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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당신 응아해? 2020년 7월호
 
여보, 당신 응아해?

지난해 크리스마스, 독일에서 공부하는 딸과 아들을 보러 부모님이 베를린에 오셨다. 도착하자마자 집이 춥다는 엄마가 고단해 보여 따뜻한 전기담요를 켜둔 내 침대를 내어드렸다.


모두 다 잠이 든 시각, 나는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잠을 뒤척이는 내 귀에 화장실에 가시는 엄마의 인기척이 들렸다. 한국에서도 엄마는 새벽에 자주 화장실에 가셨는데 수화기 너머 지구 반 바퀴 거리에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릴 때면 틀림없이 변기 위에 앉아 계신 거였다.


30분쯤 지나자 아빠가 나오더니 화장실 앞에서 엄마를 부르셨다. “여보, 응아 해?” 엄마가 오랫동안 방에 들어오지 않아 걱정이 되신 모양이었다. 그래도 응아라니, 아빠의 단어 선택이 너무 귀여웠다. 아빠에게 엄마는 아직도 챙겨줘야 할 아이처럼 사랑스럽게 보이는 걸까?


생각해보니 나 어렸을 때도 우리 가족은 똥, 오줌, 대변, 소변이라는 말보다 응아, 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누군가 화장실에 있으면 문 앞에서 “응아 해? 쉬야 해?” 하고 물을 만큼 서로에 대한 관심이 컸던 가족이었다. 대신 ‘똥’은 불만을 나타낼 때 사용하곤 했다. 예를 들어 언니에게 화나는 일이 생기면 “언니 똥 냄새 진짜 독하다! 나 지금 화장실 못 쓰겠어”라고 강한 불만을 표현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다시 우리 어릴 적 자주 쓰던 표현을 쓰게 된 건 손자들과 시간을 보내면서인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주중에 언니의 아들 둘을 봐주고 계신 이유도 있겠지만 여전히 서로를 큰 애정과 관심으로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은 아닐까? 귀여운 60대 부부의 대화에 웃음이 나는 새벽이었다.


김수강


독일에서 사회과학과 음악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졸업 후에는 문화예술정책•교육 분야에서 일하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창 밖 계절의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 사진에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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