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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가까워서 더 좋은 동네 여행지
바다여행 대신 빨래방 나들이 2020년 8월호
 
바다여행 대신 빨래방 나들이

‘찰싹찰싹, 철퍼덕철퍼덕, 쏴.’


무인세탁소의 세탁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우리 집 이불이 폭죽 같은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넘실거린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물보라 위에 사뿐히 착지하는 이불을 보고 있노라면 내 몸이 바다 물결 위에 넘실넘실 떠있는 기분이 든다.


모로 누워있는 스테인리스 세탁통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요철에 부딪혀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물방울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은 물방울들이 시시각각 아름다운 형상을 만드는 게 꼭 만화경 같다. 물결을 따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세탁볼의 규칙적인 소리도 귀를 즐겁게 한다


동네 ‘24시간 셀프 빨래방’에 가는 일이 즐거워 이불 같은 큰 빨랫감을 모아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빨래방으로 향한다. 퇴근 후 빨랫감을 세탁기에 맡겨두고 근처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캔 맥주 한 잔 마시는 시간은 톡 쏘는 탄산처럼 청량하다. 이제는 제법 친해진 편의점 직원이 잠깐 자리를 비워야 할 때 종종 가게를 봐주는 일도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재밌다.


얼굴 모를 빨래방 점주가 내부를 북카페처럼 꾸며놓은 덕분에 빨래방 안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책을 읽는 시간도 좋지만 방명록에 적힌 동네 주민들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드라마보다 더 재밌다. 분실물을 찾는 호소부터 누군가에게 전하는 안부인사, 부부싸움을 하고 신세 한탄하는 내용까지 별 것 아닌 평범한 이야기들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든다. 무더운 여름날에 눅눅해져가는 내 하루가 작은 빨래방에서 보송보송해진다.


양은정


매년 남편과 배낭여행을 다니는 물리치료사입니다. 올해는 여행 대신 동네산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동네산책 중에 잠들어 있는 취객을 발견하고 집에 데려다 준 적도 있습니다. 편의점 야외테이블에 앉아 남편과 야식을 먹을 때가 가장 기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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