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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트로트 탄생의 비밀 2020년 8월호
 
한국 트로트 탄생의 비밀

‘재즈 레코드를 타고 흐르는 폭스 트로트.’


1930년 2월, 막 21세가 된 신예작가 박태원이 신문에 연재한 단편소설의 한 구절이다. 여기서 폭스 트로트(fox-trot)란 빠르게 추는 춤곡을 말한다. 유럽에서 대유행한 뒤 일본을 거쳐 수입되어 서울의 유흥가를 후끈 달구고 있었던, 요즘 식으로 말하면 최신 댄스뮤직이다.


이 최신 서양곡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그 낯선 음악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당시 새롭게 떠올라 인기를 끌기 시작한 국산가요의 밑바탕엔 폭스 트로트의 가락이 이미 스며들어 있었다. ‘유행가’라는 명칭으로 1920년대 후반기에 출현하여 삽시간에 대중을 사로잡은 이 신식 가요는 앞서 출범한 일본 유행가(엔카, 演歌)와 어느 정도 유사한 선율을 띠고 있었는데, 엔카가 곧 일본 민요에 폭스 트로트를 접목해 탄생한 장르였다. 유럽풍 가락에 일본풍 곡조를가미하면서 한국적인 정조를 담아 컬래버레이션 된 이 땅의 가요는 <목포의 눈물(1935)>을 전후한 시기에 한국적 창작가요의 틀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광복 후에도 진화를 거듭해가다가 1950년대 후반, 미국 팝송이 밀려들고부터 영미권의 대중가요에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 주춤하는 듯했던 한국의 유행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기폭제는 이미자의 <동백아가씨(1964)>다. 신기한 점은 이때까지도 ‘트로트’라는 명칭은 잘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장르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단일 품목이었던 한국의 대중음악은 유행가, 혹은 가요로 통칭되던 오랜 시기를 지나 록 음악과 포크송이 출현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들어 비로소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속속 탄생하는 신개념 가요들 사이에서 전통가요를 따로 구분시킬 이름이 필요해진 것이었을까.



다양한 장르가 출현하며 대중음악계가 분화를 시작하던 이 시기에 전통가요는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더불어 다시 부활의 길에 들어섰다. 그 분투의 여정이 1967년 2월의 신문기사에 드러난다.


‘이 달의 음반계는 트로트 일색이다. 이미자의 <흑산도아가씨><섬마을 선생님>을 비롯, 남진의 <울려고 내가 왔나>, 현미의 <애인> 등 팔리는 레코드판은 죄다 이른바 뽕짝조의 노래들이다. 트로트의 일본색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업계는 이런 류의 노래가 잘 팔린다는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계속 만들어낸다.’


60년대 후반의 격변기를 지난 뒤 1970년 한 해의 가요계를 결산하는 자리에서는 ‘70년 이전에는 히트곡의 유행기간이 최소 5개월 이상은 가던 것이 70년 들어서는 3개월 이하로 대폭 줄었다. 부침이 심한 가요계에서 한결같이 유행하는 리듬은 뽕짝조라 불리는 트로트. 특유의 한국적 요소가 구매력을 꾸준히 유지시키고 있다’라는 신문 논평이 있었다.


트로트는 1970년대 전반기, 포크송 열풍에 2년 가량 위축되었다가 다시 복고의 붐을 타고 살아났다. 그 결정적 계기로 꼽히는 노래가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1976년)>다.


되살아난 트로트는 점점 경쾌한 곡조로 변신해갔다. 슬픈 가사조차 기쁜 리듬에 실려졌다. ‘근심을 털어 놓고 다함께 차차차, 슬픔을 묻어 놓고, 다함께 차차차’ 하는 90년대식을 지나 21세기 들어서도 이 같은 추세는 가속화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20년을 기점으로 대변신을 이루며 새 국면을 연출하는 중이다.


유행(流行)의 사전적 정의는 두 가지다. ‘특정한 행동 양식이나 사상 따위가 일시적으로 많은 사람의 추종을 받아서 널리 퍼짐’과 ‘전염병이 널리 퍼져 돌아다님’. 트로트와 바이러스를 동시에 곁에 두고 있는 우리는 유행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리고 유행은 반드시 재유행을 거듭하는 듯하다.

박윤석(역사저술가)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사에서 20여 년간 기자로 일했습니다. 《경성 모던타임스》를 통해 한국의 근대사를 조망한 이래 역사강의를 하며 한국 근현대사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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