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조탑마을 겨울이 되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우리들의 하느님》 중에서 “네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와야 해. ...
남산으로 이어지는 오르막에 자리잡은 화랑에서 내려다보는 경리단길 풍경. 이태원은 외인촌(外人村)이다. 국제도시가 된 오늘날의 서울에서 외국인을 보는 일은 예사가 되었다. 명동이나 홍대앞은 외국인이 압도적이다. 그러니 이제 서울에서 외인촌을 따로 말하는 게 무색하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외국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으로 서울에서는 이태원이 유일했다. 이태원은 미군부대가 가까...
경남 양산 신전리 이팝나무 ©고규홍 먹을 것 넉넉지 않고, 그저 하늘이 주는 만큼만 먹고 살아야 했던 시절, 농부들은 하늘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때 맞춰 순한 비 내리고, 따스한 햇살 내리쬐기를 바랐다. 그 간절한 바람이 전해졌을지 농부는 하늘만 바라보며 애면글면 비를 기다리고 햇살을 그리워했다. 앞논에 물 들어차 들녘에 나설 즈음에는 더 그랬을 게다. 입하(立夏) 즈음...
전남 강진 영랑생가 ‘모란 미용실’ 지나 ‘모란 마트’를 꺾어들어, ‘모란 빌라’ 앞에서 길을 건너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다. 강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영랑생가까지 사백 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모란 시인’ 김영랑의 존재를 환기한다. 길가의 웬만한 상가가 전부 ‘모란’이라는 상호를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진은 영랑과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청계천까지 이어지는 돈화문로는 서도소리, 남도소리, 몸의 소리, 악기의 소리 등이 어우러진 소리의 길이다. 돈화문로는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 청계천까지 이어진다. 임진왜란 이후 200년간 창덕궁이 정궁의 역할을 했으니 이 시기 서울의 주작대로는 돈화문로였다. 돈화문로에 서서 북쪽을 향하면 북악과 북한산 산등성이의 초록색, 그리고 우뚝 솟은 보현봉의 회백...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갈현동을 비롯한 연신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갈현동 1965년 개장한 서울 은평구 갈현중앙시장은 2017년 주상복합 건물로 탈바꿈하기까지 갈현동 주민들의 젖줄과도 같은 존재였다. 50여 년이란 긴 시간 동안 50여 개의 점포에서 농산물, 반찬, 의류 등 각종 먹거리와 생필품을 팔던 시장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목련 ©고규홍 바람결에 담긴 봄빛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목련이었다. 온 땅을 차갑게 덮은 새하얀 눈도, 살을 에는 매운바람도 모두 견뎌내며 기다린 봄빛이다. 목련이 처음 꽃봉오리를 맺은 건 지난해 늦은 봄이었다. 화려했던 꽃송이 내려놓으며 곧바로 이듬해에 피어날 꽃봉오리를 밀어 올렸다. 참 긴 시간의 터널을 애면글면 지나왔다. 겨울의 찬바람을 이겨...
통영을 왜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는지 알 것 같다. 햇빛 부서지는 한산섬 앞바다, 고깃배가 나란히 줄지어 정박해 있는 강구안, 황홀한 석양을 바라볼 수 있는 동피랑 언덕에 서면 과장으로 여겨지던 그 수식에 수긍하게 된다. 하지만 진짜 통영의 모습은 어쩌면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에서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곳은 음악가 윤이상의 베를린 자택. 거실로 들어서면 통영의 명물...
세종문화회관 건물의 왼쪽 끝에 라이브 카페 ‘오페라하우스’가 있었다. 광화문은 서울의 중심이다. 정부종합청사, 세종문화회관, 국제극장, 교보문고가 이 일대의 랜드마크였다. 지하도로만 통했던 광화문 사거리 위로 보행로가 생기고 광화문 광장이 생기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가게 되었다. 1970년대 세종문화회관 뒤편에는 대성학원 등 입시학원이 많았다. 한때는 입시낭...
주택과 인접해 있어 드나들기 편리한 솔밭근린공원에서 주민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며 여가를 즐긴다. 우이동 산책로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을 걷노라면 바람을 타고 은은한 솔향기가 전해진다. 마을 중심에 100년 이상 된 소나무 천여 그루가 터를 잡은 덕분이다. 1990년대 우이동 일대가 아파트 개발지로 선정되면서 자연적으로 군락을 이뤄 살던 소나무들에게도 위기가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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