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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효도 2018년 10월호
 
세상에서 가장 쉬운 효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다 우연히 스팸전화를 걸러주는 어플을 실행했다. 어플에는 전화 통화를 한 사람과의 친밀도를 나타내주는 기능도 있었다.


자주 연락한 번호가 순서대로 뜨고 그 번호를 누르면 친밀도가 백분율로 계산돼 나왔는데 1순위는 딸아이였다. 학교는 끝났는지, 학원은 잘 도착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통화를 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문득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통화 내역 친밀도 1위가 분명 친정 엄마였을 거라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이젠 엄마와의 통화 내역은 한참을 내려야 할 정도로 순위가 밀려나 있었다.


 

엄마는 내가 아이를 낳고도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딸아이를 돌봐주었다. 출근하면서 아이 맡기고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러 오는 것도 힘들 거라면서 평일에는 아예 육아를 도맡아주고 내가 주말에 아이를 데려갈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몸은 편했지만 아이가 너무 보고 싶고 걱정되는 마음에 나는 회사에서 틈이 날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엄마, 지금 애기 뭐해?” “간식 먹고 잘 놀고 있어. 일하다가 전화하면 윗사람들 눈에 밉게 보여. 자꾸 전화하지 마.”


하지만 나는 아이가 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반대로 엄마는 내가 걱정할까 봐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먼저 전화를 걸어오는 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훌쩍훌쩍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엄마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애기 다쳤어?” “그게 아니고, 애기가 좀 전에 걸었어! 너무 좋아서 너한테 알려주려고 전화했어. 이걸 네가 봤어야 했는데 너 대신 내가 먼저 봤네.”


15개월이 지나도 걸음마를 떼지 못하는 아이 때문에 꽤나 걱정을 하던 때였다. 안 그래도 속상한데 사무실 옆자리 언니가 넌지시 건넨 말에 더욱 조바심이났다.


“혹시 너희 친정 엄마가 애기를 너무 보행기에 앉혀두거나, 업고 계시는 거 아닌지 한번 확인해봐. 그것 때문에 발달이 느린 걸 수도 있어. 나도 어렸을적에 엄마가 바빠서 하루 종일 보행기에 태워두고 키워서 걸음마가 늦었다고 하더라고.”


곰곰 생각해보니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애기 그만 업고 다녀. 그래서 걸음마가 늦을 수도 있는 거래.” 엄마는 내 말 한마디가 내내 걸리셨던 모양이었다. 혹여 자기 때문에 손녀 걸음마가 늦어지는 게 아닌지…. 그래서 아이가 발걸음을 떼자마자 울면서 나에게 전화까지 하셨던 것이다.


 

아이가 자라고 더 이상 엄마 손을 빌리지 않게 되자 엄마에게 전화하는 횟수도 서서히 줄어갔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애기 어린이집 잘 다니고 있니? 거기 처음에 가면 애가 많이 운다던데… 할머니 안 찾아?” “울어도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어요. 엄마 나 바쁘니깐 이따 전화할게.”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던 손녀를 떠나보낸 엄마는 얼마나 적적했을까. 또 손녀가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가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다.


모처럼 엄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뭐해?” “뭐하긴, 노래 듣고 있었다. 웬일이냐? 일하느라고 바쁠 텐데?” “그냥,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내 대답에 수화기 너머 소녀처럼 좋아하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그동안 왜 그리 무심했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어느 방송에서 보니 자식에게 부모는 이불 같은 존재라고 한다. 추우면 끌어다 덥고 더우면 발로 차서 내쳐버리는 이불 같은 존재…. 나부터라도 더 이상 엄마를 이불 같은 존재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이제 돈 들이지 않고도 쉽게 효도할 수 있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자주 전화를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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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육아를 전담해준 친정 엄마 덕분에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충남 예산의 40대 워킹맘입니다. 손녀를 키워준 엄마의 노고를 잘 알기에 자주 찾아봬야지, 안부 전화라도 드려야지 하지만 늘 마음뿐 실천이 어려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엄마에게 하루에 한 번씩 안부 전화를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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