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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송이 자화상' 작가의 인생 굿타이밍 _일러스트레이터 정재훈 2020년 4월호
 
'다송이 자화상' 작가의 인생 굿타이밍 _일러스트레이터 정재훈

 

영화 <기생충>에서 다송이 그림을 그린 실제 작가 정재훈은 2000년대 초 인기 래퍼 후니훈이다. 자신만의 예술적 색깔을 만들겠다는 래퍼 시절의 꿈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실현한 그는 랩으로 꿈꾸고 그림으로 이루는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다.


“침팬지를 형상화한 인간의 얼굴과 스키조프레니아존만 유념해주세요. 그 외에는 자유롭게 그려주시면 됩니다.”


요즘 한창 주목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정재훈(40)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영화에 등장할 그림 작업을 제안 받던 날의 기쁨을 생생히 기억한다. 세계적 거장과 일하게 된 영광보다 자신의 작품을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는 설렘에 자신도 모르게 감독의 손을 맞잡았다. 데뷔 후 20여 년 동안 한 장의 정규앨범도 내지 못했던 래퍼가 뜻밖에도 그림 작가로 알려질 기회를 마주한 순간이기도 했다.


최근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의 영예를 차지하며 세계 영화팬을 주목시킨 영화 <기생충>. 정재훈 작가는 이 영화에서 사건을 전개시키는 핵심 매개체인 ‘다송이 자화상’의 실제 작가이다. 자화상을 비롯해 그가 그린 열다섯 점의 영화 속 다송이 그림들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감각적인 그림체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영화에서 알 수 있듯 여태껏 ‘지비지’라는 예명으로 그가 그려온 그림들은 불규칙한 선과 밝은 색감이 특징이다. 미국 자유구상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이 연상되는 그의 동심 가득한 그림들은 마치 아이의 낙서처럼 천진난만한 정서를 전해준다.


“저는 누구에게나 정겹게 다가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그래서 그림에 무거운 주제를 담지 않고 해, 동물, 꽃처럼 제가 좋아하는 대상들을 그리죠. 재료도 오일파스텔을 애용하고 있어요. 원래 마커, 크레파스 등 여러 가지를 썼는데 이번에 다송이 그림을 오일파스텔로 작업해보니 크레파스와 질감이 유사하면서도 훨씬 부드러워 좋더라고요.”

 

 



음악과의 엇갈린 인연


개성미 넘치는 그림체로 여러 패션브랜드와 협업하며 창작을 즐겨온 그이지만 그림을 브랜드화하자는 제안만큼은 고사하고 있다. 대중의 취향이나 수익을 신경 쓰느라 그림 그리는 행복을 반감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그림만 즐기려는 그의 성향은 전시회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그는 ‘기생충 전시회’를 갤러리 대신 예전 작업실이었던 연립주택 옥탑방에서 열고 직접 작업 과정을 설명하며 관람객들이 그림의 매력에 빠져드는 모습을 즐겁게 지켜봤다. 영화의 빅히트 이후 유명 갤러리로부터 전시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그는 이번에도 후배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그림에 대해 영화팬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파티처럼 즐길 계획이다.


“미술적 재능을 자랑하거나 명성 높은 화가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 좋아서 캔버스 앞을 떠나지 않는 것이죠. 제가 그림을 통해 얻는 힐링을 사람들도 느낀다면 전 만족해요. 저한테 음악이 애증의 대상이었다면 그림은 한없는 애정의 대상이거든요.”


사실 정재훈은 사람들에게 지비지보다 ‘후니훈’이란 예명으로 더 익숙한 아티스트다.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췄나 싶었던 2000년대 초 인기 래퍼 후니훈이 요즘 가장 핫한 일러스트레이터로 대중 앞에 서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후니훈의 음악인생을 압축하는 데 아마 ‘인생은 타이밍’ 만큼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뮤지션으로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는 매번 그를 비껴가기만 했기 때문이다.


1998년 그룹 ‘유니티’로 데뷔하자마자 IMF가 터져 소속사의 경영난으로 1년 만에 그룹이 해체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5년 후 그룹 ‘투데이’로 새 출발했을 무렵, 한 통신사 광고에 출연해 “북치기 박치기”란 멘트로 유명해졌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R&B그룹이라는 정체성을 알리기도 전에 그의 이미지가 유쾌한 비트박서로 굳어지는 바람에 그룹은 음악성을 어필하지 못하고 오래 못 가서 해체되었다. 그는 할 수 없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랩으로 전하겠다’는 꿈을 가슴에 묻고 동료가수들의 피처링에 참여하며 홀로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열여덟 곡을 담은 첫 정규앨범을 제작한 적도 있지만 발매 직전에 돌연 무산되면서 음악성을 보여줄 황금 같은 기회는 여지없이 그를 외면했다. 그 무렵 군 입대로 인해 공백기까지 맞았다.


“어떻게든 제 이름으로 만든 번듯한 힙합음악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제대 후 솔로곡을 몇 곡 냈죠. 하지만 이미 많이 잊힌 후라 주목받지 못했어요. 그렇게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걸 보면 제 음악인생에는 머피의 법칙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음악과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고 쿨하게 포기하려 해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캔버스 앞에서 치유한 마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한 일마저 순탄치 않았다. 앨범 발매는 포기하더라도 무대에만은 서고 싶어 출연한 한 오디션프로그램에서 1라운드 탈락하며 노래할 기회를 잃자 깊은 절망감이 그의 앞에 놓인 인생의 도화지를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결국 음악을 잠시 놓기로 결심한 후 마음을 준 대상이 바로 그림이었다. 작사할 때 가사를 마커로 쓰고 악보의 여백을 낙서로 채우며 기분전환 할 만큼 취미로 즐기던 그림이 까맣게 망가진 도화지를 다시 흰 색으로 덮어주었다.


“음악을 만들 때는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그림을 그리니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부담 없이 편하게 그려 마음이 안정됐던 것 같아요. 당시 랩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일 끝나면 집에서 그림만 그렸어요. 친구들이 어디냐고 전화하면 매일 ‘집이지’라고 대답하다 보니 예명도 지비지로 지은 거예요.”


삶의 중요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가끔 힘을 빼고 살 필요도 있는 것일까. 음악성을 증명하려고 치열히 노력했을 때는 주어지지 않던 기회가 욕심을 내려놓고 그림을 즐기기만 하자 비로소 찾아왔다. 틈틈이 SNS에 올린 그림들을 당시 <기생충> 제작팀이었던 지인이 봉준호 감독에게 보여준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영화 제작에 함께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정확한 콘셉트에 맞춰 그림을 창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화상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쏟아 부은 6개월은 창작의 고통을 여실히 실감한 시간이었다.

 

 

“수정사항들을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너무 막막했어요. 음악으로 못 그은 획을 그림으로 그어보리라고 마음도 다잡아봤는데 부담이 생겨 더 안 그려지더라고요. 쓸데없는 욕심은 내려놓고 영화에 담긴 세상을 아이의 시선으로 표현하는 데만 집중하고 나서야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죠.”


실의에 빠져 캔버스 앞에 앉은 순간부터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영화에 참여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가 5년 간 그림을 그리며 배운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무조건 잘 하려고 애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돌이켜보면 타이밍보다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만들겠다는 욕심만 앞세웠던 조급함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는 그림을 통해 깨달았다. 목표는 잠시 미뤄두고 온전히 즐거움만 만끽하다보면 인생의 소중한 기회도 자연히 따라온다는 사실을 이제 그는 안다. 비로소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준비가 된 그에게 ‘한국의 바스키아’라는 타이틀을 헌사하고 싶은 마음은 유보하기로 한다. 앞으로 자유롭게 예술 활동을 펼쳐나갈 그가 정재훈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들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란 내가 원할 때인 것 같아요. 주변 여건에 따라 움직이기보다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를 때 제 느낌대로 그림이나 음악으로 마음껏 표현할 생각이에요. 그러다보면 저만의 고유한 예술적 색깔이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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