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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을 켜면..
: 김홍우 : 2020-11-07 :   

텔레비전을 켜면.. 저는 우선 ‘뉴스’ 채널을 찾아보게 되고 그 다음에는 주로 재방영 되는 것으로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게 되며 그리고는 ‘전원일기’의 순으로 보게 되는데 제 나이 즈음이나 좀 더 넘어서신 분들이라면 저와 같은 이들이 꽤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뉴스는 물론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려는 것이고.. ‘나는 자연인이다’(이후 ‘자연인’)를 보는 것은 나도 나중에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서 인데 미리미리 그 방면의 선배들이 사는 모습을 보며 학습해두려는 마음에서 이기도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저도 꼭 그렇게 다람쥐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있는 깊은 산속에서 아무 것에도 구속 받지 아니하며 그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전원일기’는 오래 전에.. (그때도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보았던 영상들을 다시 보며 추억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이기도 하고 소소한 일들이 은근하게 또는 좌충우돌로 벌어지는 시골 농촌 풍경 속에서 사는 모습들에 정감이 가고 또 여러 인간관계에 대하여 새삼 다시 배우게 되는 것도 여전히 많기 때문에 보곤 합니다.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러한 분들이 저 말고도 꽤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렇듯 오래 전 연속극 ‘전원일기’를 재방영하여 보여주는 채널이 두 세 곳 쯤 되는 것 같으니 말이지요. 방송국이란 늘 시청률지상주의를 표방하는지라 시청률이 없거나 낮으면 그러한 재방영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뉴스 같은 것이야 남녀노소 누구나 다 ‘세상의 현재와 지금의 상황’를 잘 알아야 하기에 젊은이들도 많이 보겠지만 ‘자연인’이나 ‘전원일기’ 같은 것은 나이가 좀 있는 이들이 더 볼 것 같은데 지금 창창한 젊은 날을 지내고 있는 이들에게는 다소의 단순한 흥밋거리나 볼거리 또는 그냥 ‘옛날이야기’ 같은 것으로 여겨지거나 치부하게 되는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요즈음은 조금 더 나아져서 시골이든 농촌이든 산골이든 하는 곳이 좀 더 관심을 받기도 합니다만 산에서 사는 것이나 농촌에서 사는 것은 작금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는 ‘현재의 필요’로 다가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드라마 극중에서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어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것은 요즘에는 예절 상으로 보거나 생활방식 면에서이거나 거의 보기 어려운 풍경들인데 그러한 시절을 살았던 이들에게는 그것조차도 추억의 볼거리가 되는군요. 깊은 산 속에서 거의 혼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며 불편한 것 투성이 이겠지만 TV영상 속에 나오는 ‘자연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한결같이 ‘지금이 가장 편하고 건강하며 행복하다.’는 말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는 몸이 아파서 건강회복을 목적으로 하여 들어온 사람.. 도피처를 찾는 듯 쫓기는 모양으로 들어 온 사람.. 그리고 모든 세상사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다투지 않고 살아가려는 사람 등이 있고 그냥 좀 ‘편안히-’ 쉬려고 들어온 이들이 주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대부분은 바깥 세상에 대하여서는 쯧쯧 혀를 차거나 또는 진저리를 치거나 혹은 미련 없이 또는 냉정히 돌아선 모양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들도 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쯧, 왜 저러고 살아..”하는 것과 “참 자유함이 있어서 부럽네..”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현실도피’의 모양으로 보는 것이며 후자는 ‘과감한 결단’으로 얻은 자유함에 가치를 두는 것으로 보는 것이지요. 즉, ‘사람같이 살지 않는다’라는 것과 또 그 반대로 ‘사람같이 산다’는 것으로서 인데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만 그런가.. 뉴스를 보면 전해져오는 ‘좋은 소식’은 거의 없고 온통 ‘죽이네 살리네’의 모양으로 된 미워하고 원망하며 시비하는 모습들이라서 정말 쯧쯧 하게 되지만 그 속에 우리들의 현재와 현실이 있기에 꾹 참는 모습으로 보기는 합니다만 그래요.. 언제쯤이 되어서야 ‘축하하네 감사하네’의 소식들이 줄지어 이어지는 모양을 보게 될까요.. 내 생전에 단 하루라도 그런 날이 있는 것 보기를 원하고 바라기는 하지만 쯧쯧.. 전원일기 속에는 용식엄니, 일용엄마 그리고 헛헛한 웃음이 명품인 김회장 최불암씨 등이 좋은 연기를 통하여 드라마의 완성을 더하여 가고 있고 또 역시 첫째 둘째 아들과 일용이, 응삼이 그리고 복길이와 수남이에 이르기 까지 출연진들이 극중 역할들을 잘하고 있습니다. 수더분하고 시골 분위기에 걸 맞는 좋은 연기들을 하고 있는데 이 연속극이 종영된 후에는 거기 나온 주연 조연급들이 다른 작품에 출연들을 하기도 하였지만 ‘일용이’나 ‘응삼이’ 같은 얼굴들은 거의 보기 힘들어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다가 TV 무슨 프로그램에 전원일기 식구들의 얼굴이 비추어지기만 하면 ‘전원일기 속의 아무개 역할..’이라고 소개가 되곤 하는 것을 보면 과연 전원일기가 ‘국민연속극’으로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려고 한다면 우리 국민들의 정서와 속내를 잘 읽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던 것 같고.. 그래서 또 확인 되어지는 것이 곧 아직까지도 우리 국민들 대부분의 정서는 그렇듯 ‘흙냄새’에 여전히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해방 전쟁 등을 겪으면서 ‘굶기를 밥 먹듯-’하며 산에 올라 소나무껍질을 벗겨 먹었다는 세대가 여전히 지금 우리 가운데 살아있는 시대이고 보면 그럴 만도 하지요. 저처럼 비록 정부미 쌀에 보리를 넣은 밥을 주로 먹기는 했어도 ‘없어서 굶은 적은-’ 한 번도 없는 그냥 ‘가난했던-’ 이들의 그 ‘빈궁의 시절’ 그래서 ‘없어서 불편했고 슬펐던 시절’의 기억이 아직도 우리 사회 속에 채 아물지 아니한 상처자국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됩니다. 그래서 전원일기 속에서 ‘예전 인심과 현대 정서가 부딪히는 것’ 같은 장면들을 볼 때에는 저 어릴 적 ‘이웃 마을에 누가 밤새 얼어 죽었다더라..’ 또는 ‘아무개가 굶어죽었다더라..’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흘리듯 듣고 있던 저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합니다. “잘 살아 보세-” 노래도 싫든 좋든 한 참 하였고 결국 우리 선대들의 ‘삽과 곡괭이’로서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희생으로 ‘잘 살게-’도 되었지만 입으로 들어가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되는 듯 싶더니 이번에는 서로 간에 ‘더 잘 먹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오르려는-’ 싸움이 그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치열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과연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며 왜 살아가는가..’하는 생각을 하여 보면서.. 저렇듯 보행 길 사거리에 사과 궤짝을 놓고 나와 앉은 ‘관상철학’의 작은 깃발에도 눈길을 주게 됩니다. 글의 전개가 반듯한 중심을 잃고 장황하여져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합니다. 글 솜씨가 없어서 그런 것이기는 합니다만 그 속에 제가 하고 싶은 말과 드러내고 싶은 가슴속 이야기는 대충 모두 한 것 같아서 그저 독자들의 이해와 판단을 구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혹 나중에 ‘자연인’으로 산 속에서 만나게 되든지 또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산기슭 농촌마을에서 전원일기 속 김회장님 같은 모습으로 늙어가다가 혹 조우하게 되든지 서로의 건강과 복을 빌면서 좋은 날들 속에 혹 만나게 되면 또 그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십시다. 산골어부 2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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