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근대역사거리 지난겨울처럼 등록문화재, 근대건축유산으로 떠들썩했던 적이 있을까? 목포는 개별 건물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첫 번째 사례다. 재개발로 구도심이 단숨에 쓸려나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도시의 역사를 지키는 방법으로 오래전부터 근대건축학자들이 주장해온 방식이다. 개별 건물로는 문화재로 지정하기 부족하더라도 지역으로 묶어 역사적 의미를 찾는 것이다. ...
영등포 영단주택 옛집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는다. 시기별로 유행했던 건축재를 계속 덧대며 공간을 바꾸고 내부를 넓혀왔다. 이 집들을 보면 복잡한 우리의 근현대사를 보는 것 같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일을 이 집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온전히 복원된 집뿐만 아니라 세월에 흐트러진 집들도 살펴야 하는 이유는 역사의 연표를 채우지 못한 빈칸의 삶들을 발견할...
어떤 장소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때는 연약하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다. 꺼질 듯 안타까운 목소리들이 나를 그 장소에 멈춰 세운다. 한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장충단공원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설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소설을 집필하며 시대가 강요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
청주 연초제조창 돌이켜보니 근대건축 답사를 다닌 지 올해로 십 년이 되었다. 고택, 양관, 관공서, 학교, 성당 등 수많은 건축물을 보았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대구 연초제조창이다. 도시에 좌초된 항공모함 같은 담배공장은 취재 허가를 받아 안내자와 함께 들어갔었다. 공장은 자신감이 넘치고 열렬했던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독특한 기계미학과 무색무취의 ...
구룡포 일본인 마을 그 집에 가면 얼마만큼 진실을 알 수 있을까? 십여 년 전 포항 구룡포 장안마을을 찾은 적 있다. 사진동호회가 찍은 몇 장의 사진과 장안마을이라는 단서만 가지고 무작정 구룡포로 향했다. 해안가를 따라 내려가는데, 횟집들이 늘어선 평범한 어항(漁港) 뒤쪽으로 골목이 거미줄처럼 펼쳐진 마을이 하나 나타났다.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덕수궁 미술관 그림을 보려고 움직일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렸다. 내 구두굽 소리가 그날따라 유난히 더 크게 들렸다. 신경이 쓰여 내려다보니 작은 정사각형 판재가 정렬된 마룻바닥이었다. 덕수궁 미술관 바닥이 마루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판재는 작은 직사각형 세 개로 이루어졌다. 가로로 붙은 것과 세로로 붙은 것이 교차하면서 바닥에 리듬을 만들어냈다. 덕수궁 미술관의 새 전시...
마포 석유비축기지 진수 씨는 지금도 시커먼 탱크를 떠올리면 까마득해지곤 한다. 국방색으로 칠해진 석유탱크 다섯 개를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일을 꼬박 이십 년 동안 했다. 공기업에 취직했다는 기쁨도 잠시, 외딴섬 같은 곳으로 발령이 났다.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었고 출입 통제된 일급 보안구역이었다. 바로 앞은 난지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쌓여가는 쓰레기 산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았...
소래염전 소금창고 소금창고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쓸쓸한 건축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십여 년 전 소래포구 근처를 자전거로 달리던 날이었다. 도로 건너편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쪽은 마구 자란 식물들이 덮고 있는 황폐한 벌판이었다. 군데군데 물이 고여 있었고 사방으로 이랑이 뻗어 있어서 ‘이곳이 염전이었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다. 갯벌의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목조 ...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어린이대공원 하면 동물원과 놀이동산과 미아보호소가 순서대로 떠오른다. 과자를 쥐고 코끼리 우리 앞에 섰다가 쑥 다가온 기다란 코에 깜짝 놀라던 기억, 오랜 기다림 끝에 타게 된 회전목마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내려와야 했던 아쉬움, 그리고 일행 중 개구쟁이 하나는 꼭 사라져 어른들이 미아보호소로 뛰어가던 모습이 선연하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대공원에 가는 일...
고즈넉한 골목길 중간쯤에서 충정각을 만났다. 충정로 넓은 대로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오래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모퉁이에 새파란 식물들이 온몸을 감싼 벽돌집 한 채가 유독 눈에 띄었다. 박공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집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서양식 포치(porch)와 탑처럼 생긴 현관 때문이었다. 창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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