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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한 사람
사람 낚는 낚시꾼 아저씨 2020년 7월호
 
사람 낚는 낚시꾼 아저씨

물속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하얀 구름과 갈매기는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내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바닷물의 서늘함을 느끼며 생각했다. '나는 이대로 죽는걸까?'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장소를 꼽는다면 강원도 삼척의 덕산해수욕장이다. 이곳에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덕산해수욕장 북쪽은 바위사장이 있어 파도가 부딪히면 흰 물보라가 바위틈을 굽이굽이 돌아 빠르게 빠져나가는 거친 장소다. 위험천만한 덕산해수욕장의 바위섬은 열세 살의 내게 마치 탐험해야 할 보물섬처럼 흥미로웠다.


1988년 8월, 가족여행으로 놀러간 덕산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놀다가 지루해진 나와 사촌형은 바위섬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했다. 부모님에게는 오락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우리만의 신나는 여행길에 나선 나는 기분이 한껏 들떴다. 날씨마저도 우리를 응원하는 듯 화창했고 훨훨 날아다니는 갈매기들과 상쾌하게 몰아치는 파도, 바위섬 한쪽에 서있는 낚시꾼 아저씨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모험의 즐거움을 백배 천배 높여주었다. 바위 군락에 가까워질수록 파도와 바위가 만들어내는 폭죽 같은 물보라가 왜 그리 멋있어 보이던지, 어서 꼭대기에 올라 물 폭탄을 온몸으로 맞아보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바위에 붙어있는 거북손과 따개비들 때문에 손이 아픈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오른 끝에 마침내 우린 제일 높은 곳을 딛고 섰다. 사촌형과 난 폴짝폴짝 뛰면서 덩치 큰 바위들을 신나게 옮겨 다녔다. “이 바위는 내 거야!” “아니야, 내가 먼저 밟았으니 내 바위야!” 그러다 가장 큰 바위로 점프하는 순간, 지금까지 치던 파도와 차원이 다른 높이의 파도가 내게 달려들었다.두 발이 허공에 떠있던 나는 그 길로 하얀 물보라와 함께 바위틈으로 쏙 빠져 들어갔다.


깜빡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아득한 물속이었다. 괴롭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금세 수면으로 떠올라 전속력으로 바위섬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내가 마치 한 마리의 인어가 된 듯했다. 파도 거품이 귀를 간지럽히고 푸르게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며 아름답다는 표현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가족들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가 나를 오락실에서 찾으시다가 돌하루방이 되면 어쩌지? 춥다. 그냥 오락실에나 갈 걸….’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던 가족들의 얼굴이 사라지고 바닷가에 벗어놓은 슬리퍼의 안부까지 궁금해지려던 순간,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모를 액체 때문에 눈앞이 어른거리면서 갑자기 하늘이 일그러졌다. 그러고는 파도소리보다 큰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영차!” 내 왼쪽 팔목이 어떤 묵직한 힘에 의해 번쩍 들어올려졌다.


“월척이로구나, 월척! 이 녀석아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큰일 나게!”


허공을 붕 날아오른 내 몸은 거짓말처럼 다시 바위섬에 착륙했다. 너무나 사뿐한 착지여서 만일 체육시간이었다면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육지에 올라오자마자 눈앞에 보인 사람은 아까 보았던 낚시꾼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바위와 바위를 양다리로 떡하니 짚고 서서 망망대해로 휩쓸려 가기 직전의 나를 건져 올린 것이었다. 뭐가 뭔지 정신이 하나도 없어 감사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허둥지둥 바위섬을 내려왔다.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이름도, 나이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내 생명의 은인인 아저씨를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저씨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생면부지의 나를 선뜻 구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혼날까봐 부모님께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그날의 사고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나도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언제든지 뛰어들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람 낚는 낚시꾼 아저씨는 언제나 내 맘속에 제일 멋진 영웅으로 남아 있다.


김형규


치과의사이자 방송인이며 왕성한 호기심과 창의력으로 여러 문화예술 영역에서 활동합니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에 ‘김형규의 본격 아이 탐구생활’, 포스트에 ‘너무나도 궁금한 아이 탐구생활’을 연재 중이며 그림책 《양치를 잘 할 거야》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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