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 청량산 ©고규홍 언 땅을 뚫고 여린 풀꽃이 새초롬히 피었다. 복수초, 노루귀, 얼레지, 제비꽃, 별꽃…. 어디선가 날아드는 새들의 지저귐이 풀꽃이 불러온 봄의 교향악에 정점을 찍는다. 어느 봄, 아주 특별한 딱따구리 소리를 들었다. 경북 봉화 청량산 기슭의 조붓한 산길에서였다. 천지신명을 감동시킬 만큼의 깊은 울림이 있는 소리였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산길을 ...
‘무덤 위의 달동네’. 이 짧은 한 줄의 정보가 이번 여행의 유일한 준비물이었다. ‘묘지터에서 살아야 할 정도로 주민들은 무척 곤궁할 거야. 얼마나 무섭고 꺼림칙할까?’ 달동네를 향한 동정의 시선이 여행객의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산 남항 앞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언덕은 빈곤한 이들의 삶보다 더 무거운 뭇사람들의 선입견을 인 채 평생을 버티느라 몹시 ...
전남 고흥 소록도 솔송나무 ©고규홍 동틀 무렵, 한 사람이 나무에게 가만가만 다가섰다. 적막의 섬 소록도 오솔길에 자리 잡고 외로이 자란 한 그루의 솔송나무. 우리 토종 나무지만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것이어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은 아니다. 하지만 자생지가 아닌 곳에서도 정성 들여 키우면 잘 자라는 게 솔송나무다. 나무에 다가선 사람은 절대 소외의 극한 상황을 살아가는 ...
충남 부여군 송정리에 가려면 부여시외버스터미널에서도 두 개의 바다를 더 건너야 한다. 바다처럼 깊고 푸른 백마강이 첫 번째 바다요, 한눈에 담기지 않을 만큼 드넓게 펼쳐진 비닐하우스 단지가 두 번째 바다다. 역사 속 회한의 눈물과 아픔을 안고 흐르는 백마강과 넘실대는 파도처럼 보이는 비닐하우스의 끝없는 행렬을 지나 40분 정도 달렸을까. 서천군과의 경계에 이르러서야 송정마을...
안개 속이었다. 동서남북을 겹겹이 둘러싼 산들이 지켜준다는 안식의 땅에도 안개가 이불처럼 덮였다. 잠에서 깨지 않은 이른 아침의 향촌에서 걱정을 쉬이 떨칠 수 없었다. 희뿌옇게 가로막힌 안개 속에서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경북 예천군 용문면에 자리한 금당실 마을은 예로부터 길지(吉地)로 알려져 왔다. 북동쪽을 감싼 소백산맥의 준령과 남서쪽에 흐르는 내성천의 품에 안겨...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 곰솔군 ©고규홍 고스란히 사람의 몫이었던 고행을 나무가 나눠 짊어졌다. 제주 산천단의 곰솔 여덟 그루다. 제주도에서는 오래전부터 한라산의 기운을 따라 살아가는 일이 중요했으리라. 섬마을에서 자연재해를 당하지 않고 살려면 한라산신께 제사를 올리며 사람살이의 평안을 기원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이면 한라산신이...
전남 담양 정송강 유적 “위대한 시인은 종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위에 시를 쓴다. 이 곳 식영정 마루턱에 서면 바람도 옛 운율로 불고 냇물도 푸른 글씨가 되어 흐르나니, 우리는 지금 풀 한포기 흙 한줌에서 송강의 가사 성산별곡을 온몸으로 읽는다.” 이토록 멋진 비문이 또 있을까.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하는 글귀가 식영정 아래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 1991년 2월 ‘송...
연희동의 랜드마크가 된 사러가쇼핑센터와 연희맛로. 연희동과 연남동은 경의선과 성산로로 경계가 나뉜다. 그리고 철로와 도로 아래 두 개의 굴다리로 연결된다. 사러가쇼핑센터와 동진시장이 연희동과 연남동의 차이를 대변해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진시장은 동네 사람들만 애용하는 규모가 작은 전통 시장이었다. 반면 사러가쇼핑센터는 외국인들을 위한 물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된 이국적인...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 군락지 ©고규홍 모든 생명은 홀로 살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게 생명 공동체의 이치다. 한 생명의 멸종은 거대한 생명의 고리 한 부분을 끊어뜨리는 것이고, 마침내는 그를 고리로 하여 이어온 우주가 소멸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우리 땅에만 존재하는 구상나무가 지금 사라질 위험에 처했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 지조란 것은 순일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요, 냉철한 확집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중략)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 없다. 자기의 명리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하루아침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