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지구별 우체통
싱가포르의 편리한 축의금 문화 2020년 1월호
 
싱가포르의 편리한 축의금 문화

외국에 살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결혼식에 많이 초대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친하지도 않았던 대학 동창이나 그만 두면 더 이상 보지 않을 동료와 상사의 결혼식에 귀중한 주말 시간을 보냈던 나의 지난날이여 안녕!


외국에서 하객의 범위는 우리의 그것과 참 다르다. 싱가포르에 살며 자연스럽게 결혼식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자신과 결혼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때문에 애태우던 한 싱가폴 친구에게서 반가운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나 드디어 프러포즈 받았다! 내 결혼식에 와줄 거지?”


싱가포르 사람들은 ‘Registries of Marriage(ROM)’이라 불리는 혼인청에서 아주 간단한 서약식을 하며 혼인신고를 한다. 20분도 채 안 걸리는 이 서약식에는 결혼 당사자들과 증인들만 참석한다. 담당 직원의 주재 아래 서약을 낭독하고 대답한 뒤 결혼 당사자와 증인이 서명을 함으로써 식은 끝이 난다. 이 짧은 이벤트로 그들은 정식 부부가 되지만 보통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후에 ‘진짜 결혼식’이라고 부르는 결혼식을 따로 연다. 싱가포르에서 청첩장을 받았다면 이 진짜 결혼식, 즉 파티에 올 수 있냐는 질문으로 이해하면 된다.


결혼식에 초대받는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축의금은 얼마를 내야 하지?’ 한국에서는 친한 정도에 따라, 사회나 회사에서의 관계에 따라 축의금의 금액을 대략 가늠할 수 있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얼마를 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축의금에 대해 고민하던 어느 날, 불현듯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싱가포르에선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에 따라 축의금이 다르대.” 계산적이라 생각한 뒤 잊고 있던 그 말이 힌트가 되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 검색창에 청첩장에 적힌 주소와 축의금이란 단어를 넣어봤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는 축의금을 앙바오(Ang bao 혹은 ang pow)라고 부르는데 이는 돈이 들어있는 빨간 봉투를 의미한다.


세상에나, 고민한 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내가 갈 장소에서 열리는 결혼식의 대략적인 축의금 액수가 나왔다. 이렇게 쉽게 고민이 사라지다니! 가벼운 마음으로 모니터가 보여주는 결과를 보던 나는 이내 기겁하고 말았다. 그곳엔 내가 찾은 레스토랑뿐 아니라 싱가포르에서 결혼식이 열릴만한 모든 호텔과 레스토랑의 축의금 액수가 보기 좋게 표로 정리되어 있었다. 또한 주말과 주중, 점심과 저녁의 액수가 달라지는 것까지 아주 친절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게다가 물가상승률과 각 장소의 사정에 따라 이 표는 매년 갱신되고 있었다. 물론 이 축의금 표는 공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Ang bao rate’라는 제목답게 정확하게 따를 필요까지는 없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으로 만든 표다. 결혼식이 열리는 장소에 따라 축의금이 달라지다 보니 이런 정보가 필요했으리라. 그 정성이 정말 대단했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중요한 시작을 축하하는 자리에 그 사람과의 친밀도가 아닌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축의금이라…. 내게는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친구의 결혼식 파티는 유명한 공원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치러졌다. 파티답게 우리는 끝도 없이 와인과 샴페인을 마셨고 다 같이 춤을 췄다. 어쩌면 이런 싱가포르의 축의금 문화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장소를 기준으로 축의금이 정해진다는 게 여전히 계산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합리적으로 내가 먹은 만큼 내고 가니 더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파티를 즐겼다.


애매한 친구 사이나 친하지 않은 동료들은 서로 초대하지도, 축의금을 주고받지도 않으니 전체적인 시간 및 돈 낭비가 적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축의금으로 마음 상하고 다투는 일이 한국보다는 훨씬 적을 듯싶다.


조만간 2020년에 맞춰 ‘Ang bao Rate 2020’이 업데이트 되겠지?


임효진


글로벌 커리어우먼의 꿈을 안고 싱가포르에서 6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를 통해 싱가포르의 생활 및 해외취업에 대해 이야기하며 얼마전 《내가 선택한 일터, 싱가포르에서》를 출간했습니다.

 
[다음글] 몽골 유목민들의 겨울 셈법
[이전글] 그린란드의 겨울바다 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