 있어요. 그분들이야 말로 사는 게 시 같지요. 어쩌면 제 시의 많은 부분이 그분들께 배운 건지도 몰라요.”

 

 



4년 전 우석대 문창과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곳에 들어온 그는 200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로 등단한 뒤 문단 안팎의 관심을 받아온 중견 시인이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로 당선되며 아동문학으로까지 관심을 넓힌 그는 정감 있고 진솔한 언어로 ‘청소년 시’라는 장르를 개척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중고등학교 국어시험엔 종종 그의 시들이 지문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잠시도 한눈팔지 않고 시를 품어온 그의 책들은 공저를 포함해 모두 20여 권. 특유의 소박하고 정겨운 시들로 가득한 그의 책들은 서점가에서 여전히 독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그중에는 어린이 도서 《아홉 살 마음 사전》처럼 누적 판매부수가 13만 부를 훌쩍 넘긴 스테디셀러도 있다. 연계작인 《아홉 살 함께 사전》《아홉 살 느낌 사전》 등의 인세 수입도 전업작가 생활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시도라고 평가되는 청소년 시집 《난 빨강》도 지금껏 8만 부 이상 팔린 책이다.



그의 시는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와 폭넓은 통찰로 청소년과 성인 독자를 아우르는 매력이 있다. 지난 2002년 출간된 첫 번째 시집 《거미》에는 평생 막노동으로 거칠어진 아버지의 두 손을 두꺼비에 비유한 <두꺼비>라는 시가 나온다.


‘아버지는 이윽고 식구들에게 두꺼비를 보여주는 것조차 꺼리셨다 칠순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날이 새기 전에 막일판으로 나가셨는데 그때마다 잠들어 있던 녀석을 깨워 자전거 손잡이에 올려놓고 페달을 밟았다//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버지는 지난겨울, 두꺼비집을 지으셨다 두꺼비와 아버지는 그 집에서 긴 겨울잠에 들어갔다 봄이 지났으나 잔디만 깨어났다// 내 아버지 양 손엔 우툴두툴한 두꺼비가 살았었다(<두꺼비> 중).’



젊은 시절부터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였다. 넉넉잖은 가정 형편 때문에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광어양식장 인부, 학습지 외판원, 막노동꾼 등의 직업을 전전했고 이십 대 중반 원광대 문창과로 편입해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시작했을 때도 낮 동안 봉제공장에서 ‘시다’로 일하며 힘들게 야간대학을 마쳤다. 그랬던 그가 ‘창작과 비평’ 기획위원과 대학교수직까지 고사하며 장금리로 들어 온 건 이제부터 더욱 진지하게 아버지의 두꺼비 손을 닮은 시를 써야 한다는 절박함은 아니었을까. 이곳에 정착한 후 시인의 글은 원하는 만큼 착실히 여물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곳 장금리에서 글쓰기를 방해하는 건 하루 한 번 밥 먹으러 찾아오는 길고양이뿐이다.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찾아와 작업실 창문을 긁어대는 녀석에게 시인은 ‘오후 3시의 고양이’라는 시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마을 어른들처럼 경계심 없이 고양이 밥까지 챙기게 됐다. 수첩 어딘가에 분명 녀석의 이름이 적혀있을 거란 짐작에 배시시 웃음이 삐져나왔다.



“이런 작은 일상의 에피소드가 다 시의 소재가 되곤 합니다. 고양이가 지금까지는 어느 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다녔는지, 밥을 다 먹고 나면 또 어디로 놀러 가는지 상상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하고 마음에 맺히는 생각이 있어요. 시인은 노련한 농사꾼처럼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며 기다려줘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전업작가가 된 덕분에 마음껏 시를 기를 수 있으니 저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에겐 한 줄 한 줄 빛나는 시가 된다. 잠자리에 들었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시상이 흘러가버릴까 싶어 다시 일어나 메모장부터 챙기는 습관도 버리질 못했다. 모아둔 글감을 하나하나 살뜰히 길러 수확한 글들은 올해도 몇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다. 2014년 당시 여덟 살이던 딸 규연이를 생각하며 작업했던 《아홉 살 마음 사전》에서 시인은 행복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가족끼리 소풍을 가서 김밥을 먹다가 하나 남은 김밥을 서로 입에 넣어 주려 할 때의 마음.’ 그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키워지고 있을 박성우의 다음 시들이 몹시도 기다려진다.




글 이종원 편집장 | 사진 최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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