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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하는 말
선생님, 감사합니다 2020년 6월호
 
선생님, 감사합니다

가끔 휴대전화에 저장된 강의 사진을 들춰 보며 혼자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사진 속의 나는 한결같이 환하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함께 사진을 찍은 아이들 또한 장난기가 가득한 몸짓에 기기묘묘한 표정을 짓고는 입가에 웃음을 곰실곰실 달고 있다.


동화작가인 나는 내 책의 독자인 아이들을 만나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가장 큰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요즘은 초등학교 강의를 가도 아이들과 마음껏 사진을 찍지 못한다. 어쩌다 사진을 몇 장 찍어도 온라인상의 게시를 가급적 피해야 하고, 부득이 사진을 공개하려면 사전 승인이 필수적이다. 학교 홈페이지에 강사인 내 사진을 게시할 때도 미리 동의를 구해올 정도니 초상권과 개인정보 관리가 얼마나 강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 한 초등학교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운동장처럼 넓은 강당에 200명 정도의 저학년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강의 시간도 두 시간이나 배정돼 있었다. 어린이 대상 강의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학년별로 선생님들이 일사불란하게 아이들을 통제해주었고, 사전에 독후 활동과 강의 도중 선물로 줄 책까지 마련해 놓아 아이들의 집중도가 그런대로 괜찮았다는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요즘에는 글 쓰는 작가라 해도 단순한 책 이야기만으로 강의를 꾸려나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아이들 역시 재미를 느끼지 못해 금방 싫증을 내고 몸을 뒤척거린다. 이렇게 한 번 강의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다시 수습하기가 어려운 것도 저학년 대상 강의의 특징이다. 그래서 나는 악기 연주와 노래 부르기, 그리고 입체적인 스토리텔링을 적절하게 조합해 강의를 ‘북 콘서트’ 형식으로 재미있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잔뜩 긴장을 하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강의는 아이들의 큰 호응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끝났다. 선생님들과 도서관 독서도우미 학부형들까지 재미있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쉬운 점은 내 휴대전화에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단 한 장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교행사 사진을 보니 다행히 강의 사진이 몇 장 올라와 있었다. 그러나 다운로드를 받으려면 홈페이지에 가입을 하고 실명인증까지 받아야 했으므로 결국 나는 강의 사진 얻기를 깨끗이 포기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 무렵, 휴대전화에 저장되지 않은 낯선 전화번호로부터 짧은 동영상 두 개가 날아들었다. 그날 독서도우미를 맡아주었던 학부형이었다. 그분이 보내준 동영상은 내가 악기를 연주하며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앞에서 연주를 하는 나만 정면으로 찍혀 있고 아이들의 모습은 전부 옆모습, 뒷모습이라 아이들의 초상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마음 놓고 동영상을 보낸 듯 했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나는 몇 번이나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고 들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앉아 있는 맨 끝에서 한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찾는 선생님의 모습은 마치 따뜻한 봄날, 품 넓은 어미닭이 포근하게 병아리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과 똑같았다.


아마 선생님과 아이는 1학년 모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강당 가운데로 모아놓고 뒤로 나가 강의를 듣는데 베이지색 버버리 코트를 입은 한 선생님이 아이들 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뒤에 처져있던 한 아이를 끌어당겨 품에 꼭 안았다.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아이가 돌발적으로 소리를 질러 강의에 집중하던 다른 아이들의 시선을 자꾸 빼앗아가는 것이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자폐성향의 장애를 가진 아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내게 보내온 두 개의 동영상이 증명해주듯 선생님은 두 시간 내내 그렇게 아이와 한 몸이 되어 한자리에 앉아 함께 노래도 부르고 박수를 쳤다.


마침내 강의가 끝나 작가 사인을 하고 뒷정리에 들어갔을 때였다. 그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뒤늦게 나타났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해서 다녀왔다며 내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를 앞세워 “○○야, 네가 읽은 동화책을 지으신 훌륭하신 작가 선생님이야. 우리 싸인 받자”라고 말하며 수줍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어미닭의 날개처럼 두 팔을 둘러 뒤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 아이도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느꼈는지 이름이 뭐냐고 묻는 내게 어눌하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작가님, 죄송해요. 강의 하시는데 우리 ○○ 때문에 신경 많이 쓰이셨지요?”


사인지를 아이의 손에 들려준 선생님이 정중한 사과의 말을 건넸다. 아이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강의 분위기가 몇 번 흐트러진 건 사실이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안했다면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인사를 받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말할 수 없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게 너무 창피하고 미안해 나는 선생님에게 변변하게 인사도 못하고 허겁지겁 짐을 챙겨 강의장을 빠져 나오고 말았다.


동영상을 보자 그때의 부끄러움이 다시 되살아났다. 나는 동영상을 보내준 학부형에게 동영상 속에서 어미닭처럼 아이를 품고 있던 선생님의 성함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사람의 마음은 모두 똑같은지, 학부형도 그 선생님 칭찬을 하며 즉시 이름을 알려 주었다.


사죄의 의미로 나는 선생님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내 동화책 한 권을 증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책에 저자 사인을 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받는 이의 이름 뒤에 쓸 작가의 메시지였다. 특히 이번에는 그 짧은 글 한 줄 쓰는 게 더 어렵고 고민이 되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렇게 솔직하게 사과를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러나 책을 받은 선생님이 영문도 모른 채 난처해 할까봐 차마 쓰지를 못하고 한참 동안 펜을 멈췄다. 나는 다시 동영상을 보았다. 강의 당시 선생님이 불편해 하지 않게, 또는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 안고 있는 아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나는 왜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가. 왜 선생님이 안고 있는 아이에게 선물 하나쯤 줄 생각을 못했던가. 뒤늦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한참 후 나는 진심을 담아 동화책에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적어 넣었다. 고맙다는 말 외에 다른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불어 선생님이 안아 주었던 그 아이에게도 많이 미안해 따로 동화책을 한 권 더 챙겨 ‘○○야, 우리 더 많이 행복하자’라고 정성스럽게 써서 보냈다.


다행히 나는 아이의 이름은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날 선생님이 나에게 두 번에 걸쳐서 아이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 덕분이었다.


홍종의 (동화작가)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계몽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떴다 벼락이》 《초록말 벼리》 《영혼의 소리 젬베》 등 80여 권의 창작동화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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