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내와 분식집에 가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다. 모처럼 학창 시절에 즐겨 먹던 정겨운 음식들을 마주하자 옛 감성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그러다 메뉴판에 적힌 ‘마요 덮밥’을 보는 순간, 내 기억은 순식간에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충북 청주에서 대학을 다닌 나는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다. 충청도의 한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는 바람...
가수 ‘임영웅’의 인기가 여전히 식을 줄 모른다. 콘서트는 티켓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돼 암표가 수백만 원을 호가할 정도라고 한다. 그의 콘서트 소식이 들리자마자 난 임영웅의 팬인 어머니를 위해 콘서트 예매에 도전했다. 비록 표는 구하지 못했지만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 티켓을 예매하기로 했다.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어머니께 콘서트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영화표...
식구란 한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하는 존재다. 그러나 난 근래에 큰딸과 한식구가 맞나 싶은 생각에 자주 씁쓸해졌다. 한집에 살기만 할 뿐, 과연 서로 마음을 나누며 진정으로 식사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순도순 먹는 밥이 꿈에서나 가능해진 건 딸아이가 고3이 되고 나서부터다. 갑작스레 생긴 알레르기성 피부질환을 딸은 무척 힘들어했다. 음식을 먹으면 얼굴이...
누군가와 맺은 약속은 팍팍한 인생살이에 때때로 설렘이란 감미료를 살짝 넣어준다. 내겐 세 번의 소중한 약속이 그랬다. 초임 교사 시절에 사랑하는 제자들과 했던 약속들이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처음 부임했던 1990년대 중반, 열정이 충만했던 나는 첫해부터 자원해서 3년 연속 6학년 담임을 맡았다. 첫 제자들은 모든 게 서툰 담임인데도 잘 따라줘 고맙고 사랑...
사람들은 보통 ‘제주도’ 하면 쪽빛 바다나 웅장한 한라산부터 떠올릴 것이다. 내 경우에 제주도는 푸근한 인심으로 제일 먼저 기억되는 곳이다. 12년 전 겨울, 몰아치는 업무로 심신 상태가 바닥까지 내려가 있었다.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단 생각이 간절했기에 제주도 발령은 꼭 구원의 소식 같았다. 숨구멍을 트는 심정으로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시작한 제주살이에서 마음의 ...
우리 집엔 매일 내 머리에 똥을 싸는 참새가 살고 있다. 3년 전 여름에 갑자기 찾아온 인연이다. 집안에서는 절대로 배변을 하지 않는 고집불통 강아지 ‘토리’ 덕분에 만난 참새다. 우리의 첫 만남을 떠올리면 아직도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다. 언제나처럼 그날 저녁도 토리와 산책에 나선 참이었다. 잘 걷던 토리가 갑자기 나무 밑으로 가더니 무언가를 입에 물고는 좀처럼 놓지 않았...
우리 집 베란다에는 항아리가 하나 놓여있다. 어머니께서 쓰시던 항아리인데 우리 집에서 함께 사시다 작년에 시골로 낙향하시면서 두고 가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아리는 먼지만 잔뜩 뒤집어쓴 채 천덕꾸러기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항아리가 눈에 밟힐 때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지만 열어본 적은 없었다. 아내는 어머니의 손때 묻은 다른 여러 물...
나는 요즘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함을 뒤지고 다닌다. 지나가는 주민들과 경비아저씨가 가끔 의아하게 생각하고 “거긴 왜요?” 하고 묻지만 다 이유가 있다. 천연비누를 만들 때 필요한 우유갑, 플라스틱 반찬통 등을 찾기 위해서다. 분리수거함이 남들에겐 쓰레기통이지만 내겐 그야말로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천연비누의 장점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입 아플 정도다. 화학 성분이 들어가지 않...
거리를 다니다가 나는 종종 할머니 상인들 앞에 멈춰 서곤 한다. 작은 돗자리에 채소를 늘어놓고 등을 구부린 채 손질하는 할머니들을 보면 괜스레 애잔하다. 볕이 따갑던 지난봄에는 동네 버스 정류장 근처의 옹색한 좌판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한 할머니가 밭에서 기른 채소를 갖고 나온 모양이었는데 아욱, 미나리, 도라지, 실파, 돌나물 등등 어릴 적 고향에서 보던 봄나물들이라 더...
37년 전, 나는 첫 아이를 낳고 기쁨 대신 서러움 속에서 지냈다. 아들이길 바라는 온 가족의 기대와 달리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하루 있다가 퇴원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나와 아기를 데리고 기어이 집으로 향했다. 핏덩이를 안고 어머니의 뒤를 쫓는 내 심정은 죄인이라도 된 듯했다.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했던 당시에는 흔하게 벌어지는 광경이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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