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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타임캡슐
다시 낯설어진 자동차 시대 2020년 7월호
 
다시 낯설어진 자동차 시대

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대중교통 승객뿐 아니라 자가용 운행량 또한 크게 감소했다. 그렇잖아도 자동차 증가세가 둔화되는 추세 속에 닥친 이 사태는 어쩌면 자동차 시대의 정점에 다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마저 들게 한다.


누구나 자동차를 모는 기회를 쉽게 갖게 되는 오늘날의 생활상은 10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다. 이 땅에 자동차가 운행되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는 ‘서울에 자동차 230채가 있다’라고 표현했다. 백 단위의 자동차 수도 수지만 그 단위를 집처럼 ‘채’로 호명하는 것도 이채롭다.


당시 자동차는 극소수였지만 그 존재감은 대단했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동차의 모습은 마치 한가로운 초원을 질주하는 집채 만한 맹수 같았다.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처럼 나타난 자동차가 일으키는 횡포와 민폐가 매일 새로운 뉴스를 생산해냈다. 그 첫째는 행인이 당하는 사고였다. 인도와 차도가 분리되지 않은 재래식 비포장길에서 갑자기 출몰하는 자동차를 어떻게 피할지 몰라 허둥대다 차에 받히는 사례가 사고의 주종이었다. 시내의 자동차 주행속도는 시속 12km로 규정했지만 준수하는 운전자도, 그를 단속하는 공권력도 눈에 띄지 않던 1921년 초였다. 당시의 차량 성능 탓에 아무리 악셀레이터를 밟아도 시속 30km를 넘어가기 힘들었지만 그 속도감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서울 시내를 벗어나면 제한속도는 20km로 늘어났다. 청량리나 고양군 같은 한적한 교외를 걷던 행인들이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는 포드나 시보레 자동차를 피해 좁은 길 양편으로 황급히 비켜섰다. 외따로 한쪽 편에 섰다가 일행들과 합치려고 건너다 변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문명의 이기보다는 현대의 흉기로 인식되던 시기였다. ‘종로 거리에서 번개같이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고 몸을 피하다 날아간 모자를 잡으려고 바로 옆 전차길로 몇 걸음 옮기다 그만 전차에 부딪히는’ 사고가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행인과 차도와 전차길이 한데 엉긴’ 수도 서울의 1920년대 도로였다.



급증하는 사고에 대비해 경찰은 1921년부터 과속단속을 시행했다. 첨단장비인 스톱워치와 오토바이를 수입하여 구간 속도를 측정해 시속을 계산하고, 위반 차량을 재빠르게 따라잡아 단속했다. 하지만 파렴치한 난폭 운전행위에 대해서는 제재할 방법이 마땅찮았다. 사고 못지않게 일상적으로 행인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은 무례한 운전 행태였다. 진창길을 난폭하게 지나며 흙탕물을 덮어쓰게 하는 일, 휘황한 헤드라이트 광선을 함부로 얼굴에다 쏘아대는 일이 점점 시민들의 스트레스로 자리 잡았다.


1930년대로 접어들어 자동차가 급증한 만큼 충돌사고도 더욱 늘어났다. 1938년 한 해 전차를 포함한 전국 교통사고 수에서 자동차 사고가 2300여 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하루 평균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미만, 부상 6명꼴이었지만 당시로서는 경악할 만한 수치였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1988년, 한국은 자동차 200만 대 시대로 들어섰다. 개인 승용차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바 ‘마이카 시대’의 개막이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우리나라는 마침내 자동차 수출 1천만 대를 돌파했다.


2020년, 자동차 시대는 낯선 경험에 맞닥뜨렸다. 자동차 기술의 발달에 기대어 이뤄온 일상에서 우리는 길고도 짧았던 탑승의 내력에 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운전 수칙과 매너를 학습해온 경험을 바이러스 시대에 되살려 새로운 이동과 접촉의 생활예절을 익혀야 하는 시점일지도 모른다..


박윤석(역사저술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20여 년간 기자로 일했습니다. 《경성 모던타임스》를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조망한 이래 역사강의를 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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