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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지은이 : 장왕록.장영희        
분류 : 국내 | 단행본 | 문학.예술
책정보 : 216쪽, 143*205
출간일 : 2004-06-30   가격 : 9,000원
ISBN : 89-464-1474-X    
도서구입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 11번가

'모습과 말하는 것은 닮은 꼴이지만 아버지의 재능, 부지런함, 명민함을 제대로 물려받지 못한 저는/ 아버지가 하신 일, 아버지가 하시고 싶으셨던 일까지 모두 닮고 싶어/ 아버지가 보셨던 것과 똑같은 강, 똑같은 하늘, 똑같은 길을 보며/아버지를 생각합니다….'

한국 영문학계의 태두인 고(故) 장왕록 박사(1924~94)를 기리며 그의 딸 장영희(52) 서강대 영문과 교수가 하늘나라로 띄운 편지다. 편지 내용처럼 영문학자로, 교수로, 번역가로, 수필가로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는 그는 장 박사의 10주기를 기념해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을 펴냈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생전에 장왕록 교수가 펴냈던 수필집에서 발췌한 글과 그 외 신문 , 잡지에 기고했던 유고를 보태 엮었다. 여기에 10주기를 추모하는 이해인 수녀의 추모시와 장영희가 아버지에게 쓴 20년 늦은 편지 등을 함께 수록했다. 장영희 교수가 2001년 안식년으로 미국 보스턴에 거주할 때 쓴 ‘20년 늦은 편지’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잘 배어 있어 가슴 찡하다.

6월 30일 서강대 동문회관에서 있었던 출판기념회에는 이해인 수녀가 추모시를 낭송하고 장영희 교수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서문 -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이 책은 순전히 나의 이기적인 목적, 즉, 나의 아버지 고 故 장 왕록 (張旺祿) 박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책표지에 넣고 싶은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10년 전 내 마음 속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1994년 7월 17일, 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여 목성 아래쪽에 지구 반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날, 20세기 최대의 우주적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날, 내 우주에도 구멍이 뚫렸다. 속초로 휴가를 떠나셨던 나의 아버지 장 왕록 박사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다음날 일간 신문에는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 영문학의 역사, 번역 문학의 태두 장왕록 박사가 타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하기에 꽤 화려하고 인상적인 타이틀이지만,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라는 단어 석 자만큼 위대하고 화려한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그 해 여름 아버지와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인 《스칼렛》의 공역을 끝내고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공동 집필하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두 시간 전쯤 아버지는 속초 시내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내게 말씀하셨다. “내일 비행장에서 출판사로 직접 갈 테니까 3시에 거기서 만나자. 같이 11과 작업해야지.” 그것은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유언이 되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5개월 간은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기였다. 슬픔과 상실감으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아버지 대신 팀의 대표 저자가 되어 교과서 작업을 계속했다. 교과서는 다른 책과 달리 교육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합격, 불합격 판정이 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서 아버지 이름을 다시 한번 저자로 책의 표지에 넣어드리고 싶었다. 하루에 겨우 한 두시간씩 자면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 끝에 책 세 권을 완성했고, 그리고 합격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아버지의 이름을 표지에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교과서 저자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나는 교육부에 찾아가서 담당 편수관에게 빌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실제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이 책의 반 이상은 우리 아버지가 쓰신 거라고, 꼭 공동저자로 이름을 넣게 해 달라고. 아버지가 정리하셨던 자료, 아버지의 친필이 적힌 원고까지 증거로 보여 주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통지나 연락을 할 수 없다는 ‘편의적’ 이유를 내세워 아버지의 이름을 책에 넣을 수 없다는 편수관의 입장은 완강했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결국은 쫓겨나다시피 해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내 마음 속으로 약속했다. 죽은 사람 그렇게 홀대하면 못쓴다고, 누구나 어차피 죽게 마련인데, 죽었다고 해서 멀쩡히 책 써놓고도 표지에 이름도 못 내면 이 세상 허무해서 어떻게 사냐고. 사람은 오직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쉽사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사라져서도 안 된다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있는 사람들이 통상 사용하는 미약한 방법으로 ‘통지나 연락’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이라고.....어디, 장 왕록 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 주겠다고....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자식 두어 무엇 하나, 죽을 고생하고 자식 키우셔서 생전에 보시지 못한 자식 덕, 돌아가신 후에라도 꼭 한 번 보여 드리겠다고.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나의 ‘두고 보자’ 식의 오기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그런 오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아니 아예 없어졌다. 그 편수관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이제 아버지를 생각하면 서슬 퍼런 오기보다는 잔잔한 평화가, 가슴 찢어지는 상실감보다는 어쩔 수 없는 그리움만 마음 속에 떠오른다. 아버지가 전공하시던 작가 헨리 제임스의 《귀부인의 초상》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병약하고 못생긴 랠프 타쳇이 사랑하는 친척 여동생 이사벨로 하여금 자기 유산을 대신 받게 하지만, 바로 그 유산 때문에 이사벨은 잘못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이에 통한을 느끼며 랠프는 임종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이사벨에게 말한다. “이사벨, 결국 고통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그렇다. 육신은 사라지지만, 결국 추억은 남고, 그 추억은 사랑으로 영원히 남는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다수 아버지가 생전에 출판하셨던 《가던 길 멈춰 서서》(우석출판사, 1989)라는 수필집에서 발췌했고, 그 외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셨던 글들을 몇 개 더 보탰다. 이번에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글들을 다시 읽고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실수담, 친지분들과 학생들과의 사사로운 일상의 글들 모두에서 아버지의 명민하고 선량한 성품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우리 형제들은 늘 아버지의 89세 미수 잔치를 꿈꾸며 살았다. 아무리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이라지만, 일흔 살로 돌아가실 때도 20대 청년 같은 몸과 에너지를 자랑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가실 것은 정말 꿈도 꾸지 못했다. 자식이 여섯 중 그 누구 한 명도 떠나시는 곁을 지켜 드리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길에서 앰뷸런스를 볼 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구나, 혹 이 세상을 떠나신다면, 아버지와 작별인사를 할 시간이 있겠구나, 하는 부러움이었다.

영국작가 새뮤엘 버틀러는 ‘잊혀지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랑은 남는 것, 우리의 추억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는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영혼도 아주 큰 소리로 말하면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생전에 못한 말을 나는 이제야 목청껏 외친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누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걸 믿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 것 같아 외롭지 않고 마음 든든하다.

2004년 6월 12일
서강대학교 인문관에서
장 영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