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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설계하는 1년 덴마크 ‘사밧오어’ 2020년 6월호
 
행복을 설계하는 1년 덴마크 ‘사밧오어’

해마다 6월이 되면 덴마크 거리 곳곳이 떠들썩해진다. 이 소리의 정체는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마친 학생들의 파티인 ‘스튜덴터쿠어셀(Studenterkørse)’로, 특이하게도 파티는 트럭 위에서 열린다.


화려하게 장식된 파티트럭은 한 반의 학생들을 모두 태우고 그들의 부모님 집을 차례로 방문하여 감사를 표현하고, 스낵과 음료를 나눈다. 파티에는 당연히 술도 빠지지 않는다. 술이 오고 가며 파티의 열기는 고조되어 트럭은 더욱 시끌벅적해진다. 하지만 길거리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화를 내지 않는다. 모두 같은 시절을 겪었기에 한마음으로 학생들을 축하하고 격려해준다. 학생들은 스튜덴터쿠어셀을 통해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수고와 고생에 대한 보상, 그리고 앞으로 주어진 독립적인 인생을 그리며 자축한다.


덴마크에서는 고등학교까지의 정규 과정을 마친 후 바로 대학교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학생들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1년을 쉬는 문화가 있는데, 이것을 사밧오어(Sabbatar)라고 한다. 다른 서양 국가들에서 갭이어(Gap year)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덴마크의 사밧오어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학생들의 약 85%가 이 사밧오어를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는 데 쓴다는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자유의 시간이다. 정해진 틀이 없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주체적으로 정하여 시간을 보내면 된다. 학생들은 이 시간 동안 여행하기, 외국어 배우기, 자원봉사 하기, 돈 벌기, 새로운 경험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면 1년을 더 연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1년 사밧오어를 보낸 학생들 중 절반은 연장을 하기도 한다.


나의 덴마크인 남편은 고등학교 졸업 후 2년의 사밧오어를 보냈다. 당시 저널리스트가 꿈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친구와 무전여행을 다녀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중고차를 구입하여 미국의 도시들을 여행했다. 그 과정을 기록하여 잡지사에 원고를 투고해 여행 경비를 보탰고, 글을 쓰며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꿈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이 시간동안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경험하며 두 번 다시 없을 추억을 만들었다고 회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2년의 사밧오어를 통해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꿈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널리스트가 정말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인지, 자신에게 그 일이 맞는지 사밧오어가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남편은 저널리스트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정보와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좋지만 한 가지 주제나 분야에 깊게 파고드는 직업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성향상 한 가지를 깊게 연구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남편은 계획했던 저널리즘 학과에 지원하지 않고 계획을 변경해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고, 졸업 후 유엔에서 근무했다. 사밧오어 동안의 경험이 인생의 항로를 바꾼 것이다.


학교라는 곳에서 우리는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 안에서는 일정한 법칙이 정해져 있다. 정해진 규정이나 규칙을 잘 따르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 성공이다. 하지만 학교 밖 세상은 다른 법칙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성공의 법칙도 다르게 적용된다.


학교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자신만의 인생을 설계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값진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떠나 주체적으로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해보고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은 행복한 인생을 위해 꼭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지 않을까. 2년이라는 사밧오어를 보낸 남편이 새삼 부러워진다.


김은복(브런치 작가)


남편의 나라 덴마크에서 7년을 살았습니다. 관찰자로서 보는 덴마크의 행복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가치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덴마크행복관찰노트’란 제목으로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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