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당포성. ⓒ 백홍기 나는 주로 알람소리로 시작해 스마트폰 화면으로 마감되는 하루 속에 산다. 그 사이의 시간은 낯선 곳에서 출발한 외국어를 모국어로 데려오는 번역 작업을 하느라 평평하게 지나간다. 이 수평의 시간은 대부분 시시하게 흘러가다가 수요일 점심 즈음 가벼운 당구 게임으로 슬쩍 궤도를 이탈하기도 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
대견사지 삼층석탑(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용리 비슬산/대구광역시 시도유형문화재 제42호) ⓒ 손묵광 [대견사지 삼층석탑] 대숲은 씻어라,귀마저 씻어라 하고바윗돌은 잊어라,깡그리 잊으라는데석탑은 그저빙그레 웃고만 계시네 듣고 싶지 않은 말 들은 날에 대견사지 찾아간다. 대숲에 들어 귀를 씻고 싶다. 돌로 손등을 찧어 그 아픔으로 잊고 싶다. 하지만 삶이 그리 간단하며,...
순천 조계산 송광사 봄은 빛깔로 다가온다. 회색빛을 깨고 봄을 일으키는 빛깔에는 노란색이 많다. 봄빛이 지금 나무의 품 안에서 꿈틀거린다.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다. 매운바람 틈에 봄기운 스미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봄을 먼저 알리려면 모두가 움츠러든 찬바람 속에서도 재우쳐야 한다. 노란 봄을 가장 서두른 건 산수유 가지 끝에 돋워 올린 꽃봉오리다. 구슬 모양을 한 갈색...
이 땅의 봄은 매화꽃 향기를 타고 찾아온다. 은은하지만 선명한 봄 내음이다. 춥고 긴 겨울의 눈 속에서 맑은 꽃송이를 도도하게 피워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지만, 이 땅의 매화는 아무래도 봄의 전령사로 첫 손에 꼽히는 꽃이다. 바람 찬 이른 봄의 엄혹한 환경에서 피어나는 꽃에서 선비가 갖춰야 할 절조를 떠올린 옛사람들은 매화를 선비 정신의 상징으로 생각했다. 특...
경상북도 문경 대하리에는 조선시대의 명재상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터 잡고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을 처음 일으킨 입향조 황시간(1588~1642)이 처음 짓고 살았던 고택은 지금도 마을 중심에 남아 있다.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63호인 장수황씨 종택이다. 이 집의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 탱자나무가 얼마 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 쌍의 탱자나무가 바투 서...
충북 증평 죽리마을 ‘저물녘 난간에 기댄 늙은이/ 아득한 들녘 흥취에 끌리네/ 성긴 수풀에 지는 해 비꼈는데/ 쓸쓸한 주막엔 외로운 연기 피어오르네.’ 조선 중기 시인 김득신(1604~1684)은 해질녘 서쪽 들판을 바라보다 시 한수를 읊었다. 때마침 저문 들녘의 풍경은 원앙금침을 깔아놓은 것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그가 남긴 죽리고연에는 노을에 물든 저녁들녘의 풍경이 평화롭고 고요하게 그려진다. 시의 배경의 되는 김득신의 고향 충북 증평의 죽리는 넓은 들판에 둘러싸인 풍요로운 마을이었다. 그로부터 400여 년이 흐른 뒤, 안동 김 씨 가문의 후손 김웅회(64) 씨가 느낀 감정은 김득신과는 참으로 달랐다. 이농현상으로 사람들이 도회지로 떠난 마을 곳곳에는 빈집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고 담장까지 허물어져...
나주 송죽리 금사정 동백나무 오백 년 전 이 땅에 피바람을 몰고왔던 기묘사화 때, 조정의 난리통을 피해 전남 나주 땅으로 숨어든 열한 명의 사림파 선비들이 있었다. 그들은 도덕정치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비밀결사를 이루었다. 언젠가 개혁의 뜻을 완성하자는 피맺힌 맹세였다. 짬짬이 세상 이치를 짚어보며 지내던 그들은 작은 정자를 짓고 ‘금사정(錦社亭)’이라 이름 붙...
[충남 공주 원도심] 졸졸졸 흐르는 제민천 사이로 2층짜리 야트막한 건물들이 올망졸망 위치해있는 공주시 반죽동과 봉황동 일대.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에서 과거 충청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요지(要地)였단 사실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여기가 그래도 극장이 3개나 있던 곳이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동시상영으로 봤던 영화가 아직도 기억나요.” 30여 년 전 주민 장일현(48)...
전북 완주 비비정 마을 “세 큰물이 넘쳐흘러서 누대 아래에 합하고/ 사방의 긴 길이 멀리 눈 속에 확 트였네./ 봄바람에 풀은 연하고 하늘도 푸르고/ 가을밤에 모래펄 맑고 달도 함께 밝네.” 조선후기 문신 이기발(1602~1662)은 전북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 언덕바지 정자에서 시 한 수를 읊었다. 만경강이 굽이쳐 흐르고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경치는 가히 완산...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강릉에서 서울 가는 길목에 자리한 해발 700미터의 고개마을에는 유독 계수나무가 많이 자랐다. ‘계수나무 계’ 자를 써서 계촌(桂村)이 된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오래 전 이곳은 계수나무 수만큼이나 아이들이 많은 동네였다. 마을 어귀의 계촌초등학교에는 한때 학생 수가 천여 명에 달했으며, 인근에 세 개의 분교까지 있을 정도로 인구가 많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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