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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 한 그릇에 씻긴 피로 2018년 11월호
 
덮밥 한 그릇에 씻긴 피로

 

그날은 유난히 버거운 날이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낸 뒤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려는 찰나, 막둥이 둘째 녀석이 내게 ‘응가 폭탄’을 퍼부었다. 화장실로 달려가 아이를 씻겨 나온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는 젖 달라고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얼른 품에 안고 젖을 물렸다. 그런데 잠시 뒤 배가 뜨끈해지더니 축축한 물기가 전해졌다. 녀석이 오줌을 싼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옷을 갈아입히자 아이는 연신 토를 해댔다. 엄마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듯한 아이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았다. 미움도 잠시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제야 긴장의 끈을 놓은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으로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이를 안고 거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곧이어 퇴근한 남편은 내게서 아이를 받아들고 토닥여 재웠다. 그러고 나서 식탁 위 차갑게 식은 보쌈으로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를 챙기느라 저녁 준비 시간을 놓쳐 시켜놓은 보쌈이었다.


얼마 뒤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가보니 간장 소스에 따뜻하게 버무려진 보쌈 덮밥이 차려져 있었다. “달걀이 없어서 수란은 못 했어. 입맛 없어도 한술 들어.” 정성이 담긴 따뜻한 밥을 후 불어서 떠먹었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지친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릇이 깨끗이 비워지는 동안, 힘들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남편이 아니었다면 늦둥이를 키우며 겪는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을까? 직장 일로 많이 지칠 텐데 퇴근 후 집에 오면 아내의 고된 하루를 위로해주는 남편. 그 사랑으로 매일의 피로를 씻는 난 정말 복 받은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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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은

여섯 살과 갓 백일을 넘긴 아들 둘을 둔 엄마입니다. 학원 영어강사로 바쁘게 지내다 얼마 전부터 전업 주부가 되었습니다. 가끔 도서관에서 엄마와 아이가 그림책으로 소통하는 법에 대해 가르칩니다. 곧 첫째아이와 그림책을 함께 만들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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