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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제이쓴의 집 2020년 8월호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제이쓴의 집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요즘 ‘잘 나가는’ 홈인테리어 디자이너 제이쓴의 직업관을 듣다 보니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명언이 떠올랐다. 집착하지 않는 태도는 집은 물론 삶을 가꾸는 그의 중요한 노하우다.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소리에 맞춰 변하는 제이쓴(35, 본명 연제승)의 표정이 유난히 변화무쌍했다. 렌즈에 담기는 다채로운 감정이 그가 얼마나 자유분방한 사람인지를 말해주었다.


홈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유명한 제이쓴은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다. 방송인, 작가, 블로거, 유튜버, 그리고 최근 개그우먼 홍현희의 남편으로 여러 예능프로에 출연하며 왕성히 활동 중이다. 정작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의 면모는 희미해지는 느낌도 들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생계수단으로 삼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 말하며 싱긋 웃는다. ‘생계를 위해 일정기간 동안 종사하는 일’이라는 직업의 사전적 정의를 그에게는 ‘즐거움을 위해’로 수정해 적용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는 전혀 상업 활동을 하지 않아요. 다만 어떤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할지 구상하죠. 다른 활동도 마찬가지지만 인테리어는 정말 철저히 제 즐거움을 위한 일이라 의식적으로라도 수입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수입의 통로가 되는 이상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생길 테니까요.”



직업에 대한 보편적인 통념을 따르지 않는 그는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크게 주목 받았다. 보통 큰 비용을 들여 전문 업체에 맡겨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인테리어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을 그는 가볍게 무너뜨렸다. 3만 원으로 재료를 직접 사다가 낡은 싱크대를 모던한 주방가구로 바꾸고, 5만 원으로 우중충한 화장실을 세련되게 탈바꿈시키는 등 그가 보여준 노하우들은 DIY가 보편화되기 한참 전인 7년여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형광등 한 번 갈아본 적 없는 자취생부터, 손재주 없는 싱글 직장인까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제이쓴식 인테리어’는 셀프인테리어라는 특별한 장르로 안착했다.


이웃과 함께하는 셀프인테리어


그의 실용적 인테리어법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디자인 감각을 발휘한 공간은 26살에 대학에 재입학하면서 마련한 첫 자취방인 7평짜리 원룸이었다. 꼬질꼬질한 꽃무늬 벽지와 체리색 몰딩은 그냥 두고 보기 어려울 만큼 촌스러웠다. 도배비용 20만 원조차 자취생에게 부담스런 가격이라 5000원짜리 롤 세 개를 사다가 직접 도배한 것이 셀프인테리어의 시작이었다.


“인테리어 전공자가 아니라서 자취방을 꾸미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어요. 페인트 가게와 철물점을 다니면서 수리방법을 일일이 물어가며 작업하느라 꼬박 일주일이 걸렸죠. 인테리어 문외한이었던 제가 이런 생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건 여행을 다니면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기 때문이에요.”

20대 때부터 그는 흥미 없는 분야는 과감히 단념하고 하고 싶은 일에는 즉시 뛰어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했지만 6개월 만에 자퇴하고 무작정 떠난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아르바이트비가 모이는 족족 비행기 타는 생활을 6년이나 지속했다. 그동안 여행한 도시만 120여 곳에 달한다. 세계적인 건축물의 예술성이나 대자연의 위용보다 발을 다친 자신을 도와준 현지인들의 선량한 마음이 더 기억에 남을 만큼 그는 언어도 문화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지내는 재미에 빠져 새로운 세상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여행을 할수록 행복감이 높아지는 만큼 내 공간에 대한 그리움도 커졌어요. 돌아올 곳이 있어야 여행이지 그렇지 않다면 떠도는 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느낀 후라 첫 자취방을 나만의 예쁜 공간으로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세계 여행은 끝났지만 내손으로 집을 가꾸는 뿌듯함을 처음 느낀 그날부터 그는 다른 곳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대학진학을 위해 상경한 대학생의 자취방, 사회 초년생의 작은 전셋집 등 블로그를 통해 인테리어 상담을 청해오는 주변 이웃들의 집이 그에겐 더 없이 흥미로운 여행지였다. 셀프인테리어 컨설팅과 개조를 무료로 해주는 일명 ‘오지랖 프로젝트’를 3년 여간 진행하며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재료는 집주인이 준비해둔다 치더라도 시간과 재능을 아무 대가없이 써야 하는 일조차 그는 즐겁기만 했다. 이 집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왜 개조를 하고 싶은지 등 집에 얽힌 사연을 듣는 시간이 그에겐 ‘사람여행’이었다.


프로젝트를 마친지 4년여가 지난 지금도 그는 당시 의뢰인들로부터 종종 연락을 받는다. 그 집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더 좋은 곳으로 이사 간다는 반가운 소식들이다. 공들여 개조한 집인데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내심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짐작이 앞서지만 그는 자신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서 누군가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뿌듯할 뿐 집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다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제가 스타일링한 집이 외적으로 멋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평가는 제게 별로 의미가 없어요. 작은 재주로 오지랖을 부려봤던 이유도 사람들이 행복을 내 집 마련 이후로 유보하는 게 안타까워서였어요. 월세든 전세든 상관없이 지금 이 공간에서 사는 기쁨을 느끼길 바랐죠.”


안락한 보금자리를 꿈꾸는 많은 이들로부터 제이쓴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셀프인테리어를 멋지게 완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팁은 뭐에요?’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그의 한결 같은 대답은 ‘버릴 줄 아는 용기’다. 일단 불필요한 것부터 과감히 버려야 원하는 것을 들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 신혼집으로 이사 올 때도 자취집에서 들고 온 짐이 달랑 박스 한 개였다. 노트북, 지갑 등 당장 꼭 필요한 물건만 챙기고 전자제품과 가구 등은 깨끗이 처분했다. 그렇게 생긴 빈 공간에는 어느덧 사랑하는 아내의 취향이 묻어나는 물건들로 채워져 함께 사는 공간이 더 아늑해졌다.


무엇이 됐든 지금 당장 마음이 끌리지 않으면 애써 부여잡지 않고 살아온 태도는 그가 집과 함께 삶을 가꾸는 가장 중요한 노하우이기도 하다. 대학 전공도 세 번이나 바꾸면서 낡은 꿈들을 주저 없이 떠나보냈고,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돈에 대한 욕망쯤은 기꺼이 버려왔다. 그랬기에 성공에 대한 의무감에 얽매이지 않는 지금의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 버릇은 여행하면서 생겼어요. 쓰던 물건들과 함께하면 여행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어 이전의 삶과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겼었죠. 무엇이든 일단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잖아요. 앞으로도 소유하기보단 놓으면서 살고 싶어요. 새로운 곳을 신나게 구경하는 기분으로요.”


‘집콕라이프’가 필수인 요즘, 집안에서 특별한 즐거움을 찾고 싶다면 비우는 것부터 실천해보는 건 어떨까? 그 여백에는 다시 새로운 사랑, 추억 등이 차곡차곡 쌓일지 모른다. 양손 가벼이 삶을 여행하는 이 즐거운 ‘인생여행자’의 일상처럼



글 한재원 기자 사진 이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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