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유엔기념공원] 묘지에 가면 숫자를 읽는다. 프랑스의 안시(annecy)라는 도시에 살 때, 마을 묘지에 자주 갔다. 누구나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하도록 울타리는 낮았고, 작은 문은 항상 열려있었다. 제각각 다른 모양새의 묘석을 배회하면서 낯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읽어보곤 했다. 묘석에 적힌 숫자는 언제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 묘소에는 유난히 1918년의 죽음이 많...
강진만 생태공원멀구슬쉼터 ••• 백조다리 ••• 목리1교 가끔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마음속으로 길을 걷는다. 양을 세듯, 숫자를 세듯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소리로 시작된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비가 땅에 스미는 소리,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강이 흐르는 소리, 바다가 밀려오는 소리.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소리들이 천천히 사라지고 오직 내 걸음 소...
[서울 딜쿠샤] 서울성곽 언덕길에 자리한 붉은 벽돌집인 딜쿠샤가 복원을 마치고 공개되었다. 이 집이 궁금했던 사람들이 무척 많았나 보다. 개관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내부 관람 예약이 치열하다. 딜쿠샤에서 유년기를 보낸 브루스 테일러라는 미국인이 등장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2018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메리 테일러 가족의 기증유물 전시회에...
덕수궁 돌담길전광수커피하우스 정동점 ••• 세실극장 ••• 영국대사관 후문 “오늘 점심 어때? 한 시간 뒤 덕수궁 앞에서 보자.” “그래, 신발은?” “운동화!” “좋아!” 수십 년 지기의 친구와는 약속을 성의 있게 잡을 필요가 없다. 그냥 만나고 싶을 때 만나면 되고, 사정이 맞지 않아 못 만나더라도 서운하거나 눈치 볼일 없기 때문이다. 내게는 그렇게 만나는 아주 오랜...
1. 경남 사천11월까지 ‘사천에서 한 달 살아보기’ 진행1일 5만 원 이내의 숙박비와1인당 최대 8만 원의 체험비 지원문의 사천시청(055-831-2114) 2. 경북 경주11월까지 ‘경주에서 한 달 살아보기’ 진행미션 수행시 1가구당 최대 50만 원 이내의 숙박비와 활동비 지원문의 경주시청(www.gyeongju.go.kr) 3. 강원 영월1일 5만 원 범위 내에서...
[광주 전일빌딩] 건물을 본다고 얼마나 알 수 있을까? 광주행 기차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손에 든 ‘샤인- 광주 사운드 스케이프’라고 적힌 음반에는 사운드 엔지니어 김창훈이 녹음한 광주 곳곳의 소리가 담겨 있었다. ‘상무관’이라고 적힌 1번 트랙은 멀리서 들리는 낮은 소음이 전부였다. 아마도 문 닫힌 상무관 내부에서 녹음했을 것이다. 먼지가 쌓인 공간은 무겁게 가라앉았...
외옹치항 바다향기로(강원 속초시 대포동)암석관찰길 ••• 드라마 남자친구 촬영지 ••• 외옹치 해수욕장 “이야, 이게 아직도 있네.” 베란다를 정리하던 백이 수납장 귀퉁이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붉은색 천을 꺼냈다. “뭔데? 안 쓰는 거면 버려.” 나는 먼지투성이 천을 보고 질겁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그거야. 외옹치항, 그 텐트.”오래전 여름이었다. 초등학교 짝꿍에서 동네 친구로, 동네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진화한 백...
[부산 우암동 소막마을] 부산 우암동 내호냉면을 검색하면 길게 줄을 선 손님들과 빨간 양념이 한 숟갈 무심하게 얹힌 국수그릇 사진이 잔뜩 나온다. 냉면집이라 상호가 붙어있지만 부산의 명물 밀면으로 더 유명하다. 이 가게의 처음을 이야기하자면 한국전쟁 시기 흥남 철수까지 올라가야 한다. 흥남 내호리에서 냉면집을 하던 일가족이 부산으로 피난을 왔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
산수유 마을(전남 구례 산동면)상위마을 ••• 하위마을 ••• 현천마을 내게 산수유는 서늘하고 붉은 이미지였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김종길의 시(詩) 성탄제에서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위해 젊은 아버지가 ‘서느런 옷자락’과 함께 가지고 온 ‘붉은 산수유 열매’가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시에서 만난 산수유의 촉감과 색은 선명했다. 그래서인지 해마다 봄이면 만나는 노란 산수유 꽃에 늘 심드렁했다. 팝콘 부스러기처럼 가볍고 노란 산수유 꽃에서 혈액처럼 붉은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도 그리 실감나지 않았다. 살다보면 어떤 부분은...
[익산 춘포리 정미공장] 작년 6월에 나는 만경강을 걸어서 답사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실천에 옮겼다. 전북 평야지대의 근대유산들을 곰곰 살피다가 문득 강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장소는 강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완성된다. 특히, 농촌마을은 아주 먼 시절부터 강과 천이 있는 곳에 자리 잡아왔으니 길과 건물만큼 물길과도 큰 연관을 맺고 있을 터였다. 두 번에 걸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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