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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화 조화 건화
: 김홍우 : 2020-11-19 :   

생화(生花) 조화(造花) 건화(乾花)... 생화를 피어 있는 모습 그대로 말린 것을 영어로는 드라이플라워(Dry Flower)라고 하는데 우리말로는 ‘말린 꽃’이라고 하는 군요. 그러면 한문으로는 건화(乾花)라고 하여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내가 장터에서 사온 프리지아 꽃을 창가 김치 냉장고 위에 올려놓고 한동안 보았는데 한 주간 쯤 지나자 조금씩 시들어 가는 것을 아내가 거꾸로 매달아서 말렸습니다. 그리고 교회 식당 한 쪽 벽에 걸어 놓았는데 함께 말린 안개꽃의 하얀 색과 프리지아의 노란 색이 조화가 되어 비록 시들기는 하였지만 나름 독특한 색깔을 내보이고 느낌을 주면서생각보다 매우 예쁩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 있던 자연생화(生花) 시절에도 물론 그 그윽한 향기를 내뿜었겠지만 때에는 그 밑둥을 썽둥 잘라서 그렇게 양동이에 담겨 매장에 옮겨져 있을 적에도 어쩐지 그 향기만큼은 더욱 진해진 것 같았었는데 이렇게 그 향기의 힘을 다 쏟고 이제는 기진하여 시들고 말았음에도.. 그래서 저렇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베드로처럼 되어버린 모양이 되었음에도 너의 향기는 여전하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꽃을 보면서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은가 생각해보게 됩니다. 생화의 시절 곧 젊고 씩씩하며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고.. 조화의 시절 즉 나의 주장이 버려지고 타에 의해서 만들어진 나의 모습으로 힘을 잃고 살아가는 시절.. 그리고 건화의 시절 온 기운이 다 빠져버리고 육체도 마르고 시들고 사람들도 상대하여주지를 않아서 그저 한 쪽 벽에 걸려 ‘옛날사람’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건화도 그 냄새 곧 향기로서의 냄새를 잃지 않고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늙어가기는 하지만 그 ‘사람의 향기’는 잃지 말아야 합니다. 쯧, 몸에 기름이 빠지고 주름이 잡히기 시작하면 또한 악취도 나기 시작하여 많은 늙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모양으로 향수를 바르거나 화장품을 쓰기도 하지만.. 지워지지도 않고 다 가려지지도 않지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늙은이의 곁에 오기를 꺼려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늙으면 더 외로워지고 고독해지기에 이를 참지 못하고 극단으로 치닫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패배의 모습으로서 지혜로운 것이 아니며 ‘추한 마름’입니다. 그러기에 늙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먼저 이겨내는 힘과 지혜로서의 의지와 거기에 따른 결단의 삶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갖추어 갖는 사람들만이 ‘향기로운 노년’으로 만년을 살아갈 수 있지요.. 이러한 늙은이에게 사람들은 다가오고 곁에 앉고 가르침 받기를 원합니다. 곧 노년의 향기를 뿜뿜 내는 삶이지요. 그러면 그 향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선(善)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중에, 끝까지,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때에도 향기를 잃지 않는다면 그는 여전히 그곳에 필요한 사람이고 유용한 사람이며 보고 싶은 사람으로 찾고 싶은 사람이 됩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것이 ‘성공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요.. 선(善)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가장 큰 매력이고 또 발산입니다. 또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으로 모든 것을 갖추는 삶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선(善)이라고 하는 것은 ‘쥐려는-’자와 ‘쥐고 있는-’자에게는 해당도 없고 상관도 없기 때문이지요. 선은 오직 ‘베푸는-’자와 ‘나누는-’자의 몫으로 돌려져 있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한 자는 생전에 말미에 그리고 사후에도 그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이들에 의해서 그윽한 향을 피워냅니다. 마치 건화(乾花)와도 같이 말이지요. 살아생전 사랑 받고 늙어서도 존경 받고 죽어서도 기림 받는 삶이라면 과연 멋진 삶을 살아간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을 때 땅 위에서 대기로 호흡을 하고 있을 때 많은 향(香)을 비축하여 놓아야 합니다. 당신은 많이 비축하여 놓았습니까? 허허 조금은 말장난 같지만 사실은 그 ‘비축’에도 마음을 쓰지 말아야 하지요 ‘나의 향기’는 내가 비축하여 놓는 것이라기보다는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이 그렇게 하여주는 것이지요. 뭐.. 거창하게 인류에게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도 나를 바라보는 내 자식들에게 이러한 모습과 이름을 유산으로 물려주면서 나는 생화, 조화, 건화의 삶을 향기로 살아간 ‘아무개의 자식이다’라고 하는 긍지를 갖게 하여 준다면 그 이어지는 삶에도 유익할 것 같아서 일단.. 하는 마음으로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2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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