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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막강산 성탄절..
: 김홍우 : 2020-12-25 :   

적막강산(寂寞江山) 성탄절.. 어떤 분이 작금의 성탄절 분위기를 일컬어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굳이 꼭 애써 돌아보지 않아도 금년 성탄절은 그 분위기가 그야말로 적막강산입니다. 적막(寂寞)이라는 말이 “쓸쓸하고 고요함”이라는 말이니.. 지금의 성탄절 분위기에 꼭 맞는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교회들은 성탄네온으로 장식도 하고 성탄트리도 만들어 놓기는 하였지만 이번 성탄절의 ‘교회적 사회적 고요함’이란 아마도 처음 겪는 모양이 분명합니다. 지난 전쟁 때에도 교회들은 종을 치며 성탄을 알렸고 미군들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우리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성탄 곧 메리 크리스마스를 과연 Merry이 모양으로 즐거워하였다고 하는데.. 그러니까 지금은 그때의 전쟁 속 성탄절보다도 훨씬 더 침체된 모양인 것이지요. 매년 성탄절을 맞이하면서는 늘 활기차 있던 교회들과 사회전반의 축제와 축하의 분위기가 고조되곤 하던 지난 모습들이 떠오르는데 이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흥왕과 만연으로 고통 받고 또 불안해하는 이들의 깊은 한숨소리에 묻혀버리면서 인하여서 이렇듯 적막강산 분위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 성탄절을 맞이하여 새벽기도를 마치고 이렇게 책상 앞에 앉아서 몇 시간 뒤 오전 성탄감사예배를 준비하고 있는 목사 된 저의 마음도 이렇듯 휑-한 기분과 분위기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성탄 축하 합니다 / 세상에 오심을 축하 합니다 / 예수님 탄생 축하 합니다.. 등의 말들이 생각납니다. 지난 성탄 연극 때 극 중에 동방박사, 양치는 아이, 목동들과 마을 사람들 등으로 분장한 중고등부 아이들이 하던 대사들이었는데.. 이제 이러한 코로나 정국 분위기 속에서는 거의 들려오지 않는 소리들이 되어서 휴.. 하며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며 돌아보면 과연 ‘성탄축하’는 우리 사람들끼리의 인사로만 적당하고 적합한 것이고 예수님께 드릴 인사는 아니지요. 성탄 곧 예수님의 세상에 오심의 궁극적 목적은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한-’ 대속제물 되심으로 ‘죽으시려고-’ 오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쉽게 말해서 ‘죽으러 오신-’ 분에게 ‘축하합니다.’라는 인사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을 일’은 ‘경사(慶事)’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또한 우리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큰 경사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일 곧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는 일’로 우리들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로 인하여서 죽고 소멸하고 음부에 들어가며 멸망으로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우리 영혼들을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기쁨 속에 들어가도록 길을 바꾸어주셨으니- 그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감사함이 천년만년 우리 입술의 찬양으로 노래되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죄인 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주님의 오심을 환영하고 감사하여야 함이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구원사역을 하시기 위하여서 세상에서 ‘고난 길’을 걸으시며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끔찍한 죽음을 당하셔야만 하는-’ 예수님에게 “그렇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는 인사 할 수 있지만.. 축하 합니다? 그래요 그렇게 축하 받을 사람들은 바로 우리 사람들이니 이렇듯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서로 서로 마음껏 축하하십시다. 그런데 그렇게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는 기쁘고 즐거운 모양들이 가득하여야 하는데 오늘날 이렇게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적막강산에 까마귀 나르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사전을 보면 적막강산- “아주 적적(寂寂)하고 몹시 쓸쓸한 풍경(風景)을 이르는 말. 앞일을 내다볼 수 없게 캄캄하고 답답한 지경(地境)이나 심정(心情)을 비유적(比喩的ㆍ譬喩的)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어떤 이는 ‘성탄’을 두고 말하기를 “구원 받음의 축하 분위기로 지내야 할지.. 희생하심에 대한 숙연한 분위기로 지내야 할지.. 각 개인이 잘 판단하여 어느 한 쪽을 택하여야 할 것”이라고도 하였는데..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 곧 ‘구원받음에 대한 서로의 축하’쪽으로 택하였기에 늘 그렇게 ‘즐거운 성탄절’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또 오늘 이 성탄절도 마땅히 즐겁고 감사하는 분위기이어야 하지만 감사는 할망정 즐거움은 이렇게 희석되고 있으니 예수님께 죄송하다고 하여야 할지.. 미안하다고 하여야 할지.. 휴.. 그래요 코로나는 우리를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당장의 현실적 문제이니 외면 할 수도 제쳐 놓을 수도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만 매여 있고 묶여있다가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뽑혀지고 그 적막강산의 모습과 모양은 더하여만 갈 것이니.. 이제는 좀 더 그리고 다시 한 번 분발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이러한 코로나의 위협을 강력하게(!) 물리치고 ‘성탄의 온전한 감사’와 ‘우리 서로의 즐거운 축하 분위기’를 속히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사료되어서 오늘 이 성탄절 새벽에.. 이제는 벌써 아침에 되었네요.. 저의 생각을 서툰 글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산골어부 김홍우 목사 2020-12-25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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