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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을 걷는 행복 뉴질랜드 트램핑 2020년 3월호
 
숲속을 걷는 행복 뉴질랜드 트램핑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체험하는 것. 멀고 먼 비행 거리를 견디면서까지 여행자들이 뉴질랜드를 찾는 이유다. 뉴질랜드 여행을 가면 뭘 해야 하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내가 주저 없이 권하는 것이 바로 트램핑(Tramping)이다.


트램핑은 트레킹(trekking)과 캠핑(camping)을 접목한 야외활동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등산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우천 시에 대비할 레인 재킷 및 침낭, 자체적으로 해 먹을 식재료와 조리도구 등 15킬로그램은 거뜬히 넘는 큰 백팩을 메고 하루 이상 걷는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처럼 트램핑을 하기에 최적인 나라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이곳에는 자연 그대로의 트랙들이 많다. 산을 좀 좋아한다면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랙 중 하나로 손꼽히는 밀포드 트랙(Milford Track)이 뉴질랜드 남섬에 위치해 있다. 이 외에 뉴질랜드 산림청이 지정한 아름다운 트랙들도 각지에 분포해 있다.


내가 트램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솔직히 ‘주말에 할 일이 없어서’였다. 밤늦게까지 놀 것 많고 할 것 많은 한국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뉴질랜드에서의 생활은 따분하기만 했다. 무엇을 할까, 뉴질랜드를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는 동호회가 없을까 하고 찾다가 눈에 띈 것이 바로 트램핑 동호회였다. 비싼 장비 없이 그냥 걷기만 하면 되고, 몇 번 하다가 싫증이 나면 얼마든지 그만두어도 될 것 같아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트램핑이라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걸어야 한다는 점도 선뜻 마음이 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잠시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연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아, 이래서 엄마도 등산을 했던 건가?’ 등산을 싫어하던 내가 지리산, 설악산 등 새벽같이 집을 나서 전국을 돌아다녔던 엄마의 취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 속을 걷다 보면 헛(Hut)이라고 불리는 작은 오두막을 만나게 된다. 사전에 온라인 예약을 하면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데 트램핑에 대한 뉴질랜드 사람들의 애착을 증명이라도 하듯, 뉴질랜드 전국의 숲속 곳곳에 1,000여 개 가까운 오두막이 숨어 있다. 밀포드 트랙처럼 유명한 오두막은 하룻밤에 비싸면 8만 원, 아주 싼 곳은 5천 원 정도에 이용할 수 있다.
 

오두막에 도착하면 무거운 백팩을 내려놓고 바리바리 싸 가지고 온 음식으로 저녁을 준비한다.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면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깊은 숲속 오두막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같이 온 일행과 수다를 떨거나, 오두막에 머무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일상을 공유한다. “오늘 어디에서 오셨어요?” “내일은 어느 루트로 가실 건가요?” 하며 트랙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다 보면 금세 친해진다. 물론 어떤 이는 조용히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한다.


깊은 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오두막 밖으로 나선다. 트램핑 중 내가 가장 기다리던 순간이다. 어두운 밤,수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머리 위에 펼쳐진다. 별빛만이 반짝이는 고요한 자연 속에서 마음을 달래는 시간을 가져본다. 저 멀리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도 들린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니!’ 삶에서 이런 경이로운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정진희


영어를 배우러 뉴질랜드에 왔다가 정착한 지 벌써 9년 차가 되었습니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일한다》의 저자이며 본업은 디자이너입니다. 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블로그(Korean.jinhee.net)에 부지런히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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