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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동안 쌓아온 희망창고
반세기 동안 쌓아온 희망창고 2020년 4월호
 
반세기 동안 쌓아온 희망창고

창문이 있었던가? 열 살의 내가 누워 있던 시골병원 입원실은 온돌방이었다. 서울 병원으로 옮겨 B형간염이란 진단을 받기 전까지 의사는 독감이란 말만 반복했다. 결국은 집안을 휘청거리게 할 만큼 비싼 약을 쓰고 나서 완치되었지만 서울에서 간염이 낫고 몸이 건강해질 때까지의 기억은 별로 없다. 하지만 아직도 시골병원 온돌방의 느낌은 뚜렷하게 남아 있다. 창문이 있었는지, 벽지는 무슨 색이었는지, 병실 풍경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느낌만은 그대로다.


현기증이 심해져 무엇을 먹는다는 것이 어려웠다. 온돌은 너무 뜨거워서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고, 주사 바늘이 꽂혀있던 팔은 계속 욱신거렸다. 작은 방이 놀이기구처럼 빙빙 돌았다. 아아, 열 살의 절망이여. 아마도 엄마는 더했으리라! 절망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온다.


말도 잘 알아듣지도 못하고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며 엄마는 당신의 절망을 작은 책 한 권에 가리고는 쉼 없이 그 책을 읽어주었다. 그 소리는 독경이었고 주문이었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귀에 윙윙거리는 소리는 종일 작은방을 감싸고 있었다. 아프지 않았다면 나는 그 책을 통째로 외우게 됐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읽고 또 읽고,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수백 번을 읽어주었다. 엄마는 아마도 그 책에서 희망을 읽고 있었을 것이다. 아픈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괴감과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작은 책이 《샘터》였다.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이 그때 그 작은 병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처럼 정체불명의 전염성 바이러스 때문에 밖에 나가지 못하거나 병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 그 여파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웃들이 공포와 무기력으로 떨고 있는 시기.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아파야 끝나게 될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확진자의 감염 경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망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삶이 끔찍해진다. 모든 노력이 한순간에 쓸모없어 진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인간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다. 《삼총사》의 작가 뒤마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모든 지혜는 오직 이 두 마디 속에 있다.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완벽하지 못한 인간에게 기다림과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없을 것이다. 국내 문화교양지 최초인 샘터 50년의 역사가 더 감동적인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의심하고 불안해 하며 서로를 두려워하는 이때, 50년 넘게 차곡차곡 쌓아놓은 ‘희망 창고’가 진짜 희망이다.


50년의 《샘터》는 절벽 위의 위태로운 삶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과 늘 함께 해왔다. 장영희 교수는 암투병 중에도 샘터 지면에 희망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라고 썼다.


“상처에 새살이 절로 돋아나듯이, 절망과 슬픔이 있으면 어느새 희망이 다가와 위로한다.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기본적인 힘이다.”


지금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도 오직 희망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쓰디쓴 삶의 순간들을 모아 우리의 기억 창고에 희망을 쌓아준 샘터의 50번째 생일에 진심어린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병원 대기실에 있는 다른 잡지들을 제쳐두고 엄마가 굳이 샘터를 집어온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희망을 놓지 않았던 엄마의 마음이 50살이 된 샘터를 지켜보는 독자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김성구 발행인이 샘터 뒤표지에 “희망을 쉽게 잊는 딱딱한 콘크리트 세상을 천천히 허물고, 물길을 내어 새싹이 돋아날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샘터의 목적”이라고 썼던 약속을 나는 절대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동준(북큐레이터)


‘북티셰’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 등에서 좋은 책을 추천해주는 일을 했고, 현재는 한국잡지교육원에서 예비기자들의 교육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개인 SNS 채널을 통해 매일 독자들에게 좋은 책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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