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채동선 가옥] 그 집에 갔던 건 2년 전 화창한 봄날이었다. 길거리에 쏟아진 햇살에서 바삭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문화재급 주택을 둘러보는 날이어서 카메라를 들고 성북동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비어있는 집에 대해선 일단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이런 집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 예술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어 오랫동안 닫혀 있던 집이...
[서울 명륜동 장면 가옥] 잘생긴 집 앞에 서면 이 집에 누가 살까보다 이 집을 누가 지었을까가 궁금해진다. 이유 없이 지어지는 집은 없고 집 안의 모든 요소도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건축가는 삶의 이유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삶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은 비록 누추하더라도 말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로터리에서 북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명...
[서울 가회동·익선동의 한옥] 한옥은 특별한 미감을 가진 우리 가옥의 원류다. 품위 있고 아늑하며 인간적이다. 마당을 둘러싼 네 면의 지붕이 모여 네모난 우물 같은 하늘을 선물한다. 담은 또 어떤가. 각자의 미의식을 뽐내듯 자유롭게 장식하며 동네와 동네를, 집과 집을 개성 있게 만든다. 좁고 춥고 불편하다 한들 한옥집에 대한 감수성은 시대를 초월한다. 그러나 이런 기억의 집...
[인천 삼릉사택] 이름은 힘이 세다. 한번 생겨난 이름은 여간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삼릉(三菱)은 ‘세 개의 마름모’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미쓰비시로 알려진 일본기업의 한자명이다. 또한 인천 부평 2동의 한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다. 그 이유는 일제말기 이곳에 미쓰비시제강의 대규모 군수공장이 가동되었기 때문이다. 공장사택지가 조성되면서 ‘삼릉사택’이라고 부르던 것이 동네 이...
[서울 구 벨기에 영사관] 서울 정동 외교가와 한참 떨어진 회현동에 벨기에 공관이 지어진 것은 당시로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동은 영국, 미국, 러시아의 공관과 호텔, 교회 등이 있는 외교의 거리였지만 청국영사관(현 명동 중국대사관 위치)과 일본영사관(현 신세계백화점 위치)이 남산과 가까이 있다는 점은 벨기에 영사관이 회현동에 터를 잡는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용산 미군기지 “용산 쪽 공부 한번 해볼까요?” 비영리 문화유산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의 최 선생과는 종종 근대건축답사를 함께하곤 했는데, 그날은 어쩌다 용산 이야기로 이어졌다. 곧바로 몇몇 근대건축 연구자들이 응답해왔고, 우리는 주말마다 옛 용산과 지금의 용산을 비교하며 걷기 시작했다. 효창공원, 한강진, 남산, 해방촌, 남영동 등 용산구의 서쪽 절반을 걸었다. 몸으로 직...
[거창 자생의원] 건물은 여러 개의 문을 갖고 있다. 문은 두 공간을 연결하고 이곳을 지나 저곳으로 가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때론 막다른 지점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집이 살아가는 사람의 세계를 담고 있다면 공간이 만들어낸 세계는 무한할 것이다. 하나의 문이 하나의 세계를 연다고 본다면, 여러 개의 방과 거실, 현관, 대문 등으로 이뤄진 우리의 집에도 수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
익산 익옥수리조합 ‘근대건축여행’ 하면 군산이 첫 손에 꼽히지만, 군산과 전주 사이의 넓은 농토를 보유한 만경강 북쪽 익산이야말로 놓쳐서는 안 되는 도시다. 전북의 근대건축유산은 대부분 미곡 수탈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 전북은 일본인들이 집단 이주해서 대농장을 설립하며 농업기업을 형성한 지역이었다. 일본인들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저리로 땅을 빌리거나 매입하여 한국인 소작농을...
서울 정독도서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에는 특별한 명칭이 있다. 지정될 당시 소유주와 관련 있는 정보, 혹은 건물의 역사 중에서 원형이 될 만한 시기의 건물명이 붙는다. 예를 들면 김제의 ‘하시모토농장 사무실’은 맨사드형 지붕을 얹은 서양식 건물인데, 문화재명은 지정 당시 건물명인 ‘김제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다. 최근에는 ‘김제 일본인 농장 사무실’이란 다소 평...
인천 옛 대화조 사무실 문화유산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치측정 방식을 적용하여 문화유산 활용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낡은 건물을 사도 될까?” 하는 근본적 질문에는 쉽게 측정하지 못하는 가치 판단이 들어간다. 인천 개항장 골목길의 삼층짜리 목조 가옥은 첫눈에도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집은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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