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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 목소리의 무늬
지은이 : 황인숙        
분류 : 국내 | 단행본 | 문학.예술
독자대상 : 20세 이상 성인 남녀
책정보 : 무선철, 300쪽
출간일 : 2006-08-31   가격 : 9,500원
ISBN : 89-464-1571-1   CIP : 2006001848
도서구입 : 교보문고 / YES24 / 인터파크 / 알라딘 / 11번가

이생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에 대한 한없이 투명하고 애틋한 애정의 헌사

 

시인 황인숙의 3년여 만의 신작 산문집

이 책은 “새와 나무, 고양이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인 황인숙이 3년여 만에 펴내는 신작 산문집이다. 황인숙은 이 책을 통해, 남들보다 명민하고 섬세한 직관을 가진, 그래서 더 치열하고 열정적일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자신이 만난 사람과 풍경들, 사물과 사건들을 접하는 동안 느낀 감상과 인상들을 세심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시시때때로 변주되면서, 삶이 지니는 다종다기한 표정들을 실감있게 전달한다. 시인이 묘사하는 일상은 ‘시인’의 신성神性이 거의 완전하게 거세되어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보편적이다.

시인은 다른 이와 똑같이 체중계의 줄어든 눈금에 환호하고, 간절한 기원을 담아 로또복권을 구입하며, 재미있는 만화책에 빠져 밤을 새기도 하고, 학교에서 울려퍼지는 확성기 소리에 항의하는 전화를 걸기도 한다.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 쉽게 눈에 띌 만한 친근하고 낯익은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유사한 삶의 무게를 체감했을 독자라면 이러한 시인의 일상을 엿보는 동안 느껴질 동질감 때문에라도 적지 않은 재미와 위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 특유의 섬려한 직관과 감성이 이러한 일상적 풍경들이 범속하고 남루한 것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준다. 시적인 직관에 의해 변주되는 그녀의 목소리는 그대로 삶의 다양한 표정들을 아우른다. 삶이 보여주는 서늘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찬미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아리아처럼 우미하고, 자신이 옹호하는 가치와 신념을 표명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세레나데처럼 수줍고,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일들을 소개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왈츠’처럼 경쾌하다. 이처럼 다양한 목소리의 무늬는, 진실과 아름다움에 대한 옹호라는 그녀의 일관된 신념의 호위를 받으며 호소력 짙은 색채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무뚝뚝한 일상에 대해, 그 심상한 풍경들에 대해

이보다 더 은근한 사랑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시인 황인숙은 사실 시인이 아니면 그 어떤 것도 아닐 것 같은 사람이다. 그녀는 한국의 현대시를 논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한 시인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녀가 쓰는 산문이 시인으로서 그녀가 갖는 위의威儀를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가 쓰는 산문은, 시로 다 말하지 못한, 노래하지 못한 것들의 주석 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가 보여준 시세계와 궤를 같이 한다.

그의 육체적 나이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중견이라 불리어도 손색없지만, 그는 여전히 소녀 같다. 언제나 풋풋하고 싱그러운 표정과 말투를 잃지 않는다.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빛은 목걸이나 반지 같은 일체의 장식을 하지 않는 그녀의 단출한 기호와 대면할 때 더욱 도드라진다.

그녀의 산문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얼마나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인지를 금방 깨닫게 된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저하 문제, 펑크 락 그룹 성기 노출 사건 등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의 고민에 기꺼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 맞벌이하는 동생 내외 때문에 홀로 남겨진 어린 조카에 대한 따뜻한 애정, 꼿꼿한 성격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후배 시인에 대한 연민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명민하면서도 자애로운 신경이 가닿지 않는 것이 없다. 특히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작용했을 은유와 생략이 섞인 그녀의 글들을 접하고 있노라면 많은 이들이 왜 황인숙을 계속 보고 싶어 하고 그녀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또한 황인숙은, 더 크고 더 힘센 것들에 밀려 말없이 문을 닫고 사라진, 자신이 편하게 즐겨 찾던 작은 식당이나 서점을 그리워하고, 그곳에 얽힌 추억들을 고즈넉하게 불러내기도 한다.

소설가 고종석은 황인숙을 가리켜 “부드러운 탐미주의자”라 칭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황인숙은 탐미주의자들의 (자기)파괴 욕망을 드러내는 법도 없고, 인습이든 아니든 공공선을 거스르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공공선을 위해서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그에게 아름다움은 선함과 나란한 것도 아니고, 선함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다. 선함과는 아무런 상호관계 없이, 급진적 탐미주의자들이 상정하는 음(陰)의 상호관계마저 없이, 아름다움은 그냥 거기 있다고 황인숙은 믿는 것 같다. …… 황인숙의 언어들은, 독자의 정념을 이끌어내는 법 없이, 독자의 살갗을 간질인다.”


톡톡 튀는 감수성과 타의 모방을 불허하는 유니크한 직관의 소유자인 황인숙. 하지만 그녀의 톡톡 튀는 감수성과 유니크한 직관은 상대를 제압하거나 압도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내면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착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녀의 직관과 감수성이 세상과 삶에 대한, 그녀가 마주치는 이생의 모든 관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텍스트의 홍수 속에서도 드물게 만나는 산문의 절창을 경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