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나라에는 젊은 남녀를 상징하는 단어가 여럿 있다. 총각, 처녀, 도령, 규수…. 그중에서도 갓 결혼한 젊은 여자를 뜻하는 ‘각시’라는 단어에 유독 정이 간다. 각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여쁜 전통한복을 입은 새색시와 새신랑이 마주 서서 절을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라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무엇보다 각시가 정겨운 단어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내가 가진 각시탈 목걸이 ...
산부인과 의사로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온 지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분만과 수술에 구슬땀을 흘리고, 제자들을 양성하며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나날 속에서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한 일이 코이카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이다. 개발도상국으로 파견을 나가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은 의사로서 또 다른 사명감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서 비록 현지에 장기간 머무...
이성선(27) 님의 초대장장소 경기도 수원시 버드나무 앞집 @270house수취인 기억 속에 할머니 집 풍경을 간직한 사람방문규칙 돌아갈 때 사진으로 기록 남기기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여러분, 혹시 이 가사가 어떤 노래인지 아시나요? 맞아요. 윤도현밴드의 〈너를 보내고〉예요. 아버지의 젊은 시절 애창곡인데 지금은 제가 더...
문학계에 호사가 있을 때마다 이모부는 내게 제일 먼저 연락하는 사람이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날에도, 소설 〈파친코〉의 드라마화가 확정되었을 때도, 그는 내가 그 소식의 당사자인 양 감격의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그리고 늘 같은 말로 마무리 지었다. “너도 언젠가 한국을 빛내는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우스꽝스러울 정도의 야심을 품은 그 말이 나는 퍽 듣기 좋았다...
일요일 이른 아침, 외로운 마음에 도서관을 찾았다. 가끔 지독히 외로울 때가 있다. 외로움이 심하면 정신이 황망해진다. 통이 좁은 날렵한 바지를 입은 총잡이들이 어슬렁거리던 황야 같은 공간이 마음을 급습한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 초입에 묘사된 정신의 황무지 같은 공간이라 해야 할까. 도서관 서가 사이 좁은 회랑은 외로움을 달래기 좋은 공간이다. 주말 아침에 일어나...
휴일이 없는 서점지기는 때맞춰 쉬기 어렵다. 평일 내내 한산해도 주말만큼은 다른 업종 부럽지 않은 곳이 서점이요, 서점지기가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할 때가 ‘빨간날’이다. 자연히 나의 휴무일은 평일이다. 언제가 제일 좋을까. 월요일은 주말 동안 팔려나간 책을 주문하고 받아야 해서 어렵다. 화요일은 업무 관련 연락이나 외부 회의가 많고 수요일은 한 주의 복판이므로 도리 없다. ...
최애(最愛)란 가장 사랑한다는 뜻으로, 요즘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 앞에 많이 붙여 사용한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도 최애 가수가 있다. 그를 실제로 처음 본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들과 공원에 봄나들이를 간 날이었다. 야외 클래식 음악회의 초대 가수였던 그는 흰 양복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작은 체구의 청년이었다. 그날 음향 장비에 문제가 있었는지 그는 노래를 부르다가 ...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고기 맛을 봐야겠나?” 콩고기에 대한 내 첫인상은 그러했다. 고기가 아닌 것에 온갖 솜씨를 부려 고기처럼 만들어놓은 물건을 채식인이 먹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가. 건강 때문에 고기를 못 먹는 경우를 제외하면 본인의 입맛과 체질에 맞거나 동물 복지와 환경보호를 위해 채식을 택한 것 아니었나. 그런 이들이 가짜 고깃덩이를 굳이 먹으려 들다니, 채식의 산뜻...
“할머니, 저고리, 라일락, 강아지, 일주문,모퉁이, 허수경, 막걸리.태풍이 올 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그러고는 가장 사랑하는 것들의 이름을태풍에다 반창고처럼 붙인다.” 풍력(風力)이란 말은 참 신비하다. 생각해보면 바람에게도 분명 힘이 있다. 나뭇잎을 흔들 수 있고 연을 밀어 올리고 육상 선수의 기록을 깎기도 한다. 풍력에는 계급도 존재한다. ‘보퍼트의 풍력계급’에...
이해인 수녀가 오리여인에게 늘 웃음이 넉넉하고 그림이 다정한 오리여인에게 벌써 다섯 번째 편지를 쓰는군요. 지난번 글에서 ‘쉼에만 집중하느라 바쁘다’고 했다는 아픈 친구의 고백도, 제가 소개한 교황 요한 23세의 ‘평온함을 위한 십계명’ 중 1, 2, 6, 9번 네 개를 선택했다는 내용도 기쁨을 주었습니다. 다소곳한 모습으로 향기를 전하는 수녀원 정원의 수많은 백합을 바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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