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이 달에 만난 사람
수건 한 장의 위대한 힘 2020년 9월호
 
수건 한 장의 위대한 힘

그림 김희현

 

얼마 전 내 다섯 번째 책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이 출간됐다. 원고는 퇴사하기 전에 회사 다니며 틈틈이 써놨던 건데 이래저래 출간이 늦어졌다. 그 사이에 퇴사하고 서점도 차리는 등 180도 변 한 라이프스타일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신경을 못 쓰다가 뒤늦게 분발해서 마지막 교정을 보던 날이었다.

 

난 뭐든지 손에 쥐고 읽는 걸 좋아해서 웬만하면 이메일도 중요도에 따라 출력해서 보는데 어쩌다보니 이번 책은 교정지를 인쇄하지 못해서 컴퓨터에서 PDF 파일로 봐야 했다. 아이를 재우고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배경음 삼아 거실 소파에 기대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정이라는 게 편집자가 아무리 자세히 봐도 최종적으로 저자가 보고 수정해야 하기에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내용을 다 아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서너 번 읽는 일은 생각만큼 만만한 게 아니다. 몇 권의 책을 냈지만 이 과정만큼은 익숙해 지지가 않는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본 지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자세 한 번 바꾸지 않은 채로 원고를 읽다보니 막판에는 온 몸이 뻐근하고 목과 어깨가 심하게 결려 왔다. 중간중간 스트레칭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교정을 마무리 짓고 소파에서 일어나려는데 목과 어깨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제야 ‘아, 조금이라도 움직였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뭉친 근육을 풀 힘도 없이 졸음이 밀려와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다음날,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이 자꾸만 왼쪽 어깨를 향해 기울어졌다. 통증이 심해져 나중에는 ‘악!’ 하고 비명이 터졌다. 책방에 출근하려던 그대로 동네 한의원에 갔더니 좀비처럼 목이 반쯤 꺾인 나를 보며 한의사가 진찰을 시작했다. “실례지만 무슨 일 하세요?” “아, 글을 쓰는데요….” 내 대답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한의사는 근육이 경직돼 담이 온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주일 정도 침 맞고 물리 치료 받으시면 될 거에요”라는 한의사 의 말대로 침을 맞고 물리치료까지 받았으나 다음날 통증은 3배쯤 더 심해졌다. 한의원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을 것 같아 신경외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더니 목 디스크 직전 단계였다. 현재는 일자목 상태인데 그대로 두면 바로 목 디스크가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요즘 팔까지 저릿저릿한 게 조짐이 좋지 않았다. 목을 바로 세우는 게 힘들어 목과 어깨에 진통주사를 여섯 군데나 맞았다. 내친 김에 도수치료까지 받은 내게 물리치료사는 집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오늘 부터 베개는 수건 한 장으로 쓰세요.” 우리의 목은 C모양이 정상인데 나는 1자 로 곧게 펴진 상태이니 이걸 C로 되돌려 주기 위해선 일반 베개는 절대 쓰면 안 되고 목 부분에만 살짝 꺾임을 줄 수 있 는, 돌돌 만 수건을 베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 낮아서 어색할 수 있는데 얕보면 안 돼요. 꾸준히 수건 베개를 쓰다 보면 수건 한 장의 힘을 알 수 있 을 겁니다.”

 

그날 밤 쓰던 베개를 옆으로 빼놓고 수건을 벴는데 영 어색했다. 불 꺼진 방에 서 수건 베개를 베고 똑바로 누워 천장 을 바라봤다. 그제야 SNS에서 팔로우 하는 작가들이 왜 그렇게 운동에 목숨을 거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라톤, 걷기, 요가 등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철칙처럼 지켰다. 낮에는 글을 쓰고 저녁에는 운동으로 마무리하는 그들의 일상을 ‘귀찮지 않나?’란 생각으로 무심히 넘겼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들은 살기 위해 달렸던 거다. 운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경험해봤기 때문에 죽어라 뛰는 거였다. 글 쓰는 동안 춤추는 사람은 없다. 꼼짝없이 한 자세로 앉아 손가락만 움직여야 하는데 그 이후라도 몸을 풀어 주지 않으면 몸은 서서히 굳고 말 것이다. 무엇이든 거저 주어지는 건 없다. 글 쓰는 삶을 선택한 이상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이유미(에세이스트)

 

8년 넘게 총괄카피라이터로 일했던 ‘29CM’을 퇴사한 후 안양에 책방 ‘밑줄서점’을 열었습니다.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잊지 않고 남겨두길 잘했어》 등을 펴냈으며 브런치에 ‘소설로 카피 쓰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절망의 끝에서 부르는 우리 희망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