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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지은이 : 피천득   옮긴이 : 김정빈 엮음    
분류 : 국내 | 단행본 | 문학.예술
책정보 : 변형국판, 256쪽
출간일 : 2003-05-30   가격 : 8,000원
ISBN : 89-464-1386-7    
도서구입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소설가 김정빈의 문학적 감성으로 뽑은 피천득 문학의 백미 173절을 엮은 책이다. 일반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는 <인연><수필><오월><나의 사랑하는 생활><엄마> 등의 수필과 시에서 가려 뽑은 글을 통해 피천득의 문학적 공간을 읽고, 사진작가 김홍희의 사진을 통해 피천득의 물리적 공간을 본다. 서재,거실,방,인형,액자,책 등의 사진은 老작가의 생을 엿보는 재미를 준다.


■ 내용 보기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오월은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 <오월> 중에서

가장 피천득다운 글맛은 청(淸)과 신(新) 사이에 있다. ‘청’은 맑고, ‘신’은 새롭다. 맑기에 새롭고, 새롭기에 맑은 오월. 그 오월이 가장 금아다운 간결하고 산뜻한 표현 속에 지금 여기 와 있다. 지난 오월도 아니고 다가올 오월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오월. 어언 이 글이 쓰인 지도 50년이 되었고, 스물한 살 젊음을 말하던 선생 또한 구순(九旬)의 노옹(老翁)이 되었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그렇듯 끝내 머물 수 없는 것이 삶이런가. 다만 작가가 남긴 글만이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로 그가, 그리고 우리가 한때 젊었었다는 것을 말해 주리라.

수필은 청자연적靑瓷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 속으로 난 평탄하고 고요한 길이다. - <수필> 중에서

별과 사막, 사막 속의 우물, 장미와 왕자.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이것들에 영원한 신비를 부여해 후대의 동화작가들을 절망시켰거니와, 피 선생은 <수필>로 문학 장르로서의 ‘수필’을 설명해줄 만한 격조 있는 이미지들을 다 사용해 버렸다.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되는 글은 매년 수천 편. 그러나 청자연적 같고, 난 같고, 학 같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 같은 글은 얼마나 귀한가. 선비정신과 서양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쓰인 이런 문장을 다시 보기까지, 우리는 다시 오백 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며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며, 몇몇 사람을 끔찍이 사랑하며 살고 싶다. -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피 선생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는 피 선생 자신의 세계와 그를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세계로 나뉜다. 이중 후자가 인연의 세계이며, 후자는 다시 네 계층(階層)으로 나뉜다. 끔찍이 사랑하는 몇몇 사람의 세계,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다만, 금아 선생이 아닌 우리에게는 그 다음의 세계가 있다. ‘미워하는 사람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사람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것 말고도 또 하나가 더 있으니, 그것이 ‘끔찍이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전자는 없어서 좋고, 후자는 있어야만 행복하다. 금아 선생은 양자를 모두 충족했나보다. 그리하여 인생에서 참다운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면 그것은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순수와, ‘고운 얼굴을 욕망 없이 바라다보는’ 무욕으로써 가능했으리라.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버릴 것을 왜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 <엄마> 중에서

인간을 창조한 신의 최대의 실수는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다는 것이다. 사랑을 주었으면 이별을 주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신은 사랑과 함께 이별을 주었다. 거기에서 문학이 시작되고 예술이 시작되는 것, 그러므로 예술은 신의 실수가 낳은 무지개이다. 그러나 그 같은 실수는 또한 신의 공적이기도 한 것. 그 아픔이 있기에 사랑은 사람으로 성숙된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삶이고, 삶은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이별이 있는 사랑을 알 때만이 진정 사람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가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 <인연> 중에서

<인연>은 그 내용으로 볼 때는 애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애달픔을 애달픔으로 말하는 데서 그친다면 그것은 금아 선생다운 글이 아니다. “슬프되 상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용을 얻은 옛 현자의 말씀이거니와, 금아 선생은 춘천의 인연을 통하여 ‘슬픈’ 이야기를 ‘상심하지 않는’ 담연(淡然)한 경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