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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판으로 살아가십니까
: 김홍우 : 2020-11-13 :   

수정판으로 살아가십니까.. “누구든지 글을 쓰는 사람은 일단 작문이 다 된 글을 다시 읽어보고 또 읽어보면서 수정하고 또 수정하기를 수십 번이라도 거듭하여 문장의 완성을 이루라” 어떤 수필가 분이 자신의 글 속에서 주창(主唱)하신 말씀을 옮겨 보았습니다. 왜 틀린 말씀이겠습니까마는- 저의 경우는 (쫀쫀한 모양으로 일기형 산문형 글을 긁적거리는 주제이기는 하지만..)그나마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쩐지 좀 죄스러운 마음이 있는데 한 편으로는 또 그러한 고언과 조언주심에도 오직 순종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꿀꿀한 모양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 생각하는 바를 작고 기죽은 목소리라도 ‘공사 중인 2층 높이’의 모양처럼 그 당위와 변명을 세워볼까 합니다.. 자신이 써놓은 글의 수정도 읽고 또 읽고 또 읽어보고 그러면서 수정과 교정을 거듭하여야 하는 것일까.. 한 두어 번 쯤 독본 수정 윤색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렇게 수차 수정 교정 하는 것을 감히 잘 못 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생각에는 어떤 ‘완성된 문장’이 10번의 수정을 거쳤을 때에는 처음 거기에 함축된 내용의 모양들이 처음 쓰여질 때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것이지요. 내용의 향방이 달라지게도 되고.. 심지어는 아주 반대의 모양과 전개로도 이어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수정하여서 더 ‘좋은 문장’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더 ‘못한 문장’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데 왜냐하면 그렇듯 자꾸 수정을 하면서 그 첫 문장으로 쓰던 당시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지는 않을까하는 기우 같은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러한 쪽이 더 문장의 완성과 작품의 윤색을 가져 올 수도 있지만 ‘작가의 첫 번 마음’은 사라져버릴 수도 있게 되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문장 중에 ‘그때 그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 가 첫 문장이지만 나중에 수정을 하면서 ‘.. 맛있게 먹었던 것 같다’ 로 바뀔 수도 있다면 그리고 만일 바뀌었다면 그 내용이 주는 문자적 감흥이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전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2차 3차 수정을 가하면서 ‘맛있다고 생각했었다.’라거나 하는 것으로 바뀌어 수정 되었다고 한다면 그 글을 처음 쓸 때의 작가의 마음과 후의 마음이 다르고 또 작품으로서의 내용의 감정적 향방도 그 가닥을 달리하게 되는 경우가 분명 생겨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겠지요. 당면한 상황과 크게는 인생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의 속담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글자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문학작품의 모양과 가치가 전혀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 됩니다. 그래서 또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 ‘인생도 수정을 거듭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우고 새로 하고 다시 지우고 또 새로 번복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의 ‘완성작’들이 나올 텐데 그렇지 못하여 우리 사회에 이러한 미완(未完)의 모양들과 모습들이 양산되어 저렇듯 사방 각처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합니다.. 쯧 그래요. 지나온 인생에도 수정을 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사람들의 ‘생활’은 그렇게 하였던 시간 속에서 되어진 일들에 대하여서는 결코 되돌리지 못하는 법이기에- 그리고 시간 속에서 하지 않은 것이 없고 할 수도 없으므로- 그래서 지난날들 속 잘 못되어진 것에 대한 온갖 후회와 미련과 뉘우침과 안타까움도 생기는 것인데 여기에는 좋은 길을 찾는 모양과 그렇지 못하였던 것에 대한 후회도 있으므로 인생의 일들은 그 처음 생성과 고정의 모습이 향후 인생의 흥망을 좌우하게도 되는 것이지요. 뜬금없이 갑자기 인생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뀌어야 할 그리고 바뀌었어야 했던 인생들의 모습’들을 주변에서 사회에서 지금도 어렵잖게 볼 수 있게 되면서입니다. 글도 중요하지만 인생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저도 이렇게 저렇게 산문이나 수필 같은 형태로 수준 낮은 ‘혼자 글’을 쓰곤 하는데 신중하지도 진중하지도 못한데다가 글 솜씨도 없어서 그저 처음 앉은 자리에서 휙- 하고 후딱 써 버리곤 합니다. 그리고는 물론 교정 수정도 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그저 한 번 쭉 읽어보면서 밑받침 띄어쓰기 틀린 것들을 고치는 정도이지 어떤 되어지고 쓰여진 문맥을 다시 고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상기한대로 ‘저의 처음 모습과 생각’이 수정되어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인데 물론 잘하는 짓이라고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기는 합니다만.. 그래서 이러한 방면으로 어디 핑계거리가 없는가 하고 돌아보면- 글쓰기의 대가라 할 수 있는 황순원님도 자신의 단편 ‘소나기’ 후반부를 서너 번 다시 고친 즉 수정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또 이문열님의 ‘사람의 아들’도 후반부 말미의 결성을 수정 보완 증보하여 ‘개정판’으로 바꾸어 내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아하, 대가들도 작업을 마친 뒤에 다시 수정하기도 하는구나 합니다. 그러한 분들은 근대와 현대를 대표하는 글쓰기들의 대가이시고 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로 과연 세인들에게 ‘국보급 문장가’로 각인되어져 있습니다만 그렇듯 수정 보완 할 것이 작품의 발표 후 나중에 발견 되어졌다면- 그러면 그 이전에 발표되었던 작품은 ‘부족한 글-’이었다는 것일까요.. 부족하니까 고쳤고 잘 못 되었으니까 수정하였지 않았느냐 하는 물음을 받았다면 위 대가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또 무슨 대답을 하여 줄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가깝게만 계시다면 ‘사람의 아들’ 초판본을 가지고 가서 지금도 현역이신 이문열님을 찾아가서 이것저것 알고 싶고 확인하고 싶어서 묻고 싶은 것도 있지만 휴.. 저 같은 무명 독자의 소소한 욕구에 얼마나 부응하며 또 만나 주실 지도 의문이고 하여 그냥 이렇게- 끙끙 까지는 아니지만 깊은 호흡으로 ‘아무렇게나-’ 이리 저리 왔다리- 갔다리 건너뛰는 생각들을 하여 봅니다. 뿐 아니라 앞 시대를 살았던 시인 ‘이상’님도 그의 초기 발표작들과는 다른 문맥과 전개의 모양들도 발견되어지곤 합니다만 그의 ‘날개’와 그 날갯짓이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아무튼 대단하신 분들의 ‘대단한 결정’으로 되어 진 것이라 생각하면- 그저 또 읽어보게 되는 것뿐입니다. 문장이며 책으로 나온 것들이 그렇듯 ‘발표 된 후에라도-’ 수정을 가할 수 있다면.. 또 있다는 것은 ‘작가의 결정과 결심’으로 되는 것이기에 그 일에 대하여서 누가 뭐라 토를 달 것도 없고 토를 달 일도 아니지만, 한 인생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입으로 몸으로 써온 행함으로 써온 일들에 대하여서는 전혀 수정의 지우개와 보정의 펜을 들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화이트로 싸-악 덮어서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 곧 지난 날의 언행들은 누구나 다 두어 개 쯤은 가지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교정도 수정도 할 수가 없으니.. 그러면 그렇듯 지나온 일들에 대하여서 우리는 어떻게 정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하긴 새삼 ‘정리’랄 것도 없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벌써 과거 속에서 싫든 좋든 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꺼내어 다시 보고 돌아 볼 수는 있지만 ‘고쳐 놓을 수는-’ 없다는 것에 다만 탄식성 한숨만을 길고 깊게 내쉬게 될 뿐이지요.. 그래서 ‘지금 쓰는 글이 중요하고 지금 하는 말이 중요하며 지금 하는 행위와 지금 내리는 결정이-’ 중요합니다. 작가 중 누구라도 “나중에 수정해야지”하면서 글을 완성하고 발표하며 “뒤에 말을 바꾸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지금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을 두고는 어떻게 든지 취소하고 바꾸어 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이들은 많이 있으니- 그래서 지금 이‘현재’가 과거이며 미래라고 하는 말에도 그래요. 동감을 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무엇을 ‘저지르면서-’ 살아가게 되는 일의 단속도 자력으로는 감당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어떠하십니까.. 후회 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삶을 살아오셨으면 참으로 멋지신 분이며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지난 날 들 속에 있는 후회하는 일 뉘우치는 일 등 그것들을 ‘상쇄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의 이 생각에 만일 조금이라도 동감이 되시는 흐름을 감지하신다고 한다면.. 이제 지금 부터라도 ‘일기’를 쓰듯 ‘나의 인생의 일’들을 적어 놓는 일들을 작은 메모 형식으로라도 시작해 보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유려한 문체와 문장도 필요 없고 그저 내가 살았던 ‘흔적’으로만 남겨지는 것이라도- 이제 좀 더 훗날에 그것들을 뒤적뒤적 꺼내어 살펴보는 인생정리의 시간 즈음이 다가 왔을 때에 좀 더 편안해 지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어 놓는 삶’을 사는 사람은 ‘좀 더 주의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웰빙 라이프’와 ‘웰빙 다이’를 동시에 잡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이러한 이들을 두고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그저 강물처럼 지나가는 날들 속에서도 이렇듯 ‘나의 시간’을 글로서 잡아두고 묶어 두어 나중에 ‘나의 책’에 독자들이 되어 즐거울 수 있는 ‘지혜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산골 어부 202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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