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산성 성곽길(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진남문•••성벽길•••고모산성•••토끼비리 성곽마다 다르긴 하지만 성곽길에는 특유의 결연함이 있다. 촘촘히 올라간 돌 마디마다 조금의 허술함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견고함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강이나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위엄도 근사하다. 다만 활과 포를 쏴 필사적으로 막아야 할 적이 없는 이 시대의 나른함과 그 결연한...
안락한 휴식처에서의 하룻밤은 열 여행 부럽지 않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서 여행을 즐기기에 제격인 ‘북스테이’ 숙소들을 소개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독서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곳들이기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집으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LP 음악이 시냇물처럼 흐르는 ‘사과민박’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천로 200-5문의 카톡ID ‘1000kiki’숙박료 2...
[서울 성북동 최만린미술관] 조각가는 두 손을 내밀고 있었다. 셔츠 위에 가벼운 워크재킷을 걸친 채로 서서 말이다. 일흔 혹은 여든이 되어가는 나이였을까? 혈관과 근육이 매끈하지 않은 늙은 손이었다. 손가락의 마디가 두드러졌고 손끝은 뾰족했다. 두 손이 몹시 자유로워 보였다. 잡아도 잡히지 않을 손 같았다. 구속되지 않은 손으로 조각가는 흙에서 형태를 만들어냈다. 조각가 ...
ⓒ백홍기 나는 함안 조 씨를 알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함안 조 씨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억 때문에 경남 함안을 찾게 되었다. 몇 년 전, 어느 볕 좋은 가을날이었다. 드문드문 황금빛 논이 펼쳐져 있었고 마을마다 붉은 감이 익어가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탐스럽게 열린 감을 넋 놓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자 마음씨 좋은 주민 한 분이 감 몇 개를 따서 우리 가방에 ...
[양산 통도사 봉발탑] 아하, 이제 보니 석가모니도 사람이셨군밥공양에 남루 걸치고 급히 뒷간도 가는,배고픈 젊은 스님들줄 지어 공양 간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을 만큼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한다. 넓은 경내에 수많은 문화유산이 줄지어 있지만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 앞에 놓여있는 탑 하나가 유독 눈길을 끈다. 흡사 밥그릇 닮은 탑의 모양이 퍽 이채롭다...
수원 부국원(富國園) 사라진 토종쌀 품종을 되살리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우리가 먹는 쌀 품종은 과거엔 지방마다 특색 있고 다종다양했는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토종 품종이 자취를 감추고 그 후로도 통일벼라는 품종으로 단일화되고 말았다고. 커피 원두조차도 산지와 품종을 따지는 마당에 매일 먹는 쌀이 어떤 품종인지 따져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씨앗은 땅이 지...
ⓒ 백홍기 산책을 나가지 못해 냉장고 청소나 하려고 냉장고를 뒤지는데 구석에서 오래된 머핀 한 덩이가 나왔다. 머핀은 검푸른 곰팡이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곰팡이가 소복한 머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핀이 되기 전, 한때 푸른 밀이었고 질기고 강인한 사탕수수였으며 어느 소의 몸을 돌던 더운 젖이었던 것들이 우리 집 냉장고 구석에서 다른 미생물들을 무럭무럭 기르고 있었...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임 떠난다고 울지 마라봄 간다고 아쉬워 마라절집에 남은 것은탑 하나와 당간지주돌 하나바다에 던져그 깊이를 잰다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골짜기에 우뚝 서있는 보원사지 당간지주 앞에 서면 오층석탑이 눈에 들어온다. 아래층 기단 옆면에는 열두 마리의 사자상이 새겨져 있고, 위층 기단 옆면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2구씩 새겨져 노련한 석공의 솜씨...
[인천 코스모 40] 일반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에도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옛 건물을 볼 때 이 미덕이 자주 떠오른다. ‘코스모 40’에서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뭐든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용기. 이것이야말로 비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인천 가좌동은 제조공장들이 밀집된 준공업 지역이다. 하늘을 ...
늦은 오후였다. 책을 읽다가 오래 전 연필로 밑줄을 그어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삶에게 극히 사소한 것만을 간청했다. 그런데 그 극히 사소한 소망들도 삶은 들어주지 않았다. 한 줄기의 햇살, 전원에서의 한 순간, 아주 약간의 평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빵…. 그런데 이 정도의 소망도 충족되지 못했다.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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