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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캔버스에 담긴 폐지 수입 노인들의 희망 2020년 8월호
 
페이퍼캔버스에 담긴 폐지 수입 노인들의 희망

2013년 한 조사에 따르면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어르신들의 수는 무려 175만 명에 달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집계에 의하면 2017년 폐지 수집 노인의 수는 약 6만 8000명. 4년 사이 어르신들의 삶이 나아져 폐지 줍는 분들의 수가 확 줄어든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수치는 그동안 폐지 수집 노인들에 대한 실태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다.


인천 부평구에는 홀대받고 소외된 어르신들을 위해 폐지를 시중보다 6배나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는 곳이 있다. 이곳의 이름은 러블리페이퍼(Loverepaper). 사랑을 의미하는 ‘Love’와 재활용을 뜻하는 ‘Recycle’의 ‘Re’가 합쳐진 이름처럼 종이를 재활용해서 사랑을 전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에서는 어르신들이 수거해온 폐박스를 캔버스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한다. 박스를 사이즈에 맞춰 자르고 석고를 칠해 사포질을 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근사한 캔버스로 변신한다. 이렇게 완성된 페이퍼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고, 작품의 판매 수익금은 폐지 수집 노인들을 위해 쓰인다.


러블리페이퍼의 시작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안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러블리페이퍼의 기우진 대표(39)가 출근길에 한 노인을 보게 된 것이 계기였다.

 

“종이박스를 가득 이고 언덕을 오르고 계셨어요. 도와드리고 싶었는데 학교에 늦을까 봐 차마 그러지 못했어요. 그런데 힘겨워하던 어르신의 모습이 마음에 내내 남더라고요.”


그는 어르신들을 도울 방법을 고민하다 폐지 기부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곧바로 학교나 공공기관에서 기부받은 폐지를 판 금액으로 어르신들을 돕는 종이나눔운동본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폐지값은 형편없었고 기부 받은 6톤가량의 폐지를 판 금액이 70만 원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만화가 ‘소공’의 블로그에서 페이퍼캔버스를 접하게 되었다.


폐박스로 만든 캔버스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폐박스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 가치를 높여 판매하기 위해서는 그림을 그려줄 예술가들이 필요했다. SNS에 재능기부를 받는다는 공고를 올렸고, 놀랍게도 4시간 만에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동참의 뜻을 밝혔다.


“신청자가 쇄도해 깜짝 놀랐어요.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그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학교나 공공기관에 폐지 기부를 요청했을 때도 좋은 취지에 공감해 흔쾌히 허락해준 곳이 많았거든요.”


따뜻한 마음들이 모인 덕분에 2017년 러블리페이퍼가 탄생했다. 현재 4명의 직원과 6명의 어르신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폐박스를 캔버스로 만드는 공정에 어르신들까지 참여시켜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어르신들과 재능기부 예술가들의 협업을 통해 만든 작품은 일반판매 외에 특이하게 ‘정기구독’으로 소비되고 있다. 일정액의 회비를 내면 작품을 받아볼 수 있는 정기회원으로는 약 270여 명이 가입해있다. 적지 않은 숫자지만 정기구독료만으로는 사실상 운영이 빠듯한 실정. 이에 기업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한 페이퍼캔버스 만들기 체험 키트 납품과 강의를 병행하고 있다.


기우진 대표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잊지 않고 전하는 말이 있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은 환경지킴이에요. 우리나라는 폐지회수율 85%로 OECD국가 중 자원재활용 1위에요. 모두 어르신들 덕분이지요. 저는 이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드리고 싶어요.”


그의 바람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일까. 러블리페이퍼에서 일하는 정순자 어르신의 말이 큰 힘이 된다.


“이제 폐지 줍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아요.”


러블리페이퍼 loverepaper.modoo.at


글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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