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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 먼저 주시면 안 될까요? 2018년 2월호
 
퇴직금 먼저 주시면 안 될까요?

 

 

“엄마, 입학금 딱 한 번만 내주면 안 돼? 응?” 교사가 꿈이었던 딸이 서울교대에 합격했지만 우리 살림에 대학은 사치였다. “사정도 안 좋으면서…” “그 형편에 대학까지 보내려고?” 누구 하나 용기를 주는 사람이 없었다. 행여 돈 빌려 달랠까 꺼리는 눈치였다.


남들은 가고 싶어도 못가는 교대에 합격한 딸아이한테 차마 포기하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등록 마감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집이 없으니 담보대출도 받지 못하고 결국 사채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채 사무소 문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내게 험악하게 생긴 한 남자가 외쳤다. “아주머니 무슨 일로 오셨어요?” 순간 겁에 질린 나는 재빨리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제 어디에 사정을 해야 하나, 하며 낙담한 채 걷고 있는데 순간 내 퇴직금 생각이 났다. 서둘러 근무하던 마트에 가서 사직서를 냈다. “왜 갑자기 사표를 내세요?” 평소 처지를 알고 있던 사장님이 물었다.


“퇴직금 받아서 딸아이 등록금 내려고요. 죄송하지만 퇴직금 좀 먼저 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사장님은 사표를 받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의논을 하시지 그랬어요? 우리가 한솥밥 먹은 지 몇 년인데…. 등록금은 그냥 빌려 드릴 테니 월급에서 조금씩 갚는 건 어떠세요? 이자는 안 받을게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목돈을 빌려주고 이자도 받지 않다니!


“여사님 같은 분을 놓치면 우리도 손해예요”라며 큰 결심을 해준 사장님 덕분에 딸은 무사히 등록을 했고 약속한 대로 제 힘으로 용돈도 벌고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졸업했다. 오늘도 힘차게 학교로 출근하는 딸을 볼 때마다 20여 년 전 선의를 베풀어준 사장님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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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부족한 것이 많지만 고마운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60대 할머니입니다. 겸손한 자세,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부자는 아니지만 읽을 책이 있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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