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궁리
행복일기
샘터시조
 

 

Home > 월간샘터 > 이달의샘터
할머니의 부엌 수업
요리가 즐거워지는 주부 9단의 행복레시피 2020년 8월호
 
요리가 즐거워지는 주부 9단의 행복레시피

 

동화구연, 마술, 문화해설사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조진주 할머니의 취미는 뭐니 뭐니 해도 요리다. 같은 재료라도 솜씨 좋은 그녀의 손만 거치면 뚝딱하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거듭난다. 코로나19로 바깥 활동들이 여의치 않게 된 후로 그녀는 요리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덕분에 감태주먹밥이라는 새로운 메뉴도 개발했다.


“얼마 전 시장에 가니 감태가 눈에 띄더라고요. 어릴 때는 귀해서 자주 먹지 못했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한 톳 사봤지요. 그런데 싸 먹기가 번거로워 먹기 편하게 주먹밥으로 만들어봤어요.”


서울 강북구 번동에 사는 조진주 할머니(67)의 감태주먹밥은 언뜻 보면 녹색 경단처럼 보인다. 동글동글하게 빚은 모양이며 푸르스름한 초록 빛깔까지, 녹색 경단과 꼭 닮은 감태주먹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참기름, 맛소금으로 간을 한 밥을 한입 크기로 빚어 감태가루를 묻히면 끝. 고소하고 바다향 가득 머금은 감태주먹밥을 만들 때 주의할 점이라면 감태를 구울 때 금방 타버리기 쉬워 석쇠에 얹어 약불에 앞뒤로 뒤집어가며 정성스레 구워줘야 한다는 것 말곤 없다. 먹기도 간편하고 만들기도 쉬운 감태주먹밥을 그녀는 식탁에 즐겨 올리고, 지인들과 도 자주 나눠 먹고 있다.

 


감태주먹밥뿐 아니라 한 번이라도 그녀의 손맛을 맛본 사람들은 모두들 식당을 차려도 성공할 거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린다. 한식, 중식, 양식 못하는 음식이 없으며 손쉽게 맛깔난 요리를 탄생시키기 때문 이다. 그녀는 손이 많이 가는 튀김 요리도 거짓말처럼 뚝딱 만든다. 특히 첫째 딸이 좋아하는 돼지고기고추튀김이 별미다. 돼지고기 소를 채우기 전 고추를 한번 데치는 게 비법으로, 데치는 과정에서 고추 속 수분이 빠지기 때문에 기름이 사방으로 튀지 않고 깨끗하게 튀길 수 있다.


이렇듯 솜씨 좋은 그녀는 어딜 가든 주방장을 자처하게 되었다. 가족행사뿐 아니라 각종 모임에서도 항상 음식 담당을 도맡는다. 지인의 부탁으로 집들이 음식을 다해준 적도 있다. 그런 그녀가 매년 복날이 되면 찹쌀, 인삼, 대추, 은행 등을 넣고 정성스레 끓인 삼계탕을 대접하는 분들이 있다. 바로 아파트 경비아저씨와 미화원분들이다.


“빈 냄비 속에 ‘감사합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경비 일동’이라는 쪽지가 있더라고요. 대접하는 기쁨은 실천해본 사람만이 알 거예요. 저는 요리하는 게 즐거워요. 요리를 하기 전부터 맛있게 먹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기쁘거든요.”


40여 년간 전업주부로 지내다보면 매 끼니 차리기가 귀찮으련만 그녀는 여전히 “내 취미는 요리”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에는 유튜브 요리 채널 속 새로운 메뉴들을 직접 해보며 한창 요리 삼매경에 빠져있다.

 

 

뒤늦게 이룬 산골소녀의 꿈


“어릴 적에는 학교 다니느라 부엌살림에는 손도 못 댔어요. 그래도 어깨너머로 어머니를 보며 배운 게 있었는지 곧잘 되더라고요. 고등학 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청주에서 공부하는 남동생들 밥을 해줬는데 그 때부터 요리에 더 흥미가 생긴 것 같아요.”


충북 괴산 산골마을에서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공부도 제법 잘해 집에서 왕복 20리나 되는 괴산여고까지 매일 걸어 다니며 학업에 매진했다. 하지만 딸인 그녀에게 허락된 건 고등학교까지 만이었 다. 대학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던 그녀는 직접 충주문화방송 아나운서 시험에 응시할 만큼 당찼다. “방송국에 갔는데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촌것이 겁도 없었지요.”


아나운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혼기가 찬 그녀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청년과 식을 올렸고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남편을 따라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홀시아버지를 모시며 딸 둘을 낳았다. 두 딸 모두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공무원 월급으로는 빠듯한 처지였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미술학원에 보냈다.


 

“제가 마트에 나가 일하면서 한 달에 100만 원씩 학원비를 댔어요. 그때는 좀 힘들었지요. 덕분에 두 아이 모두 미대를 졸업하고 지금 미술 계통에서 일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꿈을 이룬 뒤 그녀도 누구의 아내, 엄마가 아닌 ‘조진주’로 돌아갔다. 10년간 통장직을 맡아 동네 발전에 힘썼으며, 강북구 문화해설사로 활동한지도 15년이 넘었다. 또한 인근 사찰인 화계사 문화지킴이로도 활동을 계속해왔다. 그중에서도 동화구연 봉사단인 ‘실버엔젤’ 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지역 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찾아가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는 일이 참으로 보람찼다. 도전하고 배우는 일에 적극적인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마술도 배워 직접 선보이기까지 했다.


“지난해에는 실버엔젤 5주년을 맞아 소소하게 잔치를 했어요. 제가 사회도 보고 단호박샌드위치를 만들어가서 맛있게 나눠 먹었지요. 그동안 봉사했던 것을 책으로 만들어 기념도 하면서 내년에는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아이들을 만날 수 없어 아쉬움이 더욱 크네요.”


여러 활동으로 항상 바쁘게 지내던 그녀는 요즘 모처럼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뜻하지 않게 찾아온 여유 시간에 문득문득 지난 세월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생각해보면 이만하면 하고 싶은 걸 다 이룬 것 같다.


“아나운서처럼 마이크 잡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 꿈을 이룬 거나 다름없지요.”


조진주 할머니의 얼굴에서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 만도 하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다음글이 없습니다.
[이전글] 종가의 비법과 넉넉한 인심으로 차린 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