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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편한 세상의 디지털 소외계층 2020년 8월호
 
이 편한 세상의 디지털 소외계층

일주일에 절반 정도, 근무지를 사무실에서 집으로 돌려 재택근무를 시행해온 지 4개월이 지났다. 3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휴가나 출장이 아니면 평일에 단 하루도 근무지를 벗어난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상상하 지도 못했던 일이다. 이를 계기로 감염병 이전의 평이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삶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끼게되었다.


어찌되었든 인간의 삶이란 변화하는 생태환경에 빠르게 적응을 하기 마련이지만 이번처럼 갑자기 몰아닥친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국가공무원이라 의무적으로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나만 하더라도 개인 컴퓨터로 원격근무서비스를 받아 근무를 해야 했고, 프로그램의 설치부터 각종 보안설정까지 끊임없이 요구되는 디지털 환경에 맞춰 나기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이전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로 처리해왔던 나로서도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온라인 업무환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엊그제만 해도 그렇다. 증명서가 필요해 온라인으로 발급 신청을 하려 했더니 컴퓨터에 설치하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마저도 본인인증 절차에서 번번이 오류가 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는 집근처 행정복지 센터를 찾아 나섰다. 행정복지센터는 최일선의 민원기관인 탓에 주민 들로 북적거렸고 사무실도 열기로 가득해 후끈후끈했다. 나 역시 평생 공직생활을 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민원 접점 업무가 아닌 탓에 그런 낯선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그날은 국가재난지원금 현장신청 접수일이었다. 통계적으로 국민의 70% 정도가 온라인으로 신청을 했다는데 상대적으로 온라인 신청에 어려움을 겪는 나머지 30%의 국민들이 현장을 직접 찾은 것이다. 비대면의 사회현상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불가피하게 현장을 찾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각자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굳은 표정으로 별도로 마련된 접수 공간에서 손소독과 발열검사까지 거쳐야 하는 현장이 내겐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전쟁 난민 들을 연상케 했다.


접수를 하는 민원인이나 접수를 받는 공무원들은 입을 가린 마스크 때문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접수가 지연되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북새통 속에서 내가 필요 로 하는 증명서를 발급해주는 창구에도 이미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담당 직원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 었다. 번호표를 뽑았지만 아무래도 내 차례까지 오려면 시간이 걸릴 듯 해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벽 쪽에 붙은 의자에 앉아 있던 내게 할머니 한 분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말을 걸어왔다.


“젊은 양반, 이것 좀 봐줘요. 눈이 침침해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늙은이들은 점점 살기가 힘들어서 말이에요.”


기본증명서를 발급받으려고 온 듯한 할머니가 무인발급기의 사용을몰라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나 또한 한 번도 무인발급기를 이용한 적이 없어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할머니 눈에는 ‘젊은 양반’인 내 도움이 절실해 보였다.


나는 얼른 무인발급기에 부착된 사용 설명서를 읽어 보았다. 무인발급기가 맨 먼저 요구한 것은 본인인증 절차에 필요한 주민등록번호와 지문이었다. 그다음으로 설명에 따라 필요한 증명을 선택하고 발급요청을 수락하면 자동적으로 인쇄가 되어 나온다는 걸 숙지한 나는 할머니에게 사용법을 안내해드렸다.


“주민등록번호 아시죠? 여기에 누르세요.”


그런데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예상과 달리 할머니는 이내 난처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분증까지 가져 오지 않아 겨우 기억나는 숫자를 눌러봤지만 무인발급기에서는 번번이 “입력하신 번호가 틀렸습니다. 다시 한번 입력해 주세요”라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두 번, 세 번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렇지만 정작 할머니 본인이 더 당황하여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결국 할머니는 지문인식 절차를 넘어가지 못하고 힘없이 무인발급기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괜히 시간만 버리게 해서 어떡하우!”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해하며 허겁지겁 출입문을 나서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세상을 살면서 수시로 부딪치는 ‘익숙치 못한 환경’에 허둥거리는 이가 어디 할머니뿐이겠는가. 온라인 이용의 고충은 차치하더라도 정년퇴임을 몇 년 앞둔 나 역시 무인주차장에서 요금정산기의 사용법을 몰라 헤매던 일, 낯선 건물의 출입 방법을 몰라 문 앞에서 배회했던 일, 식당에 가서 자동주문기의 사용법을 몰라 앞 사람이 하는 것을 흘깃거리던 일이 많지 않은가.”


오래 쓴 휴대전화를 바꾸고 싶어도 당장 새 기기의 복잡한 기능을 익히기가 번거롭고 두려워 미루고 있는 게 나 혼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날로 진화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민망하고 무참했던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결국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디지털 환경의 소외계층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과연 생활의 편리이고 문명의 이기일까?


잠시 후 창구 모니터에 내 번호가 뜨면서 호출벨이 울렸다. 나는 공손하게 다가가 번호표를 내밀고 신분증을 제시한 후 서명을 해 신청서를 내밀었다. 몹시 지쳐 보이는 창구 직원의 얼굴을 대면하는 순간 온라인으로 처리하지 못하고 창구까지 찾아와 번거롭게 하는 내 무능함이 말할 수 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증명서를 발급받고 나오는데 조금 전의 그 할머니가 출입문으로 다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다행히 집이 근처라 신분증을 가지고 다시 온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번호표를 뽑고 창구를 기웃거리다 대기자가 많음을 알고는 머뭇머뭇 다시 무인발급기 앞으로 다가섰다. 곁눈으로 지켜보던 내 가슴이 덩달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손지갑에서 신분증을 꺼낸 할머니가 느릿느릿 무인발급기로 손을 뻗었다. 뒤에서 또 다른 노인이 목을 길게 빼 할머니의 어깨너머로 무인발급기의 사용법을 미리 익히고 있었다. 드디어 할머니가 증명서를 발급받아 손에 드는 것을 보자 나도 모르게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유, 할머니는 어찌 이런 것도 척척 잘하시우! 나는 눈이 침침해 아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주민등록등본을 떼려고 하는데 좀 가르쳐 줘요.”


뒤에 서있던 다른 노인이 뒤돌아서려는 할머니를 잡고 어렵게 부탁을 했다. 한번 무인발급기를 사용해본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기계 앞으로 다가섰다. 잠시 후 증명서를 뽑아들고 사이좋게 출입문을 나서는 두 노인의 걸음걸이가 왠지 모르게 애잔해 보였다.

홍종의 (동화작가)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계몽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 방정환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떴다 벼락이》 《초록말 벼리》 《영혼의 소리 젬베》 등 80여 권의 창작동화책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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