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린 지 반 년이 되어간다. 남편과 나는 7년이란 긴 시간 동안 연애를 해왔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해서도 크게 다툴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신혼 때에는 크고 작은 다툼이 잦기 마련이라는 인생 선배들의 말이 진짜였다. 우리 부부도 언성을 높이는 날이 많았다. 함께 살아보니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가 없었다. 싸...
“오늘은 회사에서 힘든 일 없었어?” 한낮 기온이 26도까지 올랐던 작년 4월의 봄날, 축 처진 어깨로 퇴근한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힘들지 않았다고 답했지만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집 정리를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떻게 기운을 북돋아줄까 생각하다가 아내의 소소한 버킷리스트 하나를 떠올렸다. 공원에 캠핑 의자를 펴놓고 앉아 석양 감상하기! 나는 아내의 분주한 손길을 멈춰...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지만 둘째 딸 현주는 내게 유난히 더 아픈 손가락이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아 과외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아이의 앞날에 시련이 연달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꽃길까진 아니어도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 펼쳐지길 기도했건만 딸아이는 한 학부모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항의를 견디다 못해 과외를 그만둔 뒤로 거칠고 힘든 길...
난 요즘 어르신들을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단지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사람 구경하는 할머니들도 재밌고,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처음 만난 할아버지끼리 주거니 받거니 담소 나누는 모습도 웃음이 난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귀여운 어른은 우리 시할머니다. 올해로 102세인 시할머니는 고령의 나이에도 허리가 꼿꼿하셔서 항상 바르게 앉은 자세로 우리를 맞아주신다. 옷차림도...
“기정떡이 먹고 싶다. 어릴 적에 할머니가 자주 만들어 주셨는데….” 암 투병을 하며 먹는 걸 힘겨워하던 엄마가 유일하게 먹고 싶어한 음식은 기정떡이었다. 엄마의 기억 속 언저리에는 할머니가 만들어주던 떡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엄마의 얼굴에 띈 옅은 미소가 무척 반가웠다. 병마와 싸우며 기력을 잃어가던 엄마가 어렵게 찾은 입맛이었다. 이 ...
“김서영인데요. 매달 입금되는 추가 양육비가 이번에 들어오지 않아서 연락드렸어요.” “네, 저소득 한부모가족 추가 양육비 말씀하시는 거죠? 어머니께서는 35세가 되셔서 이번 달부터 대상에서 제외되셨습니다.” 행복복지센터 담당 직원의 답변을 듣자마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이혼 후 우울증 치료와 양육으로 정신없이 지내느라 줄곧 전업주부로 지내온 내겐 추가 양육비가 생명줄과 같...
나는 마흔이 넘어서까지 운전면허가 없었다. 왜 운전을 안 하느냐고 누가 물으면 두 다리 튼튼하고, 요즘엔 대중교통이 워낙 발달돼있지 않냐며 당당하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맘속에 자리한 두려움 탓이 컸다. 내가 차를 몰면 꼭 사고를 낼 것만 같아 두려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내 주위에는 언제나 운전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주변인들의 차를 얻어 타고 다니며 차를 몰...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처럼, 살다보면 어린 시절 몸에 밴 행동을 평생 되풀이하게 된다. 나 또한 오래된 버릇 몇 가지를 갖고 있다. 그중 한 가지가 신발 정리다. 신발 정리는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에게 교육 받아온 생활습관이다. “신발을 항상 가지런히 정리해놔야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아버지의 말씀은 우리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가...
작년 봄에 자식들이 거하게 차려준 생일상을 받으며 나는 일흔 살을 맞았다. 일흔이 되니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는 게 확실히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기침도 자주 하고 매일 기력이 없는 나를 보며 딸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엄마, 혹시 칠순앓이 해?”라고 묻기도 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컨디션이 심상치 않아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보았더니 ‘만성 기관지염’ 이었다....
눈 예보가 있던 날, 아침에 일어나니 창 밖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은 오늘처럼 눈이 참 많이 내리던 강원도의 시골 마을이었다. 요즘은 길이 사통팔달 나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때는 동네로 통하는 길이 딱 하나였고 버스도 하루에 두 대뿐이었다. 그 버스마저도 눈이 두텁게 쌓인 날엔 동네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집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밤새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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