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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푸치노처럼 달콤 쌉싸름했던 외출 2021년 8월호
 
프라푸치노처럼 달콤 쌉싸름했던 외출

“엄마, 어디 가는데? 우리도 같이 갈래!”
좀처럼 혼자 외출하는 법이 없던 내가 이상해 보였는지 따라 나서겠다고 보채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읽을 책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남편과 사소한 신경전을 치렀던 그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속상한 마음을 달래고 싶어 나선 길이었다.
마침 동생이 선물해준 음료 무료쿠폰의 만료일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을 때라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뜬금없지만 내 신경은 온통 무료쿠폰으로 쏠렸다. 쿠폰으로는 비싼 음료를 먹어야 손해 보지 않는 것이란 생각에 이 카페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음료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까지 열었다. 몇몇 블로그의 글에서 발견한 ‘제주유기농말차크림프라푸치노’를 추가 요금까지 내고 큰 사이즈로 구매했다.
그러고는 문득 스스로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날 만큼 속상한 상황인데 무료쿠폰에나 집중하고 있다니 못났다, 정말!’ 결혼 후 나의 기회비용 계산은 점점 철두철미해졌다. 어떤 물건을 사든지 ‘저비용 고효율’을 맘속으로 주문처럼 외우며 항상 최저가를 찾아 헤맸다. 여러 홈페이지를 돌아다니며 물건 값을 비교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다보면 돈에 얽매이는 생활이 출구 없는 터널 같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쓸 때는 좀 쓰면서 살자고 다짐까지 했었지만 결심이 무색하게 ‘무료쿠폰’이란 단어에 홀랑 넘어간 마음이 내 결혼생활은 앞으로도 지금보다 나아질 것 없을 거라 암시하는 듯해 더 씁쓸했다.
음료를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남편이었다. 어디냐고 꼬치꼬치 묻는 통에 위치를 알려주고 나서 프라푸치노를 세 모금 정도 마셨을까. 어느새 남편이 눈앞에 와있었다. 내가 뭐 때문에 속상한지 이유는 모를 테지만 평소와 다른 모습이 걱정되어 무작정 데리러 온 그의 속마음이 느껴졌다.

남편은 앉자마자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먼저 내보였다. 오전에 등산을 다녀오며 찍은 칼바위 사진들이었는데 가파른 바위들을 오르다가 정말 죽을 뻔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해 흐르는 눈물을 티슈로 닦아내던 나도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았다. 남편과 등산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 사이 내 마음도 프라푸치노의 얼음 알갱이들처럼 부드럽게 풀어졌다.
우리의 싸움은 이렇듯 언제나 시시하게 끝난다. 화난 이유를 정확히 말하지 않고 토라져 있으면 늘 남편이 먼저 곁에 다가온다. 그러면 역시 서로 말하지 않아도 나는 남편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남편은 어느새 풀어진 내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절반도 채 마시지 못한 프라푸치노를 건네자 남편은 한 모금 쭉 들이키더니 “맛있네. 이제 그만 집으로 갈까?” 하고 물었다. 큰맘 먹고 나선 가출이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허무해 남편을 먼저 들여보내고 펼친 책을 마저 보았다. 마침 결혼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었다. “서로의 몸을 만질거리가 있는 것이 좋아요. 예를 들어 손톱을 깎아주거나 귀 청소를 해주거나 상대의 흰머리를 뽑아주거나 어깨를 주물러주는 것 같은 돌봄 있잖아요. 저는 그게 굉장한 애정인 것 같아요.”
우리 부부의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하는 문장이었다. 아침밥은 못 챙겨주지만 가끔 남편의 손발톱을 깎아주었고 남편이 지쳐 보이는 날이면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했다. 남편은 자주 체하는 나의 손과 뭉친 어깨를 수시로 조물조물 마사지해준다. 이런 살가운 스킨십은 표현이 부족한 우리 부부가 사랑하는 방법이다.
한 시간 정도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 간식으로 떡볶이를 만들고 있다는 남편의 문자를 받고 아들이 좋아하는 어묵과 딸이 좋아하는 순대를 샀다. 내가 좋아하는 내장을 추가하고 싶었지만 딸을 넉넉히 먹이고 싶어 모두 순대만 달라고 주문했다. 남편과 함께 울고 웃었던 내 하루에서 달콤 쌉싸름한 프라푸치노 맛이 나는 것 같았다.

 

 

우성미

서울 미아동에서 열한 살 난 아들, 일곱 살 난 딸, 그리고 이해심 깊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그림 솜씨 좋은 남편이 그린 예쁜 표지의 책 한 권을 내는 것과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는 시골집에서 도란도란 사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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