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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살아 숨 쉬는 뮤지션의 나라 2020년 9월호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뮤지션의 나라

유럽 서쪽 끝의 작은 섬나라 아일랜드. 제주도에 돌이 많고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다면, 아일랜드에는 비와 바람이 많고 소와 양이 많고 또 하나, 뮤지션이 많다. 10년 전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던지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남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유명하지도 않고 전업 음악인도 아니지만 노래와 연주 실력은 프로급인 사람들이 아일랜드에는 정말 많았다.


하지만 정말 인상적이었던 점은 실력이 뛰어나지 않더라도, 직접 만든 곡이 아닌 유명 가수의 곡을 부르더라도 ‘지가 무슨 뮤지션이래’ 하고 뒷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대부분 그저 음악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 자체를 즐거워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어쩌면 아일랜드에서 ‘뮤지션’이란 직업이 아니라 음악을 향한 열정의 온도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을 확인하고 싶다면 거리로 나가면 된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어느 도시를 가든 거리에서 노래하고 연주하는 버스커 (busker)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잔잔한 발라드부터 재즈, 아이리시 전통음악, 펑크록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길을 걸으며, 혹은 잠깐씩 멈춰 서서 음악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늘과 구름, 비와 바람도 청중이 된다.


최근 버스커의 수가 많아지면서 허가를 받아야 버스킹을 할 수 있는 등록제가 도입되고, 앰프 등 음향기기를 사용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거리의 소음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버스킹의 자유로운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아일랜드 영화 <원스(Once)>에서 주인공 글렌 한사드가 기타 치며 노래했던 그래프튼 거리(Grafton Street)에서 꼭 한번 버스킹을 해보고 싶어 아일랜드에 왔다는 한국 청년도 여럿 보았다.


아일랜드 음악을 더 가깝게 즐길 수 있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아이리시 펍(Irish Pub)에 가보는 것이다. 한국의 호프집이라 할 수 있는 곳이 아일랜드의 펍인데, 이 나라에서 펍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문화적 전통이자 유산이며,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는 의미 있는 장소다. 또한 펍은 늘 라이브 음악이 함께하는 문화 공간으로써 뮤지션들의 중요한 무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의 라이브 콘서트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이리시 펍의 라이브는 엄청 시끄럽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떠들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복도에 나와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뮤지션에게만 집중하는 콘서트 문화에 익숙한 나에게는 이런 아일랜드의 라이브 분위기가 영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유 분방하고 격식 없이 음악을 향유하는 이들의 방식에 매력을 느낀다. 피들(바이올 린의 다른 이름), 반조(아일랜드 전통 현악기), 아이리시 휘슬(아일랜드 전통 피리), 바우런 (아일랜드 전통 북) 등의 합주로 아이리시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펍도 많다. 아이리시 펍에서 전통음악은 과거의 유물이 아닌 과거의 시간을 품은 동시대 음악으로 재창조된다.


아일랜드를 여행한다면 꼭 한번 아이리시 펍에 가서 커다란 유리잔에 담아주는 맥주를 마시며 라이브 음악을 들어보기 바란다. 록밴드 유투와 크랜베리스 를 비롯해 엔야, 데미안 라이스 등 아일 랜드가 배출한 유명한 뮤지션이 많지만, 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수많은 보통의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적 가치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야말로 아일랜드의 음악을 풍요롭게 해 주는 힘이라 믿는다



이유미(에세이스트)


한국에서 광고 카피라이터, 사보기획자로 10여 년 일했고, 현재 아일랜드에 10년째 거주하며 아이리시 극본 번역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아일랜드에 살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담아 《초록빛 힐링의 섬, 아일랜드에서 멈추다》를 출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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