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흥 삼산리 후박나무군 ©고규홍 땅거미 지는 저물녘, 정처 없이 걷다가 큰 나무를 만났다. 후박나무다. 보암보암에 그동안 만났던 여느 후박나무에 비해 가장 큰 나무다. 사방으로 고르게 퍼진 나뭇가지는 마을 사람을 모두 품어 안을 만큼 너른 그늘을 드리웠다. 저녁의 서늘한 기운이 스미는 나무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길모퉁이를 돌아 나오며 한 그루의 나무로 보았던 건 ...
강원도 인제 백담사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강원도 인제로 향하는 좁디좁은 고갯길에는 예부터 한스러운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궁벽한 산골짜기로 쫓겨나는 마음이 오죽했으랴. 하지만 이제 그 애처로운 한탄도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 시원스레 뚫린 고속도로 타고 서울에서 두 시간 남짓이면 인제 원통에 가닿는다. 인제 자락의 내설악 깊은 오지에 자리 잡...
1976년부터 구반포를 지켜온 터줏대감 반포치킨. 강남이라 하지만 구반포는 목가적인 데가 있다. 1970년대가 되면서 구반포 일대가 개발되었다. 신반포로 남쪽에 소형아파트인 AID아파트가 먼저 들어섰고 길 북쪽 한강 근처에 반포주공아파트가 뒤에 들어섰다. 5층밖에 되지 않는 저층의 아파트 단지다. 정부가 서울대 교수와 고위공직자들에게 이곳의 아파트를 우선 분양하였다. 구반...
사진작가 송기연이 촬영한 문래동 철강골목. ©송기연 문래예술촌 “너무 늦게 오신 것 같네요. 한 달 전에만 왔어도 좋았을 걸….” 12월 들어 비수기로 접어든 문래예술창작촌의 파장 분위기를 안타까워하는 건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송기연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처에서 사진 작업실 겸 전시장인 ‘아지트’를 운영하는 그녀도 얼마 전 문래동 입주 4년간의 기록을 담은 전시회...
전남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고규홍 피었나 싶었는데 벌써 떨어졌다. 빠른 낙화다. 따뜻한 남녘 마을엔 빨간 동백나무 꽃이 피고 진다. 나뭇가지에 겨울바람 스며야 피어나는 겨울 꽃이다. 겨울바람 매울수록 더 붉어진다. 까닭이 있다. 바람 차면 동백나무 꽃의 혼사를 이뤄줄 중매자의 활동이 뜸해진다. 더 화려해야 멀리서도 눈에 띈다. 매운바람 탓에 대지의 온 생명이 움츠러들수...
전남 장흥 진목마을 “이번에는 너 혼자도 아니고… 하룻밤이나 차분히 좀 쉬어 가도록 하거라.” “오늘 하루는 쉬었지 않아요. 하루를 쉬어도 제 일은 사흘을 버리는 걸요. 찻길이 훨씬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기선 아직도 서울이 천릿길이라 오는 데 하루 가는 데 하루…” 1977년 겨울에 발표된 이청준의 소설 눈길은 어머니와 아들의 실랑이로 시작한다. 모처럼 왔으니 조금 더 머물고 가라며 붙잡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아들은 한사코 걸음을 재촉한다. 서둘러 돌아가려는 이유는 따로 있지만 오다가다 이틀을 허비한다는 핑계였다. 그만큼 장흥은 멀고도 멀었다. 찻길은 더 나아졌을 법하지만 여전히 정남진(正南津)의 고장은 멀기만 하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장흥터미...
일상에 쫓겨 멀리 떠나고 돌아오는 일이 번거로운 이들에겐 도시 곳곳에 보물찾기하듯 숨어 있는 문화유적을 돌아보는 산책 코스가 제격이다. 서울 종로구 정동사거리에서 송월길을 지나 독립문역사거리로 내려오는 짧은 코스는 일상을 벗어나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걷기 좋은 도심 산책길이다. 송월길 산책을 알뜰하게 즐기려면 먼저 근처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부터 둘러보는 게 좋다. ‘아는 ...
예술가들의 주거지이자 활동 공간이었던 홍대 땡땡거리. 서울 신촌 성결교회에서 홍대 산울림극장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 있다. 홍대 땡땡거리다. 예전에는 이 길의 중간에 경의선 철길이 있었다. 하루에 몇 번씩 화물열차가 지나갔다. 그때마다 건널목 차단봉이 내려오면서 땡땡땡 종이 울렸다. 1990년대 무렵, 홍대 땡땡거리와 산울림 극장 일대에는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
전남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바람이 맵다.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겨울이 스민다. 수굿이 지상의 양식을 지어내던 잎을 나무는 내려놓았다. 애면글면 키워낸 씨앗도 미련 없이 날려 보냈다. 무시로 나무 그늘을 찾던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빈 나뭇가지에 엄동의 파란 하늘이 촘촘히 내려앉았다. 찾아오는 이도, 돌보는 이도 없이 찬바람 눈보라 맞으며 나무는 홀로 들녘에 서서 혹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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