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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유목민들의 겨울 셈법 2020년 2월호
 
몽골 유목민들의 겨울 셈법

 

몽골에서 두 해째 겨울을 맞고 있다. 혹자는 몽골은 일 년 열두 달 중 아홉 달이 겨울이라고 한다. 가끔 5월 혹은 9월에도 눈발이 날리는 광경을 목격하다보니 몽골의 겨울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것 또한 무리는 아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방한 부츠에 두터운 외투, 질 좋은 목도리와 털모자, 털장갑으로 감싸지 않으면 뼛속까지 스며드는 겨울 한기를 막아낼 재간이 없다. 몽골 사람들은 특히 겨울 복장에 아낌없이 투자해 단단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치는 패션을 자랑한다. 긴긴 겨울, 몽골 사람들의 옷차림을 구경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드디어 지난 12월 22일 본격적인 몽골의 겨울이 시작되었다. 몽골에서는 동지부터 9일씩 나누어 아홉 날이 아홉 번 지나가면 겨울이 끝나고 비로소 봄이 온다고 여긴다. 유목민들의 경험으로 전수된 몽골의 겨울 서사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9일에는 가축 젖으로 만든 맑은 술이 얼 정도로 춥다. / 두 번째 9일에는 양 울타리가 얼 정도로 춥다. / 세 번째 9일에는 세 살배기 소뿔이 얼 정도로 춥다. / 네 번째 9일에는 네 살배기 소뿔이 얼 정도로 춥다. / 다섯 번째 9일에는 널려있는 곡물이 얼지 않을 정도로 춥다. / 여섯 번째 9일에는 길을 가다가 노숙을 해도 동사하지 않을 정도로 춥다. / 일곱 번째 9일에는 언덕마루에 눈이 녹아 길이 다시 보일 정도로 춥다. / 여덟 번째 9일에는 햇볕에 나뭇잎과 꽃이 필 정도로 춥다. / 아홉 번째 9일에는 따뜻한 온기에 행복이 찾아들 정도로 춥다.
 

아홉 번의 9일이 다 지나고, 대략 이듬해 3월 중순쯤이 되면 겨울이 끝이 난다. 영하 수십 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10, 11월 추위를 싹둑 잘라내고, 12월 동짓날을 겨울의 시작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지겹도록 긴 겨울을 견뎌내기 위한 나름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추위는 겨울을 맞이하기 위한 전초전일 뿐, 동지부터를 진짜 겨울이라고 삼음으로써 역설적이게도 봄이 그만큼 가까이 왔다고 일러주는 것이다. 또한 다섯 번째 9일부터는 ‘곡물이 얼지 않을 정도로’ 추위가 누그러들고, 이후에는 동사하지 않을 정도, 꽃이 필 정도라 말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아홉 번째 9일에는 따뜻한 온기와 행복이 찾아들 정도가 된다. 겨울 셈법은 봄이 멀지 않았음을 얘기하는 희망의 노래인 것이다.


몽골 들판을 누비는 말, 소, 양, 염소 등과 유목민들에게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오는 겨울 셈법이 격려의 메시지가 되어준다. 유목민들은 겨울 셈법에 따라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경사진 산자락을 절개해 겨울 축사를 만들고 비상시를 대비한 동물들의 식량을 비축한다. 그러나 말 그대로 ‘비상식량’일뿐 전적으로 동물들은 아침이 오면 들판에 나가 스스로 먹거리를 해결한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폭설과 ‘차강 조드’라 불리는 한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동물들은 주둥이로 파헤치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은 눈 속을 헤집다 급기야 굶주림과 추위에 지쳐 집단으로 동사를 한다.


냉혹한 초원의 겨울에 비해 몽골 국민 절반 정도가 살고 있는 수도 울란바토르의 경우, 몽골의 겨울 셈법을 논하기엔 사실 적당치는 않다. 직경 1미터가 넘는 대형 파이프를 지하에 매설해 가가호호 온수와 난방을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연결돼있어 집안에서는 반팔티셔츠 하나면 족하니 동장군이 머쓱할 지경이다.


하지만 가혹한 초원의 겨울을 알기에 어쩌다 쏟아지는 낭만적인 눈송이도 마냥 즐기기만 하기엔 왠지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동지를 지나면서 하루하루 길어지는 일조량이 희망의 신호이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겨울 셈법은 지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곧 초원의 누런 풀들은 생기를 찾아 일어설 것이고 끝없이 펼쳐질 녹색의 축제를 기대하면서 몽골에서의 두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임태훈


KOICA 해외 봉사단 단원으로 몽골국립과학기술대학교에 파견되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2년간의 근무 기간 중 1년 8개월이 지났습니다. 조만간 학생들과 헤어질 생각을 하면 가슴 한편이 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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