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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모아주는 비자금 2018년 8월호
 
아내가 모아주는 비자금



몇 달 전, 퇴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월급 통장을 보여달라고 했다.


꼼꼼하고 알뜰한 아내를 믿었기에 평생 월급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나의 갑작스런 요구에 아내는 좀 당황한 듯 보였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월급 통장을 가지고 온 아내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이번에 월급 15만 원 오른 거 알고 있지? 그 돈은 내 이름으로 적금 통장 만들어서 저금하면 어떨까?” 내년쯤 퇴직하고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시간까지는 4년여. 그동안만이라도 내 이름으로 적금 통장을 만들어 노후 대책 비자금을 모으고 싶었다.


아내는 내게 다른 속내가 있다고 오해했는지 “내가 잘 모으고 있는데 뭘 또 따로 적금을 들어요?”라며 반대를 했다. 하지만 다른 의도는 없었다. 그저 내 이름으로 된 통장 하나쯤 갖고 싶은 것뿐이었다. “동료들은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에 모인 돈을 보며 희열을 느낀다는데 나는 그런 통장이 하나도 없어서 어깨에 힘이 안 들어가. 용돈 올려줬다 생각하고 부탁해, 여보.”


미심쩍은 눈빛을 보내는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밥상을 물리고 안마까지 해주었다. 결국 며칠 뒤 아내는 내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주었다.


벌써 다섯 달째, 매월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볼 때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일 년이면 백팔십만 원, 4년이면 칠백이십만 원, 생각만 해도 부자가 된 기분이다. 4년 뒤 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퇴직 때까지 부지런히 모으면 노후자금으로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통장을 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는 “그렇게 좋으면 다른 통장도 당신 이름으로 바꿔줄까?” 하며 웃음 짓곤 한다. 큰 액수는 아니지만 내 통장에 한 푼 두 푼 돈이 쌓이는 걸 보면 일하는 재미가 더욱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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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채

결혼 30년 차로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입니다. 10년 동안 대기업에 다니다가 IMF 이후 작은 중소기업으로 이직해 22년째 자동화 기계를 제작하는 엔지니어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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