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샘터단행본 > 분야별도서 > 문학.예술
책제목 : 이 집은 누구인가
지은이 : 김진애        
분류 : 국내 | 단행본 | 문학.예술
책정보 : 무선철, 153*205, 올컬러, 348쪽
출간일 : 2006-04-20   가격 : 12,000원
ISBN : 89-464-1545-2 03810   CIP : 2006000856
도서구입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사람 사는 집은 어떻게 하면 따뜻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든 집이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이 될 수 있을까.” 저자 김진애의 행복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

집에 대한 명쾌하면서도 재미있고 따뜻한 감성 에세이  

 

이 책은 미국 타임지에 의해 21세기 차세대 리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한국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바 있는 건축가 김진애 박사의 “집에 대한 에세입”이다. 2001년 펴냈던 같은 제목의 책을 이번에 보완하고 다듬어서 새롭게 꾸몄다. 새로운 정보와 더욱 풍성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문장을 보다 더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이면서 아름다운 문장으로 바꾸었다. 이와 더불어 ‘집과 가족’을 소재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셨던 장욱진 화백의 그림을 책의 표지와 본문에 삽입해서 책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인 것도 이번 개정판의 특징이다. 

다음은 저자 김진애 박사가 직접 이 책의 저술 목적과 의도, 그리고 이 책의 소용 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이를 이 책의 보도 및 홍보 자료로서 여기에 붙인다.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이 집은 누구인가’ 라는 책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릴까? 나는 저자로서 호기심이 난다.  
이 제목은 물론 집을 의인화시킨 것이다. 집을 사람으로 봄으로써 집의 모습을 새롭게, 자연스럽게, 생생하게 느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사람이 사는 집, 삶이 담긴 집’ 같은 말도 있겠지만 ‘이 집은 누구인가’는 좀 더 상징적인 제목일 것이다. 집에 사는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하고 궁금증을 갖게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그런데 구태여 집을 의인화 시킬 필요가 있는가. 그럴 필요도 없이 사람 없는 집이란 생각할 수 도 없고 사람이 없다면 집도 필요없고, 사람이 살아야 집도 비로소 집다워지는 것일 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하곤 한다. 집은 바로 사람 아니냐고. 그런데. 나는 이 책에서 ‘집은 바로 사람 아니냐’는 그 당연한 것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하고 싶었다. ‘멋있는 집, 편한 집, 근사한 집, 아름다운 집, 행복한 집, 따뜻한 집’ 등 집이란 무한하게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집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 나름대로 고유한 답을 가질 수 있다면, 집과 사람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포개진다면, 그래서 사는 의미를 무엇인가 새롭게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집은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 되는 것 아닐까.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한다. 집을 보면 어떤 사람이 사는지 정말 알아맞힐 수 있는지, 사람을 보면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 상상이 되는지,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집을 설계해야 한다고 그려지는지 하는 질문들이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물론 내가 전문인으로서 훈련된 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상상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집은 사는 사람의 품성, 사는 사람의 성향, 사는 사람의 정서를 드러낸다. 집은 사는 사람의 스타일을 드러낸다. 사람을 보면 집이 그려진다. 물론 집을 보고 사람을 그리는 것 보다 맞추기 어렵다. 그러나 사람의 품성, 성향, 정서, 스타일을 알아갈수록 그가 어떤 집에 살고 있을 지, 또는 어떤 집에 사는 것이 좋을 지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집은 곧 사람이다. 우리 사는 집이 곧 우리 자신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 사는 집 모습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될 수도 있으리라. 집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바탕이다. 


‘이 집은 누구인가’에 대해 나름의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집을 통해 우리를 본다. 집을 통해 나를 찾아본다. 집에서 사람 사는 뜻을 헤아려본다. 집에 나라는 사람을 담아본다. 이 책에 대한 저자로서 나의 생각이다. 


책을 쓰게 된 동기

 


이 책은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책이다. 집에 대해서 무엇인가 쓰리라 하는 생각은 건축에 입문한 뒤로 끊임없이 생각해왔다.
아름다운 집, 집의 역사, 집의 정치사회학, 집의 경제학, 집의 문화학, 집의 건축학, 집과 도시와의 관계, 집 만드는 기술, 집에 얽힌 부동산 이야기, 집과 남녀관계의 역학 등, 집에 대해서 만들 수 있는 책은 끝없이 많다. 그만큼 집은 사람 생활의 면면에 두루 걸쳐있다.


나는 특히 ‘집의 감성’에 대한 책을 원해 왔다. 삶이 묻어 있는 집의 면면, 속속에 녹아 있는 감성을 읊어내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사람들에게 그런 책을 써 볼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 내가 써 볼 엄두는 진작 내질 못하였다.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집의 감성에 대해서 글을 쓰기란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또 한편 나의 감성이 과연 그렇게 풍부할까하는 의문도 갖고 있었다. 나 자신은 전문성이 강조된 책을 만드는데 힘 써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나에게 집의 감성에 대한 글을 쓰도록 한 번 나서볼 용기를 준 계기가 드디어 찾아왔다. 1995년 초, 나름의 성격이 빼어난 문화지「샘이 깊은 물」에서 집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원고청탁이 들어왔었다. 이 잡지가 지향하는 문화적 성격과 그를 지키려는 고집스런 까다로움을 잘 아는지라, 나는 비록 그리 긴 글은 아니었지만, 50여 매의 글을 꽤 힘을 들여 써내었다. “사는 사람 있는 집”이라는 글이었다. 글을 쓰고 보니 내 눈에도 괜찮게 보였다. 나는 평소 글 쓸 때 의식적으로 논리적으로 쓰려는 성향이 있는데 그 성향을 의도적으로 깨 보려고 노력했었고 나름대로 그 감성적 성과가 읽혀졌기 때문이다.


여간해서 내가 쓴 글을 잘 안 보는 남편이 어쩌다 이 글을 읽어보더니 하는 말,
“꽤 쉽게 쓰네……. 잘 읽히는데? 괜찮다.”
하는 것이었다. 큰딸이 하는 말,
“엄마 다른 글과 좀 다르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평에 꽤 고무가 되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나의 감성의 너비와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대한 또 다른 글을 한 번 써보리라고 용기를 낸 것이다.

 

집에 대한 생각이 새삼 필요한 시간


이 책을 꼭 써내야겠다고 나는 여러 이유를 들어서 나 자신을 설득을 하곤 했다. 
그 첫째, 집이야말로 그 어떠한 건축물보다도 또한 사람이 만드는 그 어떠한 물리적인 실체보다도, 일상생활에서 사람의 감성이 담겨지고 감성이 표현되고, 감성에 어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의 무한하고 오묘한 감성을 계발하고 승화시키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집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실체로 표현되지만, 집은 기본적으로 ‘사람’과 ‘삶’의 눈에 안 보이는 면면의 표현이다.


둘째 이유, 집의 감성적인 면에 대해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다. 또는 그리 관심도 없다. 집의 물리적인 실체에 담겨있는, 그 실체가 시사하는 사람 사는 모습, 사람간의 관계, 사람의 감성에 대해서 거의 무지할 뿐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나 자신도 집에 대해 어떠한 감성을 갖고 있는지 어떠한 감성이 집에 담겨지기를 원하는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다. 나 역시 이 글을 씀으로써 도대체 집에 대한 나의 생각들이 어떠한 것인지 보다 낱낱이 알고 싶었다. 


셋째 이유는 명확하다. 감성을 회복해야 우리의 집도 보다 집같이 되겠다 하는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점으로 제기하고 있듯이, 사실 우리에게 집은 지나치게 부동산으로서 또는 기능적인 공간으로서만 인식되고 있다. ‘집의 의미의 해체 또는 파괴’가 우려할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진행되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더불어 ‘가족의 해체’ ‘세대 간 갈등’이 더해지고 있어 집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집의 파괴’ ‘가족의 해체’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과연 ‘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절실한 개념이 필요함은 물론, 과연 ‘가족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정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과 정의가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지고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려면 그 바탕에 집에 대한 감성이 면면하게 깔려있어야 할 것이다. ‘집의 감성 회복’은 새로운 단서를 주는 무궁무진한 보고(寶庫)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이유를 들자면, 집에 대한 기능적 접근을 더욱 견제하여야 할 만큼, 이즈음의 기술 발달은 인간적 터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최근 가전제품, 정보통신기술들이 발달되면서 ‘첨단주택’에 대한 환상이 생기고 있는데, 마치 첨단기술이 들어오면 집에 대한 모든 문제들이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는 현상이 그것이다.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첨단기술을 택해서 쓰는 것조차 집에 대한 주체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감성 없는 기술’이란 인조인간을 위해서나 필요할까, 살아있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의미하다. 기술이 더욱 발전될 이 21세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의 감성에 대해 더욱 아끼고 믿고 즐길 수 있어야 우리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열두 가지 코드로 풀어낸, 우리가 살고 싶은 집이 행복해지는 이야기


책을 펴내며,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이 책을 처음 쓸 때 5년이 걸렸고, 다시 다듬는 데 5년이 흘렀다. 글은 내가 쓰지만 독자들이 당신의 집을 그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옛날에 살던 집을 찾아다녀봤어요.” “지금 사는 집이 새삼 다시 보여요.” “집에 뭔가 하나 바꿔 봤어요.” “어쩐지 행복하게 느껴져요.” 독자들이 해주시는 이런 말씀을 들으면 저자로서 행복하다.


살던 옛집을 찾아보며 추억을 더듬는 행위란 삶의 여유이자 뒤를 돌아보는 여유, 자신을 들여다보는 여유 아닌가. 집이란 추억을 만드는 곳이다. 집의 추억은 사람에게 살아 있다는 존재감과 뿌듯한 행복감을 안긴다.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결코 초라하지만은 않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사는 집에 그렇게 많은 뜻이 담겨있음을 깨달으면 공연히 행복해진다. 값의 차이로 행복감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뜻만큼 행복감이 커지는 것이다.   ……


‘어쩐지 행복한 느낌’이란 참 정의하기 어렵다. 왜 우리는 어쩐지 행복하게 느낄까. 여러 이유가 작용하겠지만 무언가 산다는 의미와 살아 있다는 뜻을 느낄 때, 어딘지 정다운 느낌을 확인할 때, 뭔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 때, 무언가 다른 내일에 대한 희망이 솟을 때 어쩐지 행복해지는 것 아닐까. 행복은 느낌이다. 우리는 느끼는 만큼 사는 것이다.   

 

초판에 대한 독자의 반응(인터넷 서점 알라딘 독자게시판에서)

 

“언제부턴가, 집은 우리에게 우리 삶을 담아내는 터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재산으로서의 가치, 생활 수준을 설명하는 척도.. 이런 것으로 더 많이 기능하게 된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은 집이라는 것이 원래 참 따뜻한, 사는 사람의 심성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그리고 그 심성을 더 가꿔주고 다듬어주는, 우리 삶의 그릇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집이란 존재에 대해 전혀 생각치 못했던 그 어떤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스스로 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집이 어떤 집인지 어떤 스타일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집이란 가족의 편안한 안식처일 뿐만아니라 휴식의 개념을 초월한 그 어떤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소중하다고 느낀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인 것 같다.”

 

“집이 부동산적 가치로 또는 기능적인 면으로만 인식되고 있는 요즈음, 좀더 집다운 집을, 감성이 회복되어 건강하고 튼튼한 집을 만들고자하는 작가의 노력에 경이를 표합니다. 여전히 만족스러운 내 집 마련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그녀의 말대로 이젠 양보다는 질을 생각해 봐야할 때가 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