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잘 나가는’ 홈인테리어 디자이너 제이쓴의 직업관을 듣다 보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명언이 떠올랐다.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집은 물론 삶을 가꾸는 그의 중요한 노하우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소리에 맞춰 변하는 제이쓴(35, 본명 연제승)의 표정이 유난히 변화무쌍했다. ...
※현 ‘인우회’ 회장 여태규(55) 님의 구술을 바탕으로 정리했습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대학 봉사동아리를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검은 머리카락이 희끗해지는 동안 가정도 꾸리고 사업도 시작하며 삶의 많은 변화를 겪어왔지요.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려운 이웃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봉사활동만은 계속 지속해 왔...
아나운서 출신의 배우 최송현에게 바다는 자존감을 되찾아준 고마운 존재다. 스쿠버다이버로 사는 기쁨을 전하는 그녀의 얼굴이 물결 위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반짝인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인사동 스캔들에서 아나운서 출신 최송현(39)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스크린으로 걸어 들어왔다. 검은 가죽재킷을 입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반항기 어린 표정을 띄며 주인공의 복수를 돕는 영화 속 ‘공수정’에게서 아나운서의 단아한 이미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KBS 공채아나운서로 입사해 간판 예능프로의 MC로 활약하며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그녀가 돌연 프리를 선언하고 브라운관을 떠난 지 ...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스프링샤인’ 직원들이 마음에 항상 새기고 있는 문장이 하나 있다. ‘예술에는 장애가 없다!’ 총 13명의 직원 중 6명이 장애인이지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문장처럼 그들은 예술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꿈을 빚는다. 스프링샤인의 옛 명칭은 지노도예학교. 지난해 10월 따스한 봄볕이라는 의미의 스프링샤인으로 이름을...
혹시나 꿈속에서 피터팬을 만나게 된다면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다. 평생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재밌게 바라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네버랜드도, 꿈속도 아닌 현실에서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어 다행이다. 키즈크리에이터 ‘헤이지니’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 같은 이 시대의 피터팬이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헤이지니가 없었으면 육아가 두 배는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말에...
TV에서 걸그룹 ‘시크릿’ 무대를 통해서만 보던 그녀와 마주하고는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들었다. ‘전효성이 이렇게 예뻤었나?’ 어느덧 30대에 접어든 그녀에게서 성숙미가 물씬 풍기는 데는 사뭇 달라진 옷차림이나 화장법보다 더 중요한 비결이 있다. ‘당신의 20대 얼굴은 자연이 준 것이지만 50대 얼굴은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외적인 아름다움의 참의미를 일깨워주었던 ...
[천안 대흥동 역전쌀상회] 자식들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른 게 부모 마음이라 했던가. 한평생 자식들의 한 끼 밥을 위해 바쳐진 부모들의 눈물과 한숨을 저울에 달면 쌀 몇 가마니 무게나 될까. 천안역 동부광장 앞 ‘역전쌀상회’ 주인 신용신(83) 할아버지라면 어렴풋하게라도 그 무게를 가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님이 혼자서 절 키우느라 고생을 정말 많이 하...
건강하고 맛있는 빵으로 이웃들의 간식을 책임졌던 동네 빵집들이 골목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때는 10여 년 전이다. 프랜차이즈 제과점과의 경쟁에서 밀려 2008년 한 해에만 전국에서 3000여 개가 넘는 빵집들이 문을 닫았다. 경기도 안산시 역시 180여 개에 달했던 동네빵집이 2009년부터 5년 동안 50여 곳으로 줄었다. 동네 빵집들이 생계 걱정으로 한숨만 깊어가던 그...
영화 기생충에서 다송이 그림을 그린 실제 작가 정재훈은 2000년대 초 인기 래퍼 후니훈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색깔을 만들겠다는 래퍼 시절의 꿈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실현한 그는 랩으로 꿈꾸고 그림으로 이루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다. “침팬지를 형상화한 인간의 얼굴과 스키조프레니아존만 유념해주세요. 그 외에는 자유롭게 그려주시면 됩니다.” 요즘 한창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재훈(40...
[인천 미추홀구 문학이용원] “4형제 중 둘째인 내가 제일 믿을 만하셨던지 가게 나와서 일 좀 도우라 하셔서 시작한 일이지요. 어릴 적부터 아버님 옆에서 심부름 해 드리면서 어깨너머로 일을 배웠어요. 열아홉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발 기술을 배우다 군 제대 후 아버님 돌아가신 1964년부터 가게를 맡은 게 벌써 55년이나 됐네요.” 물이 계곡을 흐르고 바람이 한곳에 머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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