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한재초등학교 비와 더위 모두 이겨낸 느티나무 그늘 사이로 늦여름을 품은 바람이 스며든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나무 그늘에 모여든다. 전남 담양 한재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늘에 아이들의 웃음이 가득하다. 학교에 와서 가장 먼저 나무 그늘을 찾아드는 건 오래전 아이들도 그랬다. 교실로 들어서는 길 어귀에 서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푸근한 나무...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 부산 해운대와 송정 사이의 작은 포구에는 애틋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온다. 이 마을에 살던 금슬 좋은 부부의 얘기다. 어느 날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아내는 해안가 바위에서 매일 같이 남편을 기다렸다. 죽은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을 애처롭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냈고, 부인은 청사(靑蛇)를 타고 용궁으로 가서 남편과 백년해로했다. 달맞이...
부산 양정동 화지공원 나무는 장마가 오기 전에 서두른다. 부지런히 햇살 한 가득 움켜쥐고 양분을 짓는다. 먹구름에 햇살 숨으면 꽃 한 송이 피울 양분을 짓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두 송이도 아니고, 여름내 붉은 꽃을 수굿이 피워야 하는 나무라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재우쳐야 한다. 살아있다는 건 바로 이 안간힘이 낳은 결과다. 그 여름 폭풍에도 ...
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양림동에 오면 모두가 시인이 된다. 등불을 하나씩 켜고 걷는 시인이 된다.” 시인 김현승(1913~1975)은 양림동을 사랑했다. 평양에서 태어났지만 양림교회 목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온 그는 양림동에 기거하며 선교사 사택, 신학대학 등의 고풍스러운 근대 건축물이 자리한 골목골목을 산책하며 사색을 즐겼다. 버드나무가 울창해 예로부터 ‘양림(...
강원도 정선 두위봉 주목 Ⓒ고규홍 발맘발맘 숲에 들어선다. 울창한 나무들이 지어낸 깊은 어둠의 숲길이다. 발길에 밟히거나 채이는 바위와 돌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편안하지 않지만, 이 길에서만큼은 불편한 기미를 내색할 수 없다. 천년의 세월을 살아온 나무를 만나러 오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두 시간 남짓 산길을 오르면 화들짝 푸른 하늘이 열리고, 그 앞에 숨이 턱 막힐 만큼 ...
1979년, 대구 서구의 후미진 판자촌은 결국 꽃다운 스물다섯 살의 새색시를 울리고 말았다. 을씨년스러운 동네 골목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시댁으로 들어온 새색시에게 슬픔을 안겨주는 장소였다. “내가 뭐 이런 동네로 시집을 왔나 싶어가 시부모님 몰래 혼자 울고 그랬으예. 골목길이 온갖 쓰레기에, 쥐똥에 말도 몬했지예. 그래 더러분 길이 대낮에도 칙칙해가 혼자서는 무서워...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숲 Ⓒ고규홍 천년의 세월을 한결같이 살아온 원시림이 있다. 숲을 천연의 자태로 지킨 건 전설이었다. 이 숲 안에 발을 들여놓기만 해도 천벌을 받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 제주 평대리 곶자왈 지대에 형성된 비자나무 숲은 오랜 시간 푸르른 생명의 신비를 간직해왔다. 45만 평방미터의 너른 지대에 300년에서 800년쯤 되는 아름다운 비자나무 2천8백 그루...
영화 인셉션을 보면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고 회색빛 건물만 남은 주인공의 꿈속 세계가 등장한다. 속이 텅 빈 건물들이 차가운 파도를 맞으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풍경은 마치 유령 도시처럼 황량하다. 한때 시내 중심가였던 전북 군산시 개복동은 영화 속 도시와 분위기가 사뭇 닮았다. 새 주인을 찾지 못해 셔터 문이 내려진 채 방치돼 있는 상가 건물들 사이로 적막감이 감돌아 봄에도 찬바람만...
일본 도쿄 토토로의 숲 Ⓒ고규홍 아이들의 숲에 봄이 깊어졌다. 일본 도쿄 변두리 사야마 구릉지대의 작은 숲은 특별한 나무나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아이들의 영원한 벗 ‘토토로’가 살고 있다. 어른들이 망가뜨릴 뻔했지만, 아이들이 지켜낸 숲이다. 이 숲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는 이 숲에서 영감을 얻어 녹나무 그늘에 깃들어 사는 상상 속의 캐릭터 토토로를 지어냈다. 토토로는 그렇게 태어나 전 세계 어린이들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 도쿄에서는 주택 단지 개발 계획이 발표되었다. 계획 토지 가운데에 토토로가 살던 숲이 포함됐다. 그러자 아이들은 화가 났다. 숲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 토토로는 대관절 어디로 가...
허름한 나무 전봇대 옆에서 60년 넘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대창이용원은 대전역 동광장 끝에 위치한 소제동의 터줏대감이다. 빨랫줄에 걸린 수건들이 연탄난로 위에서 까슬까슬 말라가는 고색창연한 풍경 뒤로 모든 것이 1964년 문을 열었을 때 모습 그대로다. 깨지고 갈라진 타일 세면대 위 찌그러진 물뿌리개, 색 바랜 면도통과 비누거품 솔, 손때 묻어 반들반들해진 이발 가위 등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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