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하나둘씩 화분이 늘어가며 식물을 가까이서 돌보게 되었다. 소리를 내지도 않고 눈앞에서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그대로 멈춰있는 것만 같던 식물은 때때로 나를 놀라게 했다. 없던 새잎이 불쑥 나오기도 하고,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훌쩍 키가 커있기도 했다. 특히 봄이 오면 맑은 연두색으로 자라나는 새 이파리들을 뿌듯하게 지켜보았다. 내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 식물들은 열렬...
예술이 문밖으로 나오면 어떤 모습일까. 예술이 있어야 할 자리가 꼭 비싼 값을 치러야 관람이 가능한 공간이어야 할까. 모두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공간일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 될 때면, 일본의 나오시마 섬을 떠올린다. 나오시마를 비롯한 12개의 섬에서 열리는 예술 축제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에서 나는 섬 곳곳에 흩뿌려진 작품 사이를 거닐고 미술관...
경주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감명 깊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당시 버스에서 내려 만난 유적지에 나는 퍽 냉소적이었고 그러다 보니 불국사의 정경은 흐릿하게만 기억에 남고 말았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흘러 다시 찾은 경주는 내가 어슴푸레 기억하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대릉원의 불룩한 잔디 위로 떠오르는 달에 경탄하고, 새빨갛게 물든 단풍 사이를 걷...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데, 슬픔이 찾아오는 날에 나는 오히려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친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 울음이 잦아들기까지 그저 기다린다. 이는 내가 슬픔을 이겨내고, 기억에 새기는 방법이다. 어떤 사람들은 슬픔을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감정을 나누면서 위로받고 마음을 치유한다. 그것은 슬...
누군가가 내가 모르는 의도를 가지고 구현해 놓은 공간을 바꾸는 일은 빈 땅에 새로 건물을 짓는 것보다 더 세심함을 요한다. 자칫 단점을 고치려다 장점마저 희미해질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스러워야 한다. 월악산과 충주호 사이, 1999년 건립되어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충북 제천의 월악산 유스호스텔은 2021년 개·보수 공사 후 누구에게나 열린 숙소가 ...
미술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고 나면 작품을 설명해주는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미술관의 역할은 그런 정보들을 저장하는 것까지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4월 개관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미술관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고, 관람객과 어디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고 대답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술관이나 도서관은 대다수 진입구와 맞붙...
비우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일상 속에서 받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덜어내는 것도, 진로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지우는 것도, 하다못해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조차 어려워 사람들은 다양한 경로를 통한다. 요가를 통해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거나, 명상을 통해 생각을 덜어내거나, 격한 스포츠를 통해 생각의 조각들을 날려버리거나.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방법이 분명...
국내 여행을 다닐 때면 일부러 지역의 큰 절을 찾는다. 산속에 자리를 잡은 사찰 사이로 산책을 하다 대웅전 앞에서 희미한 향냄새와 목탁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안해지곤 한다. 해외에선 성당의 두꺼운 문을 열고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 공간을 유심히 살피기도 한다. 이렇듯 머묾만으로 치유가 되는 공간들이 있다. 특히 종교 건축은 어떤 방...
콩치노 콘크리트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새오리로161번길 17, 2층 운영시간 14:00 ~ 19:00(토·일 12:00 ~ 19:00 / 수·목 휴무) 입장료 2만원 애플 에어팟이 처음 출시됐을 때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마치 세상에 에어팟과 나, 둘만 남은 것 같다며 감탄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주변의 소음이 순식간에 삭제되는 경험은 실로 놀라워 세간의 호들갑...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35길 63 운영시간 09:30 ~ 17:30(개방시간 09:00 ~ 21:00 / 월요일 휴무) 졸업 작품 준비를 하던 3월, 지도 교수님은 옛 서울을 한 바퀴 돌 것이라면서 반 학생들을 데리고 바깥으로 향했다. 그 해 봄, 수업 시간마다 한양도성 길을 걸었는데 평생 서울에 살면서 성곽길을 따라 걸은 것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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